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루시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의 스탈린 격하 연설 50주년
흐루시초프 전 공산당 서기장의 스탈린 격하 연설 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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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2.2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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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사후 스탈린 격하 운동과 함께 동토의 옛 소련에 해빙을 가져온 니키타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의 '비밀연설' 50주년을 맞아 미 주요 언론은 흐루시초프가 일으킨 변화와 한계, 오늘의 시사점 등을 짚었다.

이들은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의 동기가 진정한 개혁의지였든, 아니면 자신의 권력 강화였든, 또 비밀연설에 이은 개혁에 한계가 있었더라도, 당시 공산당 선전부의 젊은 당료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에 의해 계승돼 그 30여년 뒤 소련의 개방.개혁과 세계 냉전 종식의 씨앗 역할을 했다고 긍정 평가했다.

흐루시초프 전기로 2004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윌리엄 톱먼 암허스트대 교수는 25일 뉴욕 타임스 기고문에서 흐루시초프의 비밀연설을 "1991년 소련 붕괴로 완결된 소련 블록 해체 과정의 시작"이라고 평가했다.

톱먼 교수는 그러나 흐루시초프는 공산주의를 파괴하려 했던 게 아니라 스탈린의 오점을 씻어냄으로써 공산주의를 구하려 했던 것인데,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이라며 "19세기 러시아 황제같은 전제주의 권력을 통해 러시아를 21세기로 진입시키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흐루시초프 사례를 생각해볼 것을 권유했다.

흐루시초프는 집권 10년도 안돼 1964년 10월 브레즈네프에 의해 축출됐지만, "스탈린 시대라면 누가 이제 당신이 적합치 않으니 물러나라고 얘기할 수 있었겠나...이제 모든 게 변했네. 공포는 사라지고, 우리 모두 동등하게 얘기할 수 있게 됐네. 이게 내가 기여한 일이네"라는 말을 남겼다고 톱먼 교수는 설명했다.

흐루시초프는 권좌에서 물러난 뒤 무엇이 가장 후회스러우냐는 질문에 "무엇보다 그 모든 피다. 내 두 팔도 팔꿈치까지는 피에 젖었다는 사실이 내 영혼을 가장 괴롭힌다"고 말했다며 비밀연설을 "죄의식을 갖고 있던" 흐루시초프의 "회개의 행동"이기도 했다고 해석했다.

워싱턴 포스트 편집진의 일원인 앤 애플봄은 비밀연설이 "소련 전체주의를 종식시키는 기나긴 투쟁의 첫 발이었다"고 평가하고, 그 연설이 "온전한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연설 후 소련 안팎에서 변화의 희망이 고조됐었다고 말했다.

애플봄은 그러나 소련이 잠시 동안의 정치.사회적 일부 해빙에 이어 고르바초프가 등장할 때까지 다시 20년이 흘러야 했던 점을 지적하고 "여기에, 전체주의 정권을 종식시키려는 사람들에 대한 교훈이 있다"고 말했다. 독재자 한 사람이 죽는다고, 그 동상을 무너뜨린다고 정치적 변화가 완결되는 것도, 그 변화가 곧 일어난다는 것도 보장되지 않으며, "매우 매우 긴 시간, 한 세대 이상이 걸린다"는 것.

자신들에게 부와 권력을 가져다준 이념을 포기하기 쉽지 않고, 평생 몸에 익은 습관을 쉽게 바꾸지 않으며, 자신들의 퇴장을 재촉할 정치개혁을 실제 수행하기는 어렵다고 애플봄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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