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소련 붕괴뒤 급변화 사회와 대중문화를 조망한 '러시아 소비하기'
구소련 붕괴뒤 급변화 사회와 대중문화를 조망한 '러시아 소비하기'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10.23 0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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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소비예프 시절의 사회 문화적 변화를 각 분야 연구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분석한 연구물을 하나로 엮어/ 목차만 봐도 흥미진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급변하는 사회상과 대중문화를 폭넓게 조망하는 책 '러시아 소비하기: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사회와 대중문화'(아델 마리 바커 엮음, 정하경 역, 그린비, 704쪽)이 나왔다. 

시장경제 도입과 함께 몰려온 자본주의의 물결 앞에서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소비자’가 되어 갔는지, 그 흐름 속에서 어떤 소비구조가 탄생되었는지를 현장조사를 통해 분석한 책이다. 

미 애리조나대학 러시아학 및 슬라브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애완동물 문화, 다단계 조직의 대국민 사기극, 아동문화, 스포츠, 문신, 종교 컬트, 남성 발레와 동성애, 탐정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하나로 묶었다. 그래서 소련의 붕괴와 그 결과 남겨진 문화적 유산에 대해 의미를 찾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라고 소개된다.

 

목차만 봐도 흥미롭다.
1부: 서론
1장 러시아 다시 읽기 (아델 마리 바커)
2장 문화 공장: 구/신 러시아 대중문화의 이론화 (아델 마리 바커)

2부: 대중문화
3장 주식공모: MMM과 멜로드라마 마케팅 (엘리엇 보렌스타인)
4장 가가린과 레이브 키즈: 포스트소비에트 밤문화와 권력, 정체성, 미학의 변형 (알렉세이 유르착)
5장 진퇴양난: 신성한 루시와 러시아 록 음악에 나타난 루시의 대안 (줄리아 프리드먼, 애덤 와이너)
6장 포스트페레스트로이카 러시아의 대중 아동문화: 순수와 경험의 노래 다시 보기 (엘리자베스 크리스토포비치 젤렌스키)
7장 시장, 거울, 그리고 대혼란: 알렉산드라 마리니나와 신러시아 추리소설의 유행 (캐서린 세이머 네폼냐시)
8장 관객을 찾아서: 화해의 신러시아 영화 (수전 라슨)
9장 행성 러시아에는 규칙이 없다: 포스트소비에트 관중 스포츠 (로버트 에덜먼)
10장 ‘레닌’이라 말하면서 ‘당’을 의미하기: 소비에트 및 포스트소비에트 사회의 전복과 웃음 (안나 크릴로바)
11장 엉망이 되다: 신러시아에서의 애완동물의 삶 (아델 마리 바커)

3부: 성적 취향
12장 공개적 동성애: 정체성의 부재 속 동성애 주체 및 주관성의 표현 (로리 에시그)
13장 동성애 공연: ‘남성’ 발레 (팀 스콜)
14장 러시아의 포르노그래피 (폴 W. 골드슈미트)

4부: 사회와 사회적 인공물
15장 신체 그래픽: 공산주의 몰락을 문신하기 (낸시 콘디)
16장 키치로서의 공산주의: 포스트소비에트 사회의 소비에트 상징 (테레사 사보니-샤페)
17장 화장실에서 박물관까지: 소비에트 쓰레기의 기억과 변형 (스베틀라나 보임)
18장 처형 벽의 편집증적 그래피티: 러시아의 고난에 대한 민족주의적 해석 (존 부시넬)
19장 ‘기독교, 반유태주의, 민족주의’: 갱생한 정교 러시아의 러시아 정교 (주디스 도이치 콘블라트)
20장 불신의 보류: 포스트소비에트 러시아의 ‘컬트’와 포스트모더니즘 (엘리엇 보렌스타인)

다양한 챕터속에 들어 있는 내용도 구소련과 러시아에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에게는 향수와 변화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출판사 서평으로 보면, 예컨데 이런 것이다.
"카챠는 러시아에 사는 대부분의 어린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바비 인형을 좋아했다. 그녀는 세 개나 갖고 있다. 왜냐하면 중국산 인형은 머리가 녹색으로 변해 바비로 치기 곤란하고, 또 다른 인형 ‘크리스틴카’는 미국 바비의 러시아 버전인데, 그래서 진짜 바비에 포함시키긴 어려웠다. 

반면 그녀의 친구 올레샤는 부모님이 모두 내과의사인데, 일곱 개의 진짜(즉, 미국에서 만들어진) 바비 인형을 가지고 있다. 카탸로서는 진지한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카챠에게 이 인형에서 왜 그렇게도 좋아하는 지 물었을 때 그녀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바비는 정말 다르거든요. 바비는 어떤 러시아 인형과도 비슷하지 않거든요. 바비는 너무나 많은 멋진 것들을 갖고 있거든요. 장식품, 가구, 집, 차, 이런 것들을 사서 바비에게 갖춰줄 수 있어요.'

'그럼 너는 바비가 외국 것이라서 좋은 거니?' 라고 내가 물었더니 '네!'라고 답변했다.” (6장 「포스트페레스트로이카 러시아의 대중 아동문화」, 238~239쪽)

이제는 인터넷 사이트에 넘치고 있는 포르노물에 대해 한번 보자.

"포르노그래피(포르노물)가 국가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을 때에도 포르노물의 도덕성에 대한 국가의 공격은 뻔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당국은 일종의 정치적 운동으로서 성적 방종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 결과, 러시아와 소련의 ‘도덕적 검열’이 정치화되었다.

한 전문가가 표현한 대로, “에로틱하거나 포르노적인 책과 사진들은 그것들이 도덕적으로 불쾌감을 주기 때문에 금지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전복적이기 때문에 금지된다”.

민화조차도 검열 기구, 정교회, 그리고 차르의 법률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으로 출판되었다. 나중에 NEP(레닌의 신경제) 시대 포르노물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국가의 대중 통제속에 더욱 두드러진 자유연애의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었다." (14장 「러시아의 포르노그래피」, 500~501쪽)

몸의 문신에도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특권적 문신의 두번째는 성모와 성자였다. 이 문신이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러시아정교의 열렬한 신자'임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사실 이 문신은 여럿 중첩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중 어떤 것도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다.

① 문신을 지닌 자가 ‘대를 이은 범죄자’라는 뜻(즉, 그의 아버지 또한 복역했음),
② 그가 매우 어렸을 때(‘팔에 안긴 아기’였을 때) 범죄 조직에 뛰어들었다는 것, 
③ 그가 감옥을 고향처럼 여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감옥이 나의 고향 집’이라는 러시아 속담이 문신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슬로건이 되기도 했지만, 성모와 성자는 비공식적인 교도소 시스템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죄수만이 할 수 있는 문신이었다. 범죄 권력에 연관된 대부분의 감옥 문신과 마찬가지로, 그럴 위치에 없는 사람이 이 문신을 새기는 것은 곧 스스로 죽음을 청하는 일이었다" (15장 「신체 그래픽」, 513~514쪽) ---

이 책을 번역한 정하경은 서울대 노어노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나온 뒤 미국 하버드 대학의 슬라브어문학과에서 박사학위(2008년)을 받았다. 전공은 러시아어 통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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