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한한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오케스트라 가짜 논쟁을 보니..
최근 내한한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오케스트라 가짜 논쟁을 보니..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7.04 0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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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가짜 뉴스'만 판을 치는 게 아니다. 가짜 학위, 가짜 발레단, 가짜 오케스트라도 러시아발로 가끔 등장한다. 최근 한국에서 순회 공연을 했던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도 가짜 의혹에 휩싸였다. 이 오케스트라는 서울, 대구, 전주, 광주를 다니며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이름으로 무대에 올랐다.

의혹은 전주 공연을 관람했던 모씨가 연주의 질이 기대에 못미친다며 "우리가 아는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진짜 맞느냐"는 단순한 의문에서 시작됐다. 당시 공연 주최측은 언론 등을 통해 ‘러시아 음악의 절대적 표본을 보여주는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러시아의 자존심,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한국을 찾아옵니다. 세계정상급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러시아 음악의 전율을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홍보했다. 관람료도 VIP석 8만원에 달했다.

모스크바 국립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세계정상급이라는 문구에 비싼 돈까지 지불한 관객들은 1943년 소련 정부가 모스크바를 기반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즉 ‘모스크바 국립 아카데미 심포니 오케스트라’(Московский(모스크바)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국립) академический (아카데미)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심포니오케스트라) под управлением Павла Когана 영어로는 MSSO· Moscow State Academy Symphony Orchestra)의 수준 높은 공연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알고보니, 1989년 결성된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ный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для детей и юношества’ 영어로는 ‘MGSO·Moscow State Symphony Orchestra)가 무대에 올랐으니 '속았다'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러시아어에서 영어, 한국어로 이어지는 오케스트라 명칭의 번역에 있다. 러시아의 오케스트라, 발레단, 극장 등은 통상 이름이 아주 길다. 편의상 짧게 줄여 부르곤 한다. 국내에는 짦은 이름만 알려져 있다. 이번에도 국내 관객이 기대한 오케스트라는 뒤에 'под управлением Павла Когана'(파벨 코간이 운영하는), 실제 방한한 오케스트라는 뒤에 для детей и юношества(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한)가 사족처럼 붙어 있다. 두 오케스트라는 완전히 다른 단체라는 뜻이다. 

위키피디아 소개 캡처

또 명칭에 академический(아카데미)가 들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도 크다. 소련 시절부터 아카데미 칭호는 그 분야에서 '최고(기관 단체)'라는 말과 통한다. 관객은 소련(러시아) 정부로부터 ‘아카데미’ 칭호를 받은, '국립 아카데미'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기대한 것이다.

주최측은 일부 관객의 항의와 언론 매체의 질의에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Московский государственый симфонический оркестр 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주장은 '우리가 속였습니다'라는 실토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렇게 반박하려면 진작에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모스크바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라고 번역했어야 옳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대목을 작은 글씨로 적는 한이 있더라도, 오케스트라 명칭 전체를 밝혔으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MSSO를 참칭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비슷한 이름으로 최고 권위의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를 연상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세계 정상급이라는 표현에 티켓 가격도 비교적 비싸게 책정한 것이다. 적어도 러시아 오케스트라 예술단체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정보 접근이 어려운 점을 이용해 주최측이 허위 또는 과장 광고 등으로 음악 애호가들을 현혹시켰다는 주장에 반박하기는 힘들 것이다. 

과거에도 유사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권위있는 러시아 발레단, 오케스트라 등을 연상케하는 '가짜 공연단'을 초청해 관객들을 실망시켰던 적이 있다. 또 유명 예술단의 방한에 이름이 알려진 일부 단원만 넣고, 나머지 단원은 거의 프리랜서로 채운 경우도 없지 않았다.

사실 러시아의 유명 예술단은 단원을 암묵적으로 1부, 2부로 나눈다. 해외 공연에는 1부 단원에 2부 단원들을 끼워넣기도 하는데, 한국 공연에는 정식 소속 단원도 아닌 프리랜서를 참여시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유명예술단 명칭을 그대로 썼다. 이 역시 '가짜 예술단'이라고 불러야 옳다.

30년 가까운 한러 문화예술교류 역사로 보면 이미 없어졌어야 할 '가짜 오케스트라' 논쟁은 흥행을 노린 일부 공연 기획사들의 도덕성이 여전히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국내 음악애호가들도 이제는 '러시아 최고의' 혹은 '세계정상급' 이라는 문구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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