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러시아 그리고 내일' 시리즈 - 30년전 원전사고 체르노빌에 관광객이 몰린다
소련, 러시아 그리고 내일' 시리즈 - 30년전 원전사고 체르노빌에 관광객이 몰린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8.18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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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복원에 젤렌스키 대통령의 개방선언, '다크 투어리즘'의 성지로 부상
HBO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인기 폭발, 현지선 공식 투어 예약 시스템 가동

인류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전 폭발사고. 1986년 4월 26일에 발생했으니 벌써 33년 4개월 가까이 지났다. 그 사이 소련은 붕괴됐다. 체르노빌의 관리 주체는 러시아와 티격태격하는 우크라이나 정부로 넘어갔다. 그리고 체르노빌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성지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바이러시아는 그 답을 찾아가는 시리즈를 시작한다. '소련, 러시아 그리고 내일'이다.

'다크 투어리즘'은 인류가 겪은 비극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이다. 2차대전 당시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나 캄보디아 '킬링필드'의 참상을 보여주는 뚜얼슬렝 박물관, 9ㆍ11 테러의 현장인 미국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 등이 대표적이다. 전쟁이나 사건, 재해 현장 등을 둘러보며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한 여행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제로는 끔직한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는 인간의 욕구에 기댄 상업적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된 사건일수록 지난 과거를 마치 현재인양 생생하게 되살리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그 계기가 된다. 체르노빌도 마찬가지다. 일부 마니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찾던 체르노빌 원전 폭발 현장이 지난 5월 방영된 미국 HBO의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인기에 힘입어 누구나 찾고싶은 여행지로 떠올랐다. 최근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 당선된 블라디미르 블론스키의 파격적 마인드는 그 흐름을 더욱 부추겼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소련, 즉 러시아가 만든 체르노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우크라이나 스스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7월 초 직접 체르노빌을 방문해 "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며 "우크라이나 국가 이미지에 큰 상처를 남긴 체르노빌 참사 현장을 계속 숨길 게 아니라 역사·생태 관광 중심지로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여행객들에 제한적으로 개방해온 참사 현장을 모든 사람들에게 문호를 활짝 열겠다고도 했다.

그리고 지난달 15일부터 체르노빌 공식 관광 안내 사이트에서 가이드 여행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인에게는 145달러, 외국 관광객에게는 185달러를 받는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이 투어는 미니시리즈 '체르노빌'에서 소개된 체크포인트 디챠트키 Дитятки와 크레샤틱 거리 Крещатик, 보르간 흐멜리니쯔키 Богдан Хмельницкий 거리 뿐만아니라 체르노빌 (역사)박물관, (폭발 원전 4호기를 봉인한 철제 구조물인) 민족 우정의 아치 Арка дружбы народов 등을 둘러보는 4시간 짜리 일정으로 짜여 있다. 

하지만, 일본 학자 아즈마 히로키 등이 2013년 체르노빌을 방문한 뒤 쓴 책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 가이드'에 따르면 사고가 난 원전 4호기 반경 30km 권내에 설정된 '출입금지 구역' 안에 있는 공원과 기념비 등을 돌아보고, 아직도 전기를 생산하는 원전 1, 2호기의 제어실 등을 방문했다고 한다. 아마도 특별한 목적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았거나 뒷돈을 찔러주고 들어온 방문객일 가능성이 높다. 

미니시리즈 '체르노빌' 화면 캡처

체르노빌 '다크 투어리즘'을 폭발시킨 미국 HBO 미니시리즈는 지난 5월부터 5부작으로 방영됐다. 지난 14일 국내에도 소개된 이 드라마는 체르노빌 참사 2년 뒤 소련의 핵물리학자 발레리 레가소프(재러드 해리스 분)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시작한다. 사고 당시 폭발 원인 조사를 담당한 위원회를 주도했던 레가소프는 폭발사고 전후 과정과 이후 일어난 은폐된 진실을 모스크바 아파트에서 녹음으로 남긴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화면은 폭발 당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폭발 소리에 잠에서 깬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애덤 나가이티스 분)는 “걱정할 것 없다”며 가족을 안심시킨 뒤 사고 현장으로 향한다.

같은 시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아나톨리 댜틀로프(폴 리터) 부소장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본다. 원전 직원들이 방사능 계측기조차 제대로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고, 댜틀로프 부소장이 소장에게 사고 위험성을 축소해 보고하는 사이, 이그나텐코 등 소방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발전소 불길 속으로 뛰어든다.

얀덱스 캡처

사고로 인한 직접 사망자는 원전 직원 2명과 소방대원 29명이었지만, 그 후 6년간 원전 해체및 봉인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5,722명과 지역 주민 2,510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방사능에 노출된 뒤 시름시름 사망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체르노빌 희생자는 11만5000명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고 현장에서 반경 30km 안의 마을은 지난 30여년간 ‘유령 마을’로 변했고, 11만명이 넘는 주민이 소개됐다. 인근 생태계는 송두리째 파괴됐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이 피폭 두려움에 발길을 끊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체르노빌의 생태계가 부활하기 시작했다. 방사능 오염 측정에는 체르노빌 주변에 떠돌고 있는 300여 마리의 개들이 동원된다. 사건 현장에서 사람들이 강제로 소개된 뒤 버려진 개들의 새끼 혹은 새끼의 새끼들이다. 전문가들은 이 개들을 대상으로 방사선 량을 측정하고, 기생충을 접종한 뒤 다시 풀어주는 '체르노빌 도그(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미니 시리즈 방영전에도 체르노빌를 찾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 달 체르노빌 전면 개방을 선언하면서 "검문소 앞에 길게 줄을 서거나 현장에 도착했는데 출입 허가 신청이 거부됐다는 통보를 받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만명이 다녀갔다고 하니, 올해는 15만명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100명 중 9명은 미국과 유럽 출신이다. 
 

체르노빌의 관광 성지화? 불법 유럽 관광객 체포 관련 기사/러시아 언론

체르노빌 현장 개방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러시아에는 HBO 미니시리즈 자체를 떨떠름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기존의 출입금지 지역에도 특별한 장비나 복장을 갖추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주장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굳이 가야 한다면, 긴팔, 긴 바지에 마스크를 쓰고 샌들을 신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한다. 또 어떤 음식도 먹지 말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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