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 오른팔 야코블레프 사망
고르비의 페레스트로이카 오른팔 야코블레프 사망
  • 운영자
  • buyrussia@buyrussia21.com
  • 승인 2005.10.19 0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이론가로 불리던 러시아 경제학자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가 18일 타계했다. 향년 82세.고르바초프와 함께 85년부터 페레스트로이카를 전파한 야코블레프가 죽음으로써 페레스트로이카 세대가 점차 끝나는 듯하다. 그래도 82세라니, 자신이 이룩한 민주화 때문인지 과거 소련 공산당정치국원 출신으로는 꽤 오래 산 셈이다.

1972년 소련 공산당 정책을 비판해 캐나다 주재 대사로 밀려났으나 1982년 캐나다를 방문한 당시 미하일 고르바초프 농업담당비서의 눈에 들어 그의 도움으로 국제관계 및 세계경제연구소(IMEMO) 소장으로 복귀해 페레스트로이카 이론을 설계했다. IMEMO는 한국과의 수교에도 적극 앞장 섰으며 야코블레프도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1985년 고르바초프가 당 서기장에 취임한 후 그의 최측근 정치국원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했다. 1985년부터 공산당 정보담당 비서, 공산당 중앙위원회 국제분과위원장, 대통령 고문 등을 역임하며 고르바초프가 추진한 언론 자유, 민주주의, 개혁·개방 정책의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 그도 고르바초프와 함께 소련 해체의 장본인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소련 붕괴 후 국제민주주의재단을 설립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강권통치를 비판해 왔다.

영국에서 강연활동중인 고르바초프는 야코블레프 사망 소식을 듣고 “페레스트로이카의 동지 한 명이 또다시 저세상으로 갔다”면서 “그는 소련 민주화와 변혁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도 조의를 표하면서 “그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민주주의 확립에 큰 기여를 한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고르바초프는 야코블레프와 함께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이 실패로 돌아간 것과 관련해 “나는 너무 늦게 행동했다”며 “시대를 따라잡지 못하는 사람은 벌을 받게 마련”이라고 자책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