러시아의 오브로모프병이 확산되고 있다?
러시아의 오브로모프병이 확산되고 있다?
  • 이진희
  • jinhlee@hk.co.kr
  • 승인 2005.04.11 0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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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편한 걸 좋아한다. 현대사회의 신분증이 돈이 많아지면 더욱 그렇다. 예전에는 귀족이라면 노블레스 오블레쥐라도 있었지만 요즘의 돈은 그렇지 않다. 무엇보다 잘 살게 되면 남의 안중에 없는 자기 본위가 되고 자기 위주가 되면 무력(無力) 무위(無爲) 무심(無心)이 뒤따라 인간 폐물이 된다. 게으름뱅이가 된다.

모 칼럼리스트는 이런 게으름이 로마제국을 망치게 한 로마병(病)이 됐고, 러시아에 볼셰비키혁명을 유발한 오브로모프병(病)의 요인으로 거론됐다고 말한다. 그중에서 러시아의 오브로모프병에 대해 알아보자.

한말 극동에 눈길을 돌린 러시아 제국주의는 황제의 시종무관장인 푸티아틴 제독을 한반도 해역에 파견, 측량을 하고 정보를 수집해 갔다. 이때 제독의 기록비서로 수행한 분이 당시 러시아 문학계에서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 대등한 비중을 누렸던 작가 곤차로프다.

돌아가 한국기행을 쓴 분으로 한국인이 쓰고 있는 투명한 갓을 보고 바람이나 비, 먼지도 막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자라는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관찰 기록이 담긴 기행문이다.

이 곤차로프의 대표작 ‘오브로모프’가 당시 러시아 상류계급의 놀부 게으름을 주제로 하고 있다. 30을 갓 넘은 지주의 아들 오브로모프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집에서 무능력 무관심 무취미 무기력 상태로 하루종일 누어서 산다. 옷도 입혀 달라 하고, 식사도 식당 가기가 귀찮아 방에서 불러다 먹여 달라고 까지 하는 게름보다.

연애할 기력마저도 상실, 연인은 곁을 떠나간다. 곧 놀부 게으름의 제정 러시아판으로 이처럼 배우고 싶지도 일하고 싶지도 않으며, 모든 의욕을 잃고 누워 사는 무기력을 오브로모프병이라 한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기하급수로 확장해 가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고, 몇몇 선진국들에서 정치적 대책을 모색한다고 보도된 이 21세기 오브로모프병 환자를 교육도 취업도 취미도 거부한다는 뜻인 ‘니트족’이라 한다. 놀부 게으름의 현대적 표출이다.

먹고 입고 사는 데 부모의 그늘이 너무 두터웠고, 저 혼자만의 생활을 보장시켜 기르는 바람에 남들과의 공존에 무력하며 기계화가 생활을 안이하게 해온 데서 필연이다. 그렇게 된 아이들을 탓할 게 아니라 그렇게 되게 한 부모들에 탓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규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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