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러시아 강대국 체면은 말이 아니다
그러나 러시아 강대국 체면은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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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0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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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 "브라보!".

7일 오후 4시26분 러시아 극동 캄차카 반도 인근 해상의 함정 10여 척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사흘 전 침몰한 러시아 잠수정 '프리스'호가 무사히 물 위로 떠오른 순간이었다.

5시간 이상 쉴새없이 구조작업에 매달렸던 러시아.영국.미국 합동구조대는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기쁨을 나눴다. 현장에서 구조작전을 지휘하던 세르게이 이바노프 국방장관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만세를 불렀다. TV로 구조 장면을 지켜보던 러시아 국민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곧이어 여기저기서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러시아 해군의 무사안일을 질타하는 목소리였다.

5년 전 8월 승조원 118명 전원이 목숨을 잃은 핵 잠수함 '쿠르스크'호 침몰 사건 이후에도 변한 것이 없다는 비난이었다. 러시아 구조 전문가들은 "우리에겐 프리스 구출에 공을 세운 영국의 '스코피오' 같은 첨단 심해 구조장비가 없다"며 "외국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프리스가 쿠르스크의 운명을 되풀이할 뻔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러시아 해군 당국은 프리스 침몰 직후 자체 구조를 시도했었다. 그러나 역부족임이 곧 드러났다. 여러 척의 트롤선을 동원, 프리스를 끌어올리려 했으나 60t의 닻에 고정된 수중 안테나에 걸린 잠수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프리스의 쌍둥이 잠수정은 고장이 나 아예 써볼 수도 없었다. 심해 300m에서도 구조 작업이 가능한 러시아제 특수 구조함들은 소련 붕괴 후 사유화 과정에서 모두 팔려나가 한 대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과 영국 등 서방에 지원을 요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프리스가 조난 신호를 보낸 지 32시간이 경과한 뒤였다.

참사는 면했지만 프리스 사고로 러시아군은 또 한번 체면을 구겼다. '강력한 군대' 재건을 강조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군 개혁정책도 무색해졌다. "우주선을 쏘아올리면서 제대로 된 자동차 하나 못 만드는 이상한 나라"란 비아냥을 러시아는 또 한번 듣게 됐다.

유철종 특파원 cjyou@joongang.co.kr 중앙일보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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