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 낭독이 일주일씩이나 끄는 이유를 아세요?
판결문 낭독이 일주일씩이나 끄는 이유를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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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5.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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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다운 재판이다. 러시아의 재판은 무척 길고 오래 걸린다. 법정에 들어서면 무슨 프로토콜이 그렇게 까다로운지, 사법제도의 효율성은 건의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모스크바 사람들은 잘도 참아낸다, 하긴 과거에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한두시간은 너끈하게 줄을 서 있었으니깐.

그리고 그 사람들 하나도 바쁠 게 없지 않는가? 그러나 개방이후 러시아는 많이 변했다. 젊은이들의 의식도 많이 변했지만, 서구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법원은 여전히 그대로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바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부상하다 탈세 등의 혐의로 전격 체포됐던 러시아 석유회사 유코스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이야기다.

벌써 24일로 9일째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 법원은 이 기간 중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법정을 열어, 7일째 판결 결과는 선고하지 않고 판결문만 낭독하고 있다.

2003년 10월 전격 체포돼 수감돼 있는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에 대한 선고공판은 지난 16일 모스크바 메쉬찬스키구 법원에서 시작됐다. 선고공판 첫날 주심 판사는 3시간 동안 판결문만 낭독한 뒤 공판을 연기했다.

다음 날엔 판결과 형량선고가 내려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판사들은 다음 날부터 매일 두세 시간씩 판결문만 낭독하고 있다. 법정 밖에서는 호도르코프스키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거나 노래를 불렀다.

이번 주에는 시청측이 갑자기 도로공사를 시작, 시끄러운 굴착기 소리로 판결문 낭독을 방해하고 있다. 금주 들어서는 판사들이 판결문 낭독 속도를 약간 높이고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23일에는 6시간30분 동안 낭독했다. 호도르코프스키측 수석 변호인 겐리히 파드바는 “이런 속도라면 이번 주말이나 내주 초쯤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낭독이 계속되자 한 변호인은 “항소심 재판 때 법정에 나오겠다”며 외과 수술을 받으러 가버렸다. 이것 역시 러시아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뻔하게 알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마라톤 선고’로 진행되는 것은 판결문이 1000페이지가 넘는 데다, 법원 규정상 판사가 선고 전 판결문 전체를 반드시 낭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러시아 사법제도의 묘미가 있다. 우리처럼 효율성을 강조해 판결문을 간행물 회람으로 대신하는 법이 없다. 피의자 인권과 판결의 공정성을 위해 판사가 하나하나 따져 모든 사람이 알도록 읽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의 경우는 너무 했다는 소리도 나온다. 정치적 의도를 겨냥한 것이다. 하긴 옛소련에서도 이런 시스템이 반체제인사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결국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운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모스크바 카네기센터의 릴리야 세브초바 연구원은 “호도르코프스키가 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순교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들이 지치도록 하려는 크렘린의 의도가 개입돼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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