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를 두른 용사'를 번역한 조주관 연세대 교수는? 러시아 문학박사 1호
'호피를 두른 용사'를 번역한 조주관 연세대 교수는? 러시아 문학박사 1호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02.22 0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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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니 번역만 10년이 걸렸더군요.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번역을 할 수 있냐고 묻는데 제 신조가 ‘꾸준히, 천천히, 열심히’입니다. 결국 엉덩이 힘으로 하는 거죠. 나중에 보면 스스로도 ‘내가 이렇게 했었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거짓말 같아요. 참 열심히 살았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루지야(조지아) 대서사시 쇼타 루스타벨리 작품 '호피를 두른 용사'를 번역·출판한 조주관 연세대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 교수는 한국외대에 이어 노문학과가 생긴 고려대 1기생이다. 1975년 학번이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노문과 1년을 마친 뒤에 군대에 갔다. 그는 군대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르마조프의 형제'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 전공인 러시아 문학을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결심했다. 

고려대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한국 최초의 러시아문학 박사였다. 이후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슬라브어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니 벌써 그의 나이 서른여섯이었다.

유학 시절 경험은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인식을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그의 기억으로는 미국에서 수업을 듣는데 한 강의에 대학원생이 30명 가까이 됐다고 한다. 도대체 말이 안되는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러시아어를 전공하면 취직이 잘되기 때문이라고, 한국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미국에서는 펼쳐진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어를 전공한 학생들은 대부분 일찍 학위를 받고 정보 분야 등으로 빠지고, 아주 소수만 남아서 문학을 파고 들었다고 했다. 

그는 한소 수교가 이뤄진 1991년쯤부터  한국의 러시아문학회를 이끌고 러시아로 가 현지의 세계문학연구소와 관련 아카데미 담당자들과 만나 업무협약(MOU)을 맺고 학술 교류의 물꼬를 텄다. '호피를 두른 용사'를 처음 만난 것도 학술 교류 과정에서였다. 그게 1995년도였다.

모두들 푸시킨과 같은 19세기에 유명 작가들을 이야기할 때, 그는 11~18세기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가졌는데, 세계문학연구소에 있던 김레오 교수로 부터 12세기 작품인 쇼타 루스타벨리의 '호피를 두른 용사'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그는 운명처럼 '호피를 두른 용사'를 만났고, 10년에 걸쳐 번역해 냈다. 

그는 이 작품이 지난해 한국에서 히트를 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랑 내용이 똑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주인공 4명이 헤쳐 나가는 에피소드가 정말 비슷하다는 것이다. 내용이 짐작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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