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공군기의 동해 초계비행, '국민 정서'도 성숙한 대응이 아쉽다
러시아 공군기의 동해 초계비행, '국민 정서'도 성숙한 대응이 아쉽다
  • 김진영 기자
  • buyrussia1@gmail.com
  • 승인 2019.08.12 05: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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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 침범에 이어 또다시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에 들어왔다고 시끄럽다. 그것도 국방부가 언론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가 일본측의 공개로 뒤늦게 인정하는 창피를 당했다.  

러시아 군용기는 왜 자꾸 우리 영공 근처를 순회할까? 시각을 조금만 바꾸면 우리 영공이 아니라 일본과 미군 기지가 있는 바다 주변을 돌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시각을 더 넓히면 러시아는 소위 '태평양 방공전략'의 일환으로 가깝게는 동해에서, 멀리는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 인근의 태평양 상공을 초계비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해상초계기 Tu-142(나토명 Bear-F) 2대는 6일 미국 알래스카와 캐나다 해안 인근의 태평양 상공을 13시간 동안 비행했다. 미그-31BM 초음속 요격기 2대가 Tu-142를 엄호했다. 러시아 공군기 4대가 공중급유까지 받아가며 13시간 동안 미국 주변을 정찰했다는 뜻이다. 미국과 캐나다 측도 즉각 대응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언론이 우리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전략폭격기 Tu-160(나토명 Blackjack)과 Tu-95MS, 해상초계기 Tu-142와 IL-38 등을 동원해 태평양과 북극, 북대서양과 발트해, 흑해 등에서 정기적으로 훈련및 초계 비행을 실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도 러시아와 다르지 않다. 러시아 서쪽의 발트해, 남쪽의 지중해와 흑해, 동쪽의 태평양 상공에서 유사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간혹 미국의 초계기 출현에 대응한 러시아 전투기들의 위협 비행으로 하늘에서 '긴박한 상황'이 조성되기도 한다. 지난 6월에도 지중해 상공에서 러시아 Su-35 전투기가 미국 해군 초계기 바로 앞을 수차례 고속으로 비행하는 등 위협적인 비행을 불사하는 바람에 양국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미국과 러시아 등 공군전력이 막강한 강대국들은 상대에게 '하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공격적인(?) 정찰 비행 활동을 펼 수 밖에 없다. 그들에게는 어차피 '장군' '멍군'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고래 싸움에 새우 배 터지듯' 유형 무형의 피해(?)를 당할 처지에 놓여 있다. 

갈등의 직접적 계기는 방공식별구역(ADIZ)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과 일본 등서방진영은 과거 냉전시절 공산권의 공군기 위협에 대응해 선포한 게 ADIZ다. 국제적으로 인정되는 영공과는 다른 개념이다. 소련은 물론, 지금의 러시아도 ADIZ를 인정하지 않는다. 국제법상으로 어떤 나라 비행기든, 군용기든 지나갈 수 있는 상공으로 받아들인다. 러시아측이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ADIZ를 침범한 자국 군용기들이 국제법상 합법적인 공간을 비행했다고 강변하는 이유다. 

엊그제 러시아 공군기의 KADIZ 침범도, 일본측이 자국의 방공식별구역(JADIZ) 침범으로 판단하고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등 긴급 대응을 했다고 발표하면서 알려진 것이다. 러시아 초계기 TU-142 2대가 독도 동쪽과 제주도 남쪽 상공을 왕복 비행했다고 한다. 제주도 남단 이어도 인근 상공은 JADIZ와 KADIZ가 중복되는 곳이다. 한국과 일본, 러시아 공군기가 필연적으로 조우해야 하는 지역이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공군기들은 한일 공군기의 대응 출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앞에서 비행 진로를 막는 것도 KADIZ나 JADIZ 침범 때문이 아니라, 영공 침범을 예방하는 조치로 생각한다. 그들의 초계및 훈련 비행 코스에는 한국과 일본의 ADIZ 통과가 들어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말의 독도 영공침범은 또다른 이야기다. 러시아 일부 언론은 독도와 어어도에 대해 '영토분쟁지역'이라고 쓴다. 사람도 살지 않는 작은 섬이 누구의 땅인지도 명확하지 않는데, 한국 영공이라니 '말이 안된다'는 발상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러시아의 공격적 초계비행에 우리의 대응은 어차피 제한적이다. 국방부가 러시아 공군기의 KADIZ 침범을 굳이 언론에 알리지 않는 것도, 국민 정서와는 달리 우리의 지정학적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대응은 우리 공군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태평양 해안을 초계비행하는 맞불작전이다. 하지만 우리의 공군전력으로는 아직이다. 그 다음으로는 ADIZ내에서 더 공격적인 대응이다. 중동의 터키는 시리아 공습작전 중에 자국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폭격기를 격추시킨 바 있다. 격추까지는 아니더라도 미-러시아간에 간혹 벌어지는 '위협 비행'까지는 가능하다.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안타깝지만 가장 합리적인 대응은 KADIZ에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를 우리 공군기들이 '밀어내기' 작전을 계속하면서 너무 호들갑을 떨지 않는 일이다. 러시아가 우리를 직접 겨냥한 게 아니라면, 아직은 그게 최선책은 아니더라도 차선책은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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