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교수, 구한말 사회-러시아 문학의 비밀을 푼 '시베리아 향수' 펴내
김진영 교수, 구한말 사회-러시아 문학의 비밀을 푼 '시베리아 향수' 펴내
  • 이진희
  • jhnews@naver.com
  • 승인 2017.10.27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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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시아 문화예술 30주년 기념 학술대회서 한국내 러시아 문학사를 거의 정리한 바 있는 김진영 연세대 교수가 '시베리아의 향수' (부제: 근대 한국과 러시아 문학, 1896~1946, 김진영 지음 이숲 발간)를 펴냈다. 국제회의 발표문과 맥락을 같이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문학으로 본 러시아-한국 관계다. 러시아 문학과 근대 한국사회 사이에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재미있고, 비밀스럽게 접근한다. 

김 교수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지금 러시아는 우리에게 ‘제3세계’처럼 받아들여지지만, 구한말 근대한국에서는  ‘제1세계’였다”고 말했다. 이광수를 비롯한 근대 지식인들은 앞다투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러시아 문학에 심취한 이유라고 했다. 당시 카츄샤와 나타샤, 쏘냐는 우리 이름 순이만큼 친숙한 이름이었다는 게 김 교수의 지적이다. 

1896년 고종의 특명을 받은 민영환은 사절단을 이끌고 여러 나라를 거쳐 러시아를 방문했고, 당시의 기록을 담은 '해천추범'은 조선의 첫 공식 서양 여행기가 됐고, 그로부터  50년 뒤인 1946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방문한 소설가 이태준은 '소련일기'를 남겼다. 또 50여년이 지나 윤후명의 '하얀 배' '여우사냥' 같은 작품이 나왔고, 백무산·황지우·김정환 같은 이들은 소련의 붕괴에 절망했다. 

러시아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길목마다 근대 지식인에게는 ‘유토피아’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김교수는 주장한다. 그래서 19살의 나이로 시베리아로 훌쩍 떠났던 백신애, 영화인 나운규, 이광수 등의 경우처럼, 절망에 빠진 식민지 젊은이가 맨몸으로 쉽게 그 곳으로 떠날 수 있었다는 것. 물론 그곳에는 위대한 문학과 혁명이 있었다. 

김교수의 국제 회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문인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다. 국내 지식인들은 식민지 시절부터 어려운 삶을 반영하듯 톨스토이를 “부유한 자의 폭력을 미워하고 가난한 자의 고통에 울던 민중 작가"로, 도스토예프스키를 “고통받는 약자들의 영혼을 파헤친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했으며, 그게 한국인들에게 깊이 박혀 있다고 그녀는 분석했다. 

실제로 도스토예프스키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가난과 지식인의 비애를 다룬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거지’와 ‘노동자와 흰 손’ 등이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번 책은 해방 공간까지 다뤘지만, 애초 계획은 분단 뒤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한다. 80년대까지 소련에 대해 선망을 버리지 않았던 한국 좌파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 혁명 실험의 실패와 구소련의 붕괴는 큰 절망감을 안겨줬고, 이에 대한 상관관계 분석이 이어져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어느 시점이 되면, 해방이후편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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