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공식별지역(KADIZ)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에게 '독도 영공'을 인정하라고?
방공식별지역(KADIZ)도 인정하지 않는 러시아에게 '독도 영공'을 인정하라고?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7.31 0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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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7.23 독도 영공침범을 아직까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 국방부가 주한 러시아 무관들을 불러 영공 침범을 입증하는 증거자료를 다수 건넸지만, 러시아측은 묵묵부답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러시아 측에 사과나 유감표명, 적어도 해명이라도 하라고 닥달하는 것 같지는 않다. 사건 발생 처음부터 예견됐던 진행 상황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또다시 우리 영공을 침범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우려한다. 또 침범하면 나포하거나 격추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만 주변에 난무할 뿐, 사전에 침범을 막을 수 있는 대비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러시아는 왜 우리 영공을 침범하면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할까?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제2의 영공침범 사건을 막으려는 우리의 노력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러시아의 기본 인식을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우리가 설정한 한국방공식별지역(KADIZ)에 대한 러시아측 입장이다. 러시아 측은 7.23 영공침범 사건 이후 공개석상에서 "국제규범에 규정되지 않는 KADIZ를 러시아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는 "1951년 처음 설치하고 2013년 확장한 KADIZ는 이 지역의 영토 분쟁과 관련이 있다"며 일방적인 KADIZ 설정에 불만을 내비쳤다. 특히 제주도 남방 이어도는 중국과, 독도는 일본과 영토분쟁 중이어서 KADIZ를 더욱 확대했다는 식의 주장도 폈다.

KADIZ 설정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러시아의 군사전문가인 안톤 라브로프는 지난 25일 유력지 이즈베스티야에 쓴 기고에서 'KADIZ에 진입한 러시아 군용기를 왜 영공침범으로 볼 수 없는 지'를 설명했다. 독도 상공은 아예 우리의 영공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러시아 군용기에 향한 (한국측의) 경고사격이 없었다면, KADIZ 침범 사건은 주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늘상 일어나는 일이지만,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한국 측은 올해 러시아 군용기가 15번이나 KADIZ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일본은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 항공기가 999번이나 일본방공식별지역(JADIZ)로 진입했다고 집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방공식별지역(ADIZ) 비행을 한국이나 일본의 영공 침범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맞다. 방공식별지역은 국경선과 관련이 없다. 어떤 국제법적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것일 뿐이다. 

미국이 1950년대 처음 ADIZ를 그었을 때, 기존의 국제법상 영공 범위는 너무 좁았던 게 분명하다. 속도가 빨라진 전투기들과 대공방어시스템 때문이다. 기존 영공만으로는 치고 빠지는 적 전투기에 대응하는 등 대공 방어가 불가능해졌다.

일부 국가는 미확인 항공기를 잠재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처한다. 영공으로 접근하는 항공기를 레이더로 포착하고 전투기가 비상출격해 확인에 들어간다. 뉴욕 9.11 테러사건을 계기로 민간 항공기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ADIZ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도 있다. 미 공군은 자체 규정에 따라 다른 나라의 ADIZ를 무시한다.

지난 10년간 ADIZ는 눈에 띄게 확장됐다. 이번에 문제가 된 지역도 지난 2013년 한국의 ADIZ에 포함됐다. 동중국해 상공도 큰 논란의 대상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ADIZ 영역이 겹치기 때문이다. 

일본 전투기는 1년에 수백번 KADIZ에 진입한다. 그러나 군사적 합의에 따라 사전에 한국측에 통보한다. 중국 전투기는 영공에 진입하지는 않지만, KADIZ와 JADIZ를 몇 시간씩 순찰활동을 편다. 그러다 보니 상공에서 종종 전투기 조우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국경이나 비행금지구역 침범과 달리 그 지역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군사행동을 하는 것은 불법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공식적으로 ADIZ 영역을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국경선을 따라 다른 나라 항공기의 침범 여부를 확인하고, 전투기를 출격시켜 대응한다. 외국 언론이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을 비난할 때, 대개는 우리가 인정하지도 않는 ADIZ 진입에 관한 것이다.  

ADIZ는 본토에서 400km 이상 확대할 수 있다. 일본은 연해주 가까이, 미국은 거의 캄차카에 이른다. 러시아가 ADIZ를 준수한다면, 전략 폭격기나 해군 항공기, 장거리 레이더 정찰기는 태평양과 북극해, 심지어 러시아 해안 근처에서도 활동하기에 어렵다. 러시아 공군의 비행은 대개의 경우,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띠지 않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전투 비행, 정찰 또는 정보 수집 활동의 일부에 그친다.

이 글을 보면 독도에 대한 언급조차 없다. 독도의 한국 영공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7.23 사건으로 러시아가 독도의 한국 영유권을 인정한 셈이 됐다"는 식의 해석은 웃기는 이야기다. 아전인수도 그 정도면 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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