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의 서울 포럼 발제문 '미래에 대한 회상'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의 서울 포럼 발제문 '미래에 대한 회상'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05.24 10:24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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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개막한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한 벨라루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우리와 타자'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후폭풍에서 보듯이 '나와 타자'를 구별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미래에 대한 회상'이란 제목으로 쓴 그녀의 발제문 전문을 소개한다. 

우리는 전쟁과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 문화, 바리케이드 문화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두렵지만,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져 버렸고,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태양빛이 눈부신 날에도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번개나 태풍, 지진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된 누군가가 땅 위에 누워있을 것입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하지만 우리 시대의 세상은 너무도 빨리 변하고 예측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 속에서 전쟁과 혁명이 아니라 체르노빌 사건은 20세기의 주요사건이 되었습니다.  체르노빌 사건이후 우리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미래를 살고 있다고, 아포칼립스 최초의 굉음이 이미 들린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일은 부지불식간에 우리에게 닥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주의 시각이 아닌, 역사를 통해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니까요. 이곳, 지구에서는 우리가 통치자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우리에게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작가의 눈으로  

체르노빌의 원자로가 폭발했습니다. 몇 주 후 저는 ‘체르노빌 지대’로 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원자력발전소와 가까운 지역들을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86년 4월, 풍배도(風配圖)는 벨라루스 쪽을 향해 있었고, 벨라루스는 그 어느 지역보다 극심하게 체르노빌 사태의 여파를 겪어야 했습니다. 발전소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무기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완전군장을 한 채 최신 자동소총을 들고 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기억 속에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헬리콥터나 장갑수송차가 아니라 그들이 들고 있던 자동소총이었습니다. 총을 들고 체르노빌 지대에 있는 사람들. 그들은 거기서 누구를 쏘고 싶었던 것일까요? 누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 했던 것일까요? 물리의 법칙으로부터? 눈에 보이지 않은 방사능 물질들로부터? 아니면 방사능에 오염된 땅이나 나무를 쏘고 싶었던 것일까요?

제가 본 것은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제 눈앞에서 이 전쟁의 문화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체르노빌 사건 이전에 참상의 척도가 된 것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고, 전쟁 영웅들의 역사였으니까요.

체르노빌 지대에도 전쟁의 모든 특징들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 같았습니다. 수많은 군인들, 난민들, 피난행렬... 신문에 실린 체르노빌 관련 기사들도 온통 전쟁용어로 뒤덮였습니다. 원자, 폭발, 영웅들... 분명 익숙한 단어들이었지만, 우리가 처한 그 공간은 낯선 것이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시간 안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그 즉시 깨닫지 못했습니다.

새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일 뿐 아니라 재난의 역사가 될 것입니다.체르노빌, 후쿠시마 –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체르노빌 지대에서 제가 이야기를 나누었던 모든 사람들은, 학자이든, 장군이든, 오염물질 제거반 대원이든, 시골 노파든 할 것 없이 모두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런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요.” “공포영화에도 이런 것은 없었어요.” 인간의 기억 속에 아직 이런 지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들려준 여러 이야기 중, 당시 사람들이 저녁이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차나 자전거를 타고 와서 발전소가 불타는 것을 바라보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타오르던 불빛은 일반적인 화재의 불빛이 아니었고, 검붉은 빛이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둘째 날과 셋째 날은 더욱 그랬다고 하더군요. 마법을 거는 듯 아주 아름다운 빛이었다고 했습니다. 프리퍄치시(**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2km 떨어져 있고, 벨라루스 국경 근처에 자리한 우크라이나의 도시. 현재 사람이 살지 않는다 . 역자 주)의 아파트에서는 아이들을 데리고 발코니로 나와 그 빛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얘들아, 봐! 그리고 기억해두어라!”

그 죽음이 너무도 낯선 것이라 그것에 매혹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런 관객들 중에는 엔지니어도 있고, 물리 선생도 있었지만,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은 이미 낡은 것이 되었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그들을 구원하지 못했습니다.  

체르노빌 지대는 잊을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떠나는 즉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지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비밀이 마법을 건 것이었지요.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어떤 것이 우리 위를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정원이 꽃으로 뒤덮였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봄꽃들이 꽃잎을 피워냈고, 마을 뒤편에 자리한 강은 평화롭게 흘러갔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 친숙한 세상. 처음에는 모든 것이 예전처럼 제자리에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똑같은 땅, 똑같은 꽃, 똑같은 물, 똑같은 구름. 모양도, 색깔도, 냄새도 모두 예전과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도처에 공포와 알 수 없는 일들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목동들이 암소 떼를 몰고 물가로 가 물을 먹이려는데, 암소 떼가 뒷걸음질 치며 물마시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늙은 양봉업자의 말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건이 터지고 나서 이레 후에 벌들은 벌집을 떠났습니다. 어부들도 지렁이들이 땅 속 깊은 곳으로 숨어버려 낚시 미끼로 쓸 지렁이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회상합니다. 인간이 모르는 것을 벌들은 알았다는 이야기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일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5월 집회에 나갔습니다. 젊은 부모들은 모자도 쓰지 않은 꼬맹이들을 어깨 위에 얹고 나와 노점 매대 위에 아무것도 덮지 않고 펼쳐 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었습니다. 소년들은 축구를 했습니다. 죽음이 도처에 숨어 있었지만, 그 죽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죽음이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인간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수많은 지식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핵폭탄이 터졌다면 우리도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민방위 교육시간에 배운 적이 있었으니까요. 모두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관해 읽었으니까요. 하지만 무기로 사용되는 핵은 두려워했지만, 일상 속의 핵은 인간의 친구라고 배웠습니다. 물론 엄청난 선전도 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신문들은 소련의 원자력발전소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것이기에 붉은 광장, 크렘린 옆에 세울 수도 있다고 떠들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한 시골에서 낫과 삽을 든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답니다. “이건 다 당신들 잘못입니다!” 군용 핵과 민간용 핵은 똑같은 것이고, 그들이 공범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즉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체르노빌 이전의 인간은, 천천히 체르노빌의 인간으로 변화해 갔습니다. 새로운 감정은 새로운 단어를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단어들이 없었습니다. 모두를 망연자실하게 했던 침묵의 순간을 기억합니다. 하늘과 땅에서 기계들이 굉음을 낼 때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기관 – 눈, 귀, 손가락, 코는 제 구실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런 쓸모가 없었습니다. 방사능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맛을 볼 수도 없었으니까요. 육체를 지닌 것도, 어떤 형상을 갖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평생 전쟁을 해왔고, 전쟁 준비를 해왔는데, 갑자기! 전혀 다른 형태의 적이 등장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적.

