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 논리에 밀리는 중앙아시아의 운명은?
강대국 논리에 밀리는 중앙아시아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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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26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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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카자흐스탄의 서쪽 끝 흙먼지 날리는 작은 도시 아트라우에 도착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공항에서 낡은 소련제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향할 때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유독 환한 불빛들이 줄지어선 곳이 있었다. 날이 밝으면서 그 화려한 불빛들이 있던 곳에서 셰브론텍사코, 엑손모빌, 셸, BP, ENI 등 쟁쟁한 석유회사들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 남은 ‘만만한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카스피해 연안의 그 도시에서 뜨겁게 펼쳐지고 있었다.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에 있는 세계 최대 호수 카스피해의 석유를 둘러싼 이 각축전이 상징하듯, 요즘 중앙아시아는 ‘거대한 게임’과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수식어가 유행처럼 따라다니는 지정학적 격전장으로 떠올랐다.

‘거대한 게임’은 제국주의 전성기에 러시아와 영국이 중앙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다툼이었으니, 이제는 주인공만 미국 대 중국·러시아로 바뀐 채 다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카스피해 지역은 10여년 전까지 소련과 이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서구 국가들이 아무리 많은 석유를 차지해도 러시아 흑해 항구 노보로시스크로 이어지는 카스피해송유관(CPC)을 이용해야만 했다. 미국 등은 러시아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1990년대 후반부터 36억달러를 투입해 BTC 송유관을 건설하기 시작했고 지난 5월25일 드디어 가동을 시작했다.

친미 정권이 들어선 아제르바이잔의 바쿠에서 그루지야를 거쳐 터키의 제이한으로 이어지는 이 송유관 개통식에는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대통령, 미국 에너지장관 등이 대거 참석해 그 ‘의미’를 짐작하게 했다.

9.11 동시테러 직후 미국이 발빠르게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 설치한 미군기지를 둘러싼 힘겨루기도 한창이다.

지난 7월 초 중국·러시아와 중앙아 5개국의 협의체인 상하이협력기구(SCO)는 미군 기지 철수를 요구했고, 미국은 재빨리 키르기스에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을 보내 무마했다. 그러나 우즈베크는 내년 2월까지 미군 기지를 철수시키라는 최후통첩을 전달한 상태다.

미국 국가안보특별보좌관이었던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에서 중앙아를 ‘유라시아의 발칸’이라고 부른다.

아직 미국의 힘이 결정적으로 통하지 않고 러시아와 중국, 이란, 터키 등 인접 강대국들을 끌어들이고 있어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물론 결론은 세계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반드시 유라시아 패권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맞선 중국도 중앙아에서 엄청난 속도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일상생활을 장악한 ‘중국제’의 물결이다.

카자흐 최대도시 알마아타 외곽의 거대한 바라홀카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의 90% 이상이 중국에서 온다고 이곳 상인들은 이야기한다.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카자흐로 이어지는 국경마을 하르고스에는 중국 물건을 가득싣고 들어오는 컨테이너 트럭들이 줄을 잇는다.

고대부터 중국과 중앙아 민족들은 대결과 문화교류, 정복과 피정복으로 얽힌 이웃이었지만, 현재 중국의 확산에 대해 이곳 사람들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중국이 없으면 먹고 살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중국산 물건에 대한 비하 속에서 엄청난 인구와 힘을 가진 중국에 휩쓸려버리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도 드러낸다.

이런 겉모습 뒤에서 중국 정부는 에너지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미 카자흐-중국을 잇는 송유관을 건설중인 중국은 최근 미국 정계의 견제로 미 석유회사 유노칼 인수에 실패한 뒤 곧바로 카자흐 석유기업 페트로카자흐스탄을 인수했다. 중국은 우즈베크나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인권침해로 서방국가들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이 나라들의 정상을 베이징으로 초대하는 등 ‘자기편 만들기’ 전략을 노골적으로 구사한다.

중앙아를 무대로 펼쳐지는 이런 격랑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자신들의 땅을 강대국에 내준 채 기아와 학살, 전통문화의 철저한 파괴를 겪어야 했던 중앙아 유목민들과 오아시스 정주민들의 삶은 힘센 ‘주인공’들의 각축전에 가려 다시 한번 소외되고 있다. 힘이 없어 강대국들의 패권전쟁에 무대를 빌려준 채 많은 피를 흘려야 했던, 아물지 않은 상흔을 가진 우리 역시 다른 약자를 볼 때 강자의 시선을 들이대곤 한다.

