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 대회에서 가장 화려한 볼거리인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러시아 출신의 두 피겨선수가 김연아의 뒤를 잇는 '피겨 여왕'을 노린다. 당초에는 세계 최강자인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18)의 독주가 예상되었으나, 그녀가 오른쪽 발등뼈 부상으로 얼음판에서 빠진 사이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다. 이제 갓 15세의 알리나 자기토바(사진)다.
자기토바의 강점은 '후반'이다. 피겨스케이팅 싱글 경기의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요구하는 모든 점프 요소를 모두 경기 후반에 뛰어 가산점을 챙겨가기 때문이다. 체력이 떨어지는 연기 중반이후에 쇼트 프로그램의 경우 3개, 프리 스케이팅의 경우 7개의 점프를 모두 손쉽게 뛸 정도이니, 우선 체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점수 역시 10%의 가산점을 가져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선수는 경기 초반에 큰 고난도 점프를 1~2개 소화하고 중반 이후에 나머지 점프를 시도하며 체력을 안배한다. 하지만, 자기토바는 프리스케이팅의 경우, 12가지 연기 과제의 4번째 순서부터 점프를 시작한다고 한다. 콤비네이션 점프 3종류를 연속해서 구사하고, 레이백 스핀을 한 다음 나머지 점프 4개를 몰아서 뛴다.
지난 24일 끝난 러시아 선수권에서도 이런 전략으로 합계 233.59점을 따내 17세 마리야 소츠코바(221.76점)를 따돌리고 선수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 출전 자격도 사실상 확정했다. 에브게니야 메드베데바는 부상으로 불참했는데, 그녀가 2016, 2017년 우승자였다. 만약 두 선수가 맞붙었다면 최고의 불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자기토바는 지난해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지난 3월 주니어 세계선수권 정상에 올랐다. 2017~2018시즌 시니어(성인 무대)에 데뷔하자마자 그랑프리 시리즈에 두 번(3·5차) 출전해 모두 1위를 했고, 왕중왕전 격인 그랑프리 파이널(9일 일본 나고야)은 메드베데바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 정상에 올랐다.
두 선수는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의 지도를 받는다. 현지 언론 분석에 따르면 기술과 프로그램 구성으로 나뉘는 피겨 요소 중 기술만큼은 자기토바가 메드베데바를 앞선다고 한다. 간판 기술인 트리플 러츠+트리플 룹 점프는 기본점이 11.1점인데, 이를 경기 후반부에 배치하기 때문에 기본점이 12.21점으로 높아진다. 메드베데바가 구사하는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룹(기본 점수 9.60점)이나 김연아의 '필살기'였던 트리플 러츠+트리플 토룹(기본점 10.30)보다 고난도다.
반면 나이가 어리고, 시니어 무대 경력이 적어 예술성을 따지는 프로그램 구성 점수(PCS)에선 메드베데바에게 뒤떨어진다. 메드베데바가 스케이팅 기술, 표현력, 연기의 전환, 구성, 음악의 해석 등 PCS 5개 요소에서 모두 9점대 중반을 받는데, 자기토바는 8점대 후반이다. 두 선수가 실수 없이 자신의 기량을 모두 펼친다고 보면 자기토바가 기술 점수에서 5~6점쯤, 메드베데바가 프로그램 구성 점수에서 10여점 앞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에테리 투드베리제 코치는 평창올림픽대회의 '피겨 여왕'으로 메드베데바를 지목하고 있는데, '플랜 B'로 자기토바를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두 선수의 기량 비교는 내년 1월15일부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유럽선수권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현지 언론들도 유럽 선수권에서 누가 우승할 것인지 점치면서 흥분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열리는 유럽선수권 우승자가 평창 금메달을 목에 걸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모스크바 유럽 선수권 대회는 미리 보는 '평창 피겨 결승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