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합동군사훈련이 남북화해 무드에 어떤 영향?
중러 합동군사훈련이 남북화해 무드에 어떤 영향?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5.08.23 11: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8.15 민족대축전으로 대한민국이 '붕 떠' 있는 시기에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싸고 돌며 격렬한 전쟁게임을 벌이고 있다. 국제테러와 극단주의.분열주의에 맞선다는 이른바 '평화사명 2005' 작전이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그 형식과 내용은 '평화'와는 딴판이다.

병력 1만에 전략폭격기와 잠수함.구축함.탄도미사일까지 동원됐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한 함대가 우리의 동해와 남해를 돌아 서해로 진입한 뒤 중국군과 합동으로 산둥반도의 가상 적국을 향해 벌이는 육.해.공 입체 상륙작전이다. 대만해협 작전은 물론이고, 한반도 유사시 미군 또는 한.미 연합군의 북진을 차단하는 연합작전 능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짙게 풍긴다. 일본 패망 60주년에 맞춘 타이밍도 범상치 않다. 군비 확충을 통한 동북아 패권경쟁의 먹구름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전략적 동반자가 되기 어려운 사이다. 이 둘을 손잡게 만든 것은 미국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미국이 중앙아시아에서 군사적 위상을 강화한 데다 우크라이나의 '오렌지 혁명'이 그루지야.키르기스스탄 등으로 번지면서 옛 소련 연방국들의 친서방화가 가속화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참기 힘든 수모다.

또 대만과 서부 신장 및 티베트지역 분리 독립 움직임은 중국엔 눈엣가시다. 일본의 군비 강화와 미.일 동맹에 맞서 군비 현대화도 시급한데 미국의 방해로 유럽연합(EU)으로부터 첨단무기 구매조차 여의치 않다.

필요에 의한 제휴지만 중.러 군사동맹으로까지 진전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또 이번 작전에서 선보인 러시아의 최상급 무기는 1980년대 제품들로 중국이 이들로 무장한다 해도 군사적으로 큰 위협은 되지 못한다고 미국은 보고 있다.

우리의 걱정은 중.러 합동훈련이 이 지역 패권경쟁의 동력으로 작용해 군비 확장을 자극하고 한반도 주변 세력 관계를 복잡한 다극화 구도로 만들어 지역 불안정을 부추길 것이라는 데 있다.

한미 연합사령부의 '작전계획 5029' 논란에 아랑곳없이 "북한정권이 붕괴할 경우 질서 회복을 위해 미군이 들어갈 것(go in)"이라고 미 7함대 사령관은 공언한 바 있다. 중국은 동북 3성과 간도의 영유권은 물론이고, 한강 이북의 북한땅에 대한 정치적 지배력까지 행사하려 든다.

러시아 역시 군사대국 시절의 무기 재고와 기술 유산, 그리고 석유 및 천연가스 자원으로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견지하려 한다. 열강의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100년 전 상황의 재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 등을 돌리고, 일본에 대립각을 세우고, 중국과 러시아에는 관대한 어정쩡한 자세로는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중.러와의 제휴를 대안으로 떠올리지만 중국이 우리 정부의 훈련 참관 요청을 거절한 의미부터 짚어 보아야 한다.

반미-친중 또는 한.미.일 남방 3각-북.중.러 북방 3각의 이분법적 대응은 모두가 위험하다. 동북아의 군비 경쟁이 주한미군의 아시아.태평양 기동군화를 촉진하고, 한.미 관계 악화로 전략적 유연성을 보장받지 못할 경우 '안보 IMF'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한.미 동맹과 한.중 동반자 관계를 바닥에 깔고 가는 슬기가 필요하다.

한반도 통일은 싫든 좋든 이 지역 다자간 안보 틀 속에서 실현될 수밖에 없다. 자주 통일을 앞세운 감성적 민족공조 열기 속에 자칫 대한민국의 존재와 정통성이 실종될 위험도 적지 않다.

민족대축전에 참석한 북측의 '파격 행보'는 그 자체가 남측에 대한 평화공세(charming offense)다. '우리 민족끼리'의 수사(修辭) 뒤에는 북한 당국에 대한 한국민들의 적대 의식과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고 친북세력의 활동 공간을 넓혀 주려는 계략이 없을 수 없다. 민족 논리에 매몰되면 통일은 고사하고 대한민국까지 잃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반전(反戰)이 곧 평화는 아니며 평화는 전쟁을 각오할 때만이 지켜질 수 있다. 평화를 앞세운 사상 첫 중.러 합동군사훈련이 이 역사적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변상근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