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에도 끄떡없이 잘 버티는 러시아, 해외도피 자금의 '유턴'을 노린다
경제제재에도 끄떡없이 잘 버티는 러시아, 해외도피 자금의 '유턴'을 노린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8.11.30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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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은행 VTB 투자포럼에 푸틴 대통령 참석, "난 어디 가지 않는다" 강조
영국내 독살 기도 사건이후 불안한 올리가르히 '러시아가 부른다'에 호응?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8일 러시아 제2의 국영은행인 VTB가 마련한 투자포럼에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날 발언 중 주목을 받은 것은 크림반도-케르치 해협 러-우크라 충돌과 자신의 향후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러-우크라 충돌에 대해서는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위해 의도적으로 자행한 도발'이 근본 원인이라는 해석을 내놓았고,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는 '러시아 지도자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참석자들에게 심어줬다.

'러시아가 부른다'는 포럼 주제에 적합한 발언도 적지 않았겠지만, 대외적으로 주목은 받지 못했다. 아마도 금융기관의 투자 포럼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과 블라디보스토크 동방포럼 등 연방정부 혹은 지방정부가 주최하는 포럼에는 외국 정상들도 참석하기에 주최국 대통령의 참석은 필수라고 하겠지만, VTB의 투자 포럼에 푸틴 대통령이 꼭 얼굴을 내비칠 이유는 없다. 해외투자자로서 거물급 인사도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그 자리에 간 이유는 있었다. 소위 '올리가르히'(신흥 재벌)들의 관심 끌기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미국과 유럽의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올리가르히들을 동원해 경기부양에 나서고 있다. 서방측은 경제제재로 푸틴 정권의 내부 분열과 타격을 꾀했지만, 양측은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됐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오는 2021년까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현재의 2배 수준인 3.1%로 올리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건설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기반시설 건설 5개년 계획이다. 소요 예산이 약 1000억 달러(약 112조원). 재정지출로만 감당하기엔 부담스러운 액수다. 여기에 올리가르히들의 쓰임새가 있다. 투자 자금의 절반 가량을 이들이 부담할 것이라는 전망이 그래서 나온다. '불법 자금' 세탁에 이권까지, 양측의 이해는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이 총대를 맸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이날 포럼 연설에서 "경제 발전을 위해 우리(러시아)는 우리의 자원에 의존해야 한다"며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북극해와 접한 러시아 서쪽 야말반도와 동쪽 사할린을 연결하는 482㎞ 길이의 철도 완공을 위해 러시아 최대 민간 가스기업 노바텍이 투자했다. 이 철도는 원래 구 소련시절 북극해 인근 군사기지 보급을 위해 건설하던 철도였으나, 스탈린 사망후 중단됐다. 최근 야말반도 천연가스 개발 사업(야말 프로젝트)이 활기를 띠면서 공사가 재개되고 있다. 

노바텍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게나디 팀첸코 전 CEO가 소유한 기업이다. 팀첸코를 포함해 국내 거주 올리가르히는 상당수가 미국의 대러시아 제재 명단에 올라가 있어 푸틴 정권에 협력하지 않을 경우, 사업 입지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이번 포럼은 또 푸틴 정권의 압박을 피해 해외도 도피한 올리가르히 자금의 '유턴'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옐친 전 대통령과 함께 한 제 1세대 올리가르히들은 대부분 영국으로 투자 이민 형식으로 도피했는데, 요즘 그네들의 입지가 여간 불안한 게 아니다. 이중스파이 스크리팔 부녀 독살기도 사건 이후, 영국 정부가 러시아 올리가르히에 대한 '목조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특히 자금 출처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불법자금으로 보고 압류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자칫 영국 정부에 자산 다 빼앗기고 맨몸으로 쫓겨날 판이다. 게다가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스크리팔 부녀 독살 기도 사건'은 도피 올리가르히에게도 자신의 신변이 절대로 안전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줬다.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시작이자 영국 도피 선두주자였던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회장의 자살 사건도 찜찜한 게 사실이다. 크렘린이 '러브 콜'을 보내면 과거사는 전부 잊고 선뜻 응할 마음이 생길 만하다. 이미 크렘린과 이들 사이에 전령사가 움직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가 부른다'는 국영기업 투자 포럼은 누가 봐도 그럴 듯한 명분을 제공해주기에 충분하다. 푸틴 대통령이 굳이 포럼에 나가 '나는 계속 국가 지도자로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해외도피 올리가르히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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