중앙아를 강대국들의 살벌한 격투장으로 보는 이런 접근법의 반대쪽에는 동서문명이 오간 ‘실크로드’나 ‘유목문화’를 강조하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를 간직한 이상향으로 추켜세우는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실크‘로드’에 대한 거대한 환상은 그 ‘길’을 지나간 사람들에게 주로 초점을 맞추면서,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척박한 삶의 조건에 힘겹고 치열하게 적응했던 현지인들의 삶을 낭만적인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사실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라는 용어 자체가 제국주의 시기 서구학자들의 발명품이었고, 노마디즘(유목주의)을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지나치게 추켜세우는 프랑스산 담론의 유행도 이곳 삶의 일면만을 제멋대로 이용한 면이 있다.

양극단에 있는 수많은 중앙아시아론들이 쏟아내는 수많은 이미지들의 홍수 속에서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중앙아시아는 어디에 있을까?

칭기즈칸과 티무르 제국 등 유목제국의 화려한 역사가 막을 내린 17세기 이후 중국과 러시아의 점령이 시작되면서 중앙아 사람들의 삶은 점령에 맞선 항쟁과 좌절, 가난으로 뒤덮였다.

1750년대에 중국의 청은 ‘마지막 유목제국’으로 불리는 준가르를 물리치고 중앙아의 동쪽 부분을 차지해 새로운 영토라는 뜻의 ‘신장(현재 신장위구르자치구)’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러시아는 1876년 우즈벡계 부족이 세운 코칸드칸국을 점령한 뒤 현재 중앙아 5개국 지역들을 차례로 영토로 삼았다.

점령에 맞선 무슬림들의 항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로 1864년 청나라 지배를 받던 무슬림들은 대대적인 반청봉기를 일으켰고 서쪽 코칸드칸국 출신의 야쿱 벡이 이곳으로 넘어와 각 지역을 통합해 이슬람국가를 세웠다. 1877년 청조에 재정복되기까지 13년 동안 자신들의 독립국가를 가졌던 경험은 중국 신장의 무슬림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유산으로 남아 있으며, 이는 1940년대 ‘동투르키스탄공화국’으로 다시 한번 이어졌다.

현재 이 지역에는 16세기께 카스피해 북부 지역에서 남하한 투르크계 부족들의 후예와 몽골, 페르시아계 등 많은 민족들이 함께 섞여 산다. 이들은 오랫동안 민족 구분 없이 어울려 살았고, 현재의 민족명과 국경선들은 1924년 스탈린의 영토분할로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다.

소련 붕괴로 갑작스럽게 독립을 맞이한 이곳에서 ‘카자흐 국민은 누구인가’ 같은 국민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난제중의 난제다. 100여개 민족이 뒤섞여 ‘소련인’으로 살아온 이곳에서 최근 각국 정부들이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면서 ‘국민국가 만들기’의 상징조작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카자흐에서 만난 지질학자 라쉬다가 “카자흐어로 물으면 대답하겠지만 러시아어에는 대답하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도 그런 결과다. 그는 “소련 시절에는 카자흐 말과 역사를 무시했지만 이제는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우리가 모국어를 안 쓰면 누가 쓰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즈베크 정부도 옛 티무르제국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는 사마르칸드와 부하라, 히바 등 역사유적을 새 단장하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민족적 자부심을 높이는 작업을 벌였다.

소련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한 부품으로 지내야 했던 이곳의 경제는 ‘석유 붐’으로 떠들썩한 속에서도 많은 상처를 안고 있다.

19세기 말 러시아는 중앙아 점령지에서 환금작물인 면화 생산을 늘리는 것을 기본전략으로 삼았고, 1915년 이미 중앙아는 러시아 전체 면화의 68%를 공급했다. 이를 위해 많은 유목민들을 강제로 정착시켜 ‘하얀 황금’으로 불린 면화만을 재배하게 한 결과 주기적으로 대기근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중앙아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강, 아무다리아와 시르다리아의 물은 면화 재배를 위해 과도하게 착취됐고, 이 강들이 흘러 만들어진 세계에서 4번째로 큰 호수 아랄해는 사막으로 변하면서 환경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도 우즈베크와 투르크멘에서 저임금의 강제노동과 아동노동으로 유지되는 중앙아 면화산업의 막대한 수입은 대부분 고위관료와 소수 기업가들에게 돌아가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 인권단체들은 지적한다.

이곳의 금, 우라늄, 석유 등 엄청난 자원이 소련으로 실려나갔던 역사는 독립 이후 다시 미국·유럽·중국·일본 등이 발빠르게 진출해 석유를 퍼내면서 반복되고 있다.

카자흐에서는 외국 기업들이 석유만 퍼가면서 카자흐 사람들에게는 이익을 나누지 않는다는 논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물론 중앙아 사람들에게 이런 비관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자원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삶은 더 나아지리라는 낙관론과 불안이 교차한다. 14살배기 이 신생 국가들은 많은 가능성을 가진 채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유목제국의 멸망 뒤 역사의 폭풍에 끌려올 수 밖에 없던 이곳 사람들이 다시 자신들의 땅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우리는 또 이 이웃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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