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구단주 아브라모비치, 목숨 같은 구단을 내놓는 진짜 이유
첼시구단주 아브라모비치, 목숨 같은 구단을 내놓는 진짜 이유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09.27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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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이후 비자 문제에 영국 상류사회서도 밀려나고
추가 제재시 런던그라드 자산 동결 가능성, 서둘러 영국내 자산 정리할 필요

러시아 올리가르히 출신의 로만 아브라모비치(51 사진)가 영국 프리미어리그 소속 첼시 축구단 매각을 협상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더 선'지는 26일 "아브라모비치가 금융 전문가들에게 첼시 구단의 판매 조건에 관해 조언을 구하고 있다"며 "영국의 한 자산가에게 30억 파운드(4조 3,955억 원)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 NTV는 25일 "첼시 구단의 매입 조건으로 20억달러가 제시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아브라모비치는 적어도 40억달러는 받고 싶어한다"고 보도했다.

 

양국의 보도를 종합하면 첼시 구단의 매각 협상은 성사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아브라모비치가 머리에 두고 있는 매각 대금 40억 달러는 30억 파운드를 조금 넘는 금액이다. 가격적인 측면에서는 큰 이견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에게 첼시 구단은 돈의 문제가 아니다. 첼시 구단은 그에게 영국의 상류사회로 진입하는 티켓이자, 지금까지 영국에서 만들어낸 성과물이나 다름없다는 게 러시아 언론의 진단이다. 그만큼 첼시 구단에 애착을 지니고 아낌없이 투자해왔다.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구단의 매각을 최근까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영국 솔즈베리에서 지난 3월 발생한 이중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이 몰고온 파장. 이 사건에 대한 영국측의 대러시아 보복 조치로 아브라모비치는 영국내 비즈니스 자체가 막힌 상태다. 영국 내 기업에 200만 파운드(29억 원) 이상 투자하는 외국인에 40개월간 체류를 허가하는 '특별 비자'를 갖고 있던 그는 올해 초 비자 갱신을 거부당했다. 지난 5월에는 '울며 겨자먹기'로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해 무비자로 영국 입국은 가능하나 비즈니스 활동은 불가능하다.

또 첼시 구단주로서 'FA컵 우승' 당시의 감동을 현장에서 함께 할 수 없었던 충격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비자 문제로 FA컵 결승전 경기장에 갈 수 없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소위 '런던그라드'의 상징적 인물이다. 런던그라드는 런던에 러시아어로 도시를 뜻하는 '그라드'를 합성한 단어로, 러시아 출신 부호들의 영국공동체라고 보면 된다. 미 블롬버그 통신은 약 15만명의 러시아인들이 지난 20년만 러시아에서 1천만 파운드를 빼내와 런던그라드를 형성한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런던그라드' 부호들도 이중스파이 독살 기도 사건으로 영국 상류사회로부터 점차 밀려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의 대러시아 추가제재가 본격화하면, '런던그라드'의 영국내 자산이 동결되는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서둘러 영국내 자산을 정리하고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 지도 모른다. 아브라모비치가 10억 파운드(1조 4,652억 원) 규모의 첼시구장내 스탬포드 브릿지 증축 계획을 취소한 것도 그냥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런던그라드'는 아브라모비치의 최근 행보를 주시중이다. 수십년간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낸 영국을 떠나 새로운 도피처를 찾아야 할 것이라고 러시아 언론은 전망한다. 가장 유력한 곳은 역시 스위스다. 그러나 아브라모비치에게는 과거(?)가 있다. 지난 2016년 스위스 발레주에 있는 베르비에 스키 리조트에 거주하기 위해 영주권을 신청했다가 철회한 일이다.

 

그 까닭이 이제사 밝혀졌다. 영국 언론에 따르면 스위스 최대 미디어그룹인 타미디아(Tamedia)는 올해 초 아브라모비치와 관련한 스위스 경찰 보고서를 입수했으나, 내용 공개를 금지해 달라는 아브라모비치측의 가처분 신청으로 보류했다. 그러나 스위스 법원이 지난 24일 이 보고서를 공개해도 좋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졌다.

보고서는 "아브라모비치는 돈세탁 혐의가 있으며, 러시아 범죄조직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여러 경찰 정보가 있다"면서 "그가 스위스에 거주하게 된다면 공공 안전을 위협하고 스위스의 명성에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를 접한 스위스 이민당국이 아브라모비치의 영주권 신청을 기각할 게 뻔하다. 그가 서둘러 영주권 신청을 철회한 이유로 보인다.

'런던그라드' 부호들은 아브라모비치의 과거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스위스는 그들에게 안전한 도피처가 되기에는 너무 멀어 보인다. 첼시 구단 매각은 아브라모비치 개인은 물론, 영국내 '런던그라드' 에게 닥친 고민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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