예전에 친숙하고 가까웠던 주변 세상이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대피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영원히 남겨두고 떠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자기의 집과 묘지를 두고 떠났습니다. “연기도 안 나고, 불도 없는데 떠나야한대요. 도대체 왜 떠나야하는 거유?” 시골 할머니가 내게 물었습니다. “나는 전쟁 시절도 기억하는데, 여기는 새들도 날아다니고 쥐들도 사는데, 떠나야하네요. 왜 그런 거유? 이게 전쟁인 거유?”

그녀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 범부가 '포스트체르노빌 세상'의 가장 중요한 문제의식을 공식화했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전쟁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이것. 하지만 그것은 전쟁이었습니다. 미래로부터 온 전쟁. 미래에 인간이 겪게 될 공포, 우리 벨라루스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먼저 맞닥뜨리게 된 그 공포로부터 생긴 전쟁. 벨라루스 사람들은 자기들을 '블랙박스'라고 부릅니다. 미래를 위한 정보를 기록해 두는 비행기 안의 그 블랙박스 말입니다. 벨라루스 사람들은 이미 다른 곳과는 다른 방식으로 태어나고, 살아가고, 죽어갑니다. 벨라루스에 있는 모든 조산소에서 출산에 대한 벨라루스 여인들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들려줄 것입니다.

다음은 한 산파의 이야기입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전혀 없었어요. 아이를 낳고 아직 의식이 없을 텐데도, 산모들은 소리를 지르며 아기를 내놓으라고 합니다. 아기를 가져다주면 아이 몸을 일 센티 간격으로 더듬어 봅니다. 모든 것이 정상인지 보는 거죠. 팔은 다 있는지, 다리는 다 있는지, 손가락, 발가락은 다 있는지.”  
대피가 시작되기 전 첫 몇 주간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시골 아낙들이 우유가 든 양동이, 계란을 담은 소쿠리를 들고 앞서 가는데 경찰이 그들을 통제합니다. 그들은 경찰만 없으면, 그걸 들고 집으로 도망칠 기세입니다. “이 계란이 뭐가 나쁜데요?” 그들은 경찰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늘 이랬다고요. 우유도 똑같아요. 하얗고, 따뜻하고. 이거 조금 전에 암소 젖을 짠 거라고요.” 체르노빌에서는 모두가 체르노빌 이전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마다 거대한 구덩이를 팠습니다. 그것은 우유, 계란, 고기, 응고우유, 오이, 토마토를 묻는 무덤이었습니다. 할머니들은 그 구덩이 옆에 서서 성호를 그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결코 뇌리에서 지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병사들은 길과 집과 창고들을 닦아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나 집안에 머물어야 했습니다. 마당에서 놀거나 바로 곁에 있는 숲에 버섯이나 열매를 따러 가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창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들은 웃음을 잃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믿기 힘든 광경은 땅 속에 땅을 묻는 광경이었습니다. 오염된 땅의 표층을 잘라내어 땅 속에 묻기 위해 실어왔습니다. 수백만 마리의 딱정벌레와 거미도 함께 묻혔습니다. 인간은 자신만을 구하고, 자기를 제외하고 이 땅에 살았던 나머지 모든 것을 가차 없이 희생시켰습니다. 숲에서는 항상 죽은 새들을 볼 수 있었고, 발전소 주변의 숲은 붉은 색을 띄며 말라갔습니다. 대피할 때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된 것은 돈과 서류뿐이었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와 개, 심지어 사랑하는 앵무새 한 마리도 가져갈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떠났고, 군부대와 사냥꾼들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든 동물들을 사살했습니다. 애완동물들은 자기 집 마당에서 주인을 기다리다가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신이 나서 다가왔습니다.

한 사냥꾼이 말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때는 꼭 내가 망나니가 된 것 같았어요.” 모두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까지도요. 아이들도 제게 물었습니다. “아줌마, 아줌마는 작가니까 말해주세요. 이제 새들이 알을 낳고 아기 새가 태어날까요? 나무에 다시 새 잎이 돋아날까요?”, “우리는 내일 대피하는데, 새들한테는 여기를 떠나야 한다고 누가 말해줘요? 고슴도치랑 토끼한테는 누가 말해요?” 저는 제가 미래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주인공들은 망연자실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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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2017-05-24 10:40:26
이상하게 전문을 다 올렸는데, 자꾸 중간에 짤리네요ㅠㅠ. 수정했더니 이번에는 더 짧게만 올라갔어요ㅠㅠ

이진희 2017-05-24 10:40:26
이상하게 전문을 다 올렸는데, 자꾸 중간에 짤리네요ㅠㅠ. 수정했더니 이번에는 더 짧게만 올라갔어요ㅠㅠ

이진희 2017-05-24 10: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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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2017-05-24 10: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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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2017-05-24 10:4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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