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아르한겔스크주 핵추진 엔진 폭발사고의 방사능 위험은 과장됐다?
러 아르한겔스크주 핵추진 엔진 폭발사고의 방사능 위험은 과장됐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8.16 07: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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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북부 아르한겔스크주의 군사훈련장에서 발생한 폭발 사고를 은근히 '제2의 체르노빌'로 빗대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반일감정'에 기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에 따른 방사능 위험을 뒤늦게 부각시키려다 보니, 때마침 좋은 소재가 등장한 것이라 본다.

어느 나라든 '1급 군사비밀'에 대해서는 소상히 밝히지 않는다. 사고가 난 아르한겔스크 훈련장에서는 러시아가 비밀리에 개발 중인 핵 추진 미사일의 엔진 실험중이었다고 한다. 현장에서 사망한 과학자 5명이 '영웅칭호'를 받은 걸 보면 그 실험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국방부가 사건 당일 '방사능 수치에는 변화가 없었다'고 방어막을 친 것은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한 통상적인 노력'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큰 사고가 나면 인근 주민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가기 때문에, 또 요즘처럼 SNS가 발달한 시대에는 과거처럼 쉬쉬하며 지나갈 수는 없다. 아르항겔스크 주당국이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방사능 관련 수치의 변화를 늦지 않게 공개했고, 실험을 주관한 러시아원자력공사(로사톰)도 실험의 얼개도 설명했다.

러시아 관련기사 묶음 캡처/얀덱스

다만 성급하게 '제2의 체르노빌'을 떠올릴 만큼 위험한 폭발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러시아 기상환경당국은 현지의 방사능 수준이 일시적으로 평소의 16배나 증가했다고 밝혔으나, 노르웨이 원자력 안전당국은 15일 러시아 국경 지역 대기 중에서 소량의 방사성 물질을 검출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 방사선 수치가 매우 낮아 사람이나 환경에는 아무런 해를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북부 지역에서 핵 관련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노르웨이측 발표를 기다린다. 사고 지점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측정 신뢰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날 노르웨이측 발표의 해당 시료는 핵 추진 엔진이 폭발, 방사능이 유출된 지 하루가 지난 9일부터 12일 사이에 채취된 것이다. 

따라서 폭발사건 당일 낮 12시께 훈련장 인근 도시 세베로드빈스크의 방사능 수준이 평소의 16배까지 올라갔지만, 서서히 낮아져 이튿날에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 자체로만으로는 아주 경미한 사고라고 할 수 있다. 

'소개가 아니라 권고'라는 현지언론 보도 

주민 소개에 대한 논란도 벌어진 것도 마찬가지다. 세베로드빈스크 시측은 "군사당국의 계획된 (사고 수습) 작업 때문에 (실험장 인근의) 뇨녹사 마을 주민들이 14일부터 마을을 떠나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했으나, 아르한겔스크 주당국은 "소개는 없다"고 일축했다. '방사능 위험이 존재한다면, 더 일찍 주민들을 소개시켰어야지, 수확철에 접어든 지금, 농사일을 두고 소개라니 말이 안된다'는 게 주 당국의 설명이다. 군 당국도 '소개'가 아니라 '권고'라고 했다. 

미국 언론 등 외신은 현지의 방사능 위험보다 실험 내용에 더 주목한다. 외신은 "러시아가 지난해 3월 푸틴 대통령이 소개한 신형 핵추진 순항미사일 '9M730 부레베스트닉'(나토명 SSC-X-9 스카이폴)을 시험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도 "우리는 비슷하지만 더 진전된 기술이 있다"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로사톰 사건 발표/로사톰 홈피

러시아측(로사톰)의 공식 발표는 "과학자 5명이 '액체 추진체의 방사성 동위원소 동력원'과 관계된 사고로 숨졌다"는 것이다. 희생자들은 모스크바 인근 니제고로드주 사로프시에 있는 '전 러시아 실험물리 연구소' 소속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방사성 동위원소 동력원'은 뭔가? 국영 스푸트니크통신은 "방사성 동위원소를 이용하는 '열전력 발전기'(thermoelectric generator)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연적인 방사능 붕괴에서 발생하는 열을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전력 생산에 사용하는 것으로, 핵물질의 연쇄 분열을 이용하는 일반 원자로와는 다르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이번 실험을 핵추진 미사일 '부레베스트닉'과 연결시키는 이유다.

'부레베스트닉'은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3월 연례 국정연설에서 공개한 신형 핵 추진 순항미사일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 미사일에는 핵 추진 장치가 내장돼 있어 사거리가 무한하다"며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를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고가 미국과 러시아의 핵무기 경쟁이 부활한 중요한 시점에 일어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양국의 핵무기 증강을 막아온 INF체제 붕괴후, 지구촌이 미-러간에 핵무기 경쟁으로 다시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이나 다름없다. 근본적으로 누가 잘못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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