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러시아 문학가 이현우 박사가 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젊은 러시아 문학가 이현우 박사가 쓴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05.07 0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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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러시아 문학가로, 또 서평가로 이름을 알린 이현우 박사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이현우 지음/현암사)를 내놨다. 로쟈란 필명으로 더 유명한 그는 서울대 노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꾸준히 책을 읽고 블로그에 '로쟈'란 이름으로 서평을 올리면서 이 시대 최고의 서평가로 자리를 잡았다.

그에게 러시아 문학은 매력덩어리다. 이현우 박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시아 문학은 19세기의 위대한 전통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당시 러시아 문학을 '동급 최강'으로 표현하는데, "우리가 많이 접한 서구 문학, 그러니까 영문학, 불문학, 독문학 등과 비교해서 최강의 문학은 적어도 19세기 후반에는 러시아 문학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19세기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로 이어지는 러시아 문학의 황금시대였다면, 20세기는 이런 문학적 토대가 1917년 볼셰비키 혁명과 만나 요동치는데,  ‘어머니’의 막심 고리키부터 ‘롤리타’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까지 러시아 문호들의 참모습을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이 책은 노동자의 계급 각성을 그린 최초의 노동자 소설 '어머니'의 고리키를 시작으로 10월 혁명에 회의적이었던 '닥터 지바고'의 파스테르나크, 공식 문학의 문화 권력자이면서 '고요한 돈 강'으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숄로호프, 모국은 물론 모국어를 떠나 이방의 언어로 작품을 써야 했던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까지, 20세기를 살았던 작가 중 누구도 혁명의 물결을 비껴갈 수 없었던 현실을 보여준다. 

당시 혁명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체제의 탄압을 받아 러시아 내에서 공식 출간될 수 없었던 작품은 '비공식 문학'이라 한다. 비공식 문학이라고 해서 모두 혁명에 반대했던 것은 아니다. '닥터 지바고'처럼 혁명에 비판적이거나 불가코프의 희곡들처럼 당 관료들과 속물들을 풍자하는 작품도 있었지만, 플라토노프처럼 '현실보다 더 왼쪽으로' 기울어져 있기에 당시 체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작가도 있었다.

저자는 소련의 수용소 사회를 고발한 솔제니친 같은 작가도 서구나 국내엔 '반공 작가'처럼 소개되었지만, 사실 그는 억압적 체제를 비판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공산주의자였다고 평가한다. 어쩌면 솔제니친은 공산주의 체제가 응당 그래야 하는 '당위적 현실'을 그리지 않고, 체제가 지닌 현실적 문제를 폭로했기에 소련에서는 비판을, 서구에서는 환호를 받았고, 안티유토피아를 다룬 '우리들'의 자먀틴이나 소비에트의 새로운 인간상을 조롱한 '개의 심장'을 쓴 불가코프 역시 사회주의에 긍정적 비전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간이 금지되었다. 

저자는 또 '닥터 지바고'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는 미국의 공작 냄새가 난다고 말한다. 닥터지바고는 195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되었는데, 바로 이듬해인 1958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미국 CIA 공작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1956년 흐루시초표 공산당 서기장이 제 20차 전당대회에서 스탈린을 비판하고 1957년 소련에서 최초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하면서 미소 사이에 우주개발 경쟁이 시작됩니다. 한발 늦은 미국이 소련 체제를 비방하는 선전의 일환으로 파스테르나크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배후에서 밀어주었다는 설입니다" (본문 124쪽)

그래서인지 파스테르나크는 국외 추방을 면하기 위해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했고, 솔제니친도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락하기는 하지만, 정부가 귀국을 허락하지 않을까 두려워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1973년에 '수용소 군도'가 프랑스에서 출간된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이듬해 추방당했다. 냉전 속 동서의 힘겨루기가 러시아 문학계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저자가 주목하는 또 한사람의 소설가 나보코프. 1955년 출간된 영어 소설 '롤리타'로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원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집안 출신이었다. 혁명 이후 아버지는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에 가담했다가 암살되고, 동생 역시 나치에게 죽임을 당하는 불행한 가족사를 안고 미국으로 망명한다. 나보코프는 러시아어와 영어 양쪽의 언어 모두로 작품을 쓴 전무후무한 작가가 된다. 이 독특한 상황은 20세기 러시아의 상황이 빚어낸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러시아 문학이 우리에게 더 편안하게 읽히는 것은 우리 정서에 잘 맞다는 사실과, 러시아 문학이 철학과 종교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삶과 인생에 대한 고민에 빠진 자신을 성찰하는 주인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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