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을 때 진짜 어려운 점, '이름 익히기'
러시아 문학작품을 읽을 때 진짜 어려운 점, '이름 익히기'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1.20 05: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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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부칭 + 성으로 복잡하게 구성, 애칭에 부르는 방식도 다양
작품속 이름을 제대로 파악해야, 관계와 행동, 흐름을 정확히 이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시아 대문호의 작품들은 읽기에 난해하다. 다들 한번씩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너무 두껍다. 그리고 작품들이 깊은 철학적 고찰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수준 높은 교양과 지식을 얻기 위해 감수해야 할 관문이라고 치자.

정작 문제는 작품속에 나오는 이름이다. 현실적으로 너무 헷갈려서 접근하기 힘든 게 러시아의 지명과 이름이다. 외국 작품이라는 게 대개 비슷하겠지만, 영어식 지명이나 이름은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한데,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수많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하나씩 기억하고, 행동과 흐름을 쫓아가기 힘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러시아 이름은 우선 길다. 중동 사람들의 긴 이름을 생각나게 한다.

그 이유는 출신에 대한 설명 때문이다. 우리 이름은 단순히 성+이름으로 이뤄져 있다. 러시아의 이름은 이름+부칭+성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부칭이란 '누구의 아들(딸)'이라는 출신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한다. 예컨대 '이반'의 아들은 '이바노비치', 딸은 '이바노브나'라는 부칭을 가진다. 이반의 아들, 이반의 딸이라는 게 알려주기 위해서다.

언제부터 부칭이 나오기 시작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가멤논과 메네라오스가 모두 아버지의 이름 아트레우스에서 딴 아트레이데스(아트레우스의 자식)로 불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문(성씨)' 보다 더 좁은 '혈육관계'에 비중을 둔 고대의 생활관습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리스의 고대 문화양식을 물려받은 러시아는 서구 유럽보다 더 '누구의 자식'이라는 표현에 집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이반의 아들'인 표트르를 부를 때, 잔뜩 예의를 갖춘다면 '표트로 이바노비치'라고, 이름과 부칭을 불러야 한다. 성씨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셈이다. 우리가 흔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부르지만, 그의 이름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푸틴'이다. 블라디미로비치에서 그의 아버지는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어떤 자리에서 누군가가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라고 말했다면, 그 사람이 '푸틴'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문학 작품에서도 갑자기 이름과 부칭이 나오는데, 작품의 맥락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부칭을 꼭 써야 하는 이유의 하나로, 러시아의 이름들이 결코 많지 않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반, 안톤, 안드레이, 세르게이, 블라디미르 등 자주 쓰이는 이름들이 계속 사용되기 때문에, 러시아 포탈 얀덱스에서 이름과 성만으로 검색할 때 부칭을 모르면, 이 사람이 내가 찾는 그 사람인지 헷살릴 때가 있다. 

또 문학작품에는 애칭이 많이 등장한다. 애칭은 우리가 아는 별명이 결코 아니다. 또다른 확실한 이름이다. 가까운 사이에선 긴 이름보다 애칭을 주로 쓴다. 블라디미르는 ‘발로쟈’, 드미트리는 ‘디마’, 알렉산드르는 ‘사샤’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죄와 벌’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다. 그러다 보니, 주인공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로지온 로마노비치’(이름 + 부칭), ‘로지온’, ‘로쟈(애칭)’, ‘라스콜리니코프’ 등으로 굉장히 다양하게 불린다. 번역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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