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가정폭력처벌완화법이 가져온 부작용은..
러시아 가정폭력처벌완화법이 가져온 부작용은..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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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8 06: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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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법안 통과후 신고는 줄었지만, 상담은 늘어
참다 못한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중범죄로 이어진다니..

러시아의 여성 인권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다. 미투 (#me too) 운동과 가정 폭력에 대한 처벌 완화법이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1심 무죄 선고로 한국내 미투 운동이 '없던 일'이 되가는 분위기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예 '있지도' 않았다. 러시아 방송 여기자(PD)들이 올해 국가두마(하원) 외교위원장을 '성추행' 혐의로 폭로하는 미투 운동을 시작했지만, 흐지부지 없어졌다. 세계 최고의 '미녀의 나라'답게, 남성이 미녀를 좀 짖궂게 한다고 해서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인데, 여성 인권으로 보면 나쁜 상황이다.

러시아 언론 캡처
러시아 언론 캡처

또 하나는 가정 폭력을 대하는 러시아 사회 분위기다. 여기에는 지난해 2월 러시아 정부 여당이 통과시킨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을 완화하는 법(이하 완화법)의 영향이 컸다. 가정폭력범을 처벌하는 수위를 낮춘 이 완화법은 지난해 2월에 통과됐으니 1년 6개월여가 지났다. 이 법에 따르면 배우자나 자녀를 폭행해도 1년에 1회만 폭력을 행사하고, 그 결과 뼈가 부러지지 않고 멍이 들거나 피가 났다면 15일 구류나 벌금 처분에 그친다. 기존 법에 따르면 최대 2년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법안 통과 이후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이 법안을 통과시킨 러시아 정부 여당은 지난 7월에 발표된 정부 통계를 인용해 "법안 통과 후 가정폭력 신고 건수가 절반 가까이 줄었다"며 환호하지만, 여성단체들은 "가정 폭력이 더욱 공공연하게 이뤄지지만,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여성및 아동 인권은 질적으로 추락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러시아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2만 5667건으로, 전년도(2016년)의 4만 8765건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일부 현지 언론은 법안 통과 1주년을 맞은 지난 2월 특집판에서 법안 통과 후 나타나는 가정 폭력 부작용을 자세히 전한 바 있다. 

인터넷 언론 '즈낙'(시그널)은 "여성 피해자들이 법안 통과 이후 가정폭력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않고 혼자 견디거나, 시민단체에 도움을 요청한다"며, "그것마저 여의치 않으면 남성 가해자에게 흉기로 보복하는 사회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러시아 극동 나호트카에서 발생한 아내의 남편 살해사건을 그 예로 들었다. 수년간 남편으로부터 폭행을 당해온 아내 갈리나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남편을 칼로 10여차례 찔러 살해한 이 사건은 러시아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아내는 지금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여성 폭력 추방에 앞장서는 여성 단체들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여성폭력 추방 운동 ‘안나센터’의 마리나 피스클라코바-파커 소장은 "지난해 가정폭력 상담 전화는 2만여건에서 2만7000여건으로 늘었다"며 "이 법은 가정 폭력을 묵인하는 효과를 발휘해 가정내 무법자들을 양산하게 있다"고 개탄했다. 

유엔이 파악한 바로는 러시아 내 가정폭력은 심각한 수준이다. 2010년 한해 동안 러시아에서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이 1만2000여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유엔이 내기도 했다. 러시아 여성 인권이 보장받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오랫동안 내려온 가정내 가부장적인 분위기다. 구소련 시절에도 여성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1인 2역 3역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런 여성을 영웅적인 소비예트 여성으로 추앙받았다. 남자들은 가정에서, 일터에서 보드카나 마시며 놀았다.

구소련 붕괴후 되살아난 러시아 정교회는 “애정이 담긴 합리적인 처벌은 신이 허락한 부모의 권리”라며 가장의 권위를 더 높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여기에 호응하며 가정폭력 완화법에 서명했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중범죄의 40%가 가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러시아 미녀들은 예쁜 만큼 가정에서 그만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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