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학파 류기룡 성악가, 캄보디아 국가의 재녹음에 도전하다
러시아 유학파 류기룡 성악가, 캄보디아 국가의 재녹음에 도전하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08.27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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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 러시아 유학, 예술단 행정가로 길을 걷다가 캄보디아서 8년째 음악 재능기부 중

'앙코르 와트의 나라' 캄보디아의 왕립예술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류기룡(49) 성악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저렴한 학비를 이유로 러시아에 유학한 뒤 '예술단 행정가'로 성공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캄보디아에서 재능기부에 인생을 맡긴 '특별한 음악인'이다.

그의 인생은 좌절과 극복, 새로운 길찾기를 반복한다. 어렵사리 음악가의 길에 들어섰지만, 대학(경북대)을 졸업할 무렵 좌절을 경험한다. 친구들이 성악의 본고장 이탈리아나 독일 등으로 유학을 떠날 때 비용 때문에 해외로 나가는 꿈을 접아야 했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찾아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소련오케스트라 국내 초청 공연을 가진 교수님의 네트워크로 러시아 유학의 길을 뚫은 것. 한 학기 학비가 400만원이란 얘기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1996년 러시아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으로 떠난 그는 성악 부문에서 대성하지는 못했지만, 예술경영학 과목을 이수한 덕분에 귀국후 일자리를 얻었다. 대구문화재단이다. 

그가 기억하는 러시아는 '종합 예술' 그 자체였다. 최고의 발레단과 오케스트라, 유서 깊은 극장까지 예술의 천국이었다고 했다. 대학에는 '예술경영학'이라는 과목이 따로 있었다.

캄보디아서 합창을 지도하는 류기룡 성악가/사진 출처: 류기룡

하지만 류씨는 대구문화재단에서 예술단 행정가로 8년을 일한 뒤 그만뒀다. 역시 적성에 딱 맞지는 않았던 것.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자 떠난 캄보디아에서 또 새 길이 찾아왔다. 2011년 캄보디아를 찾은 그에게 한 NGO단체에서 성악을 가르치는 재능기부를 제안했다. 캄보디아 왕립예술대학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지금 캄보디아 체류 8년째다. 가난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고단함을 느낄 무렵, 새로운 일을 찾았다. 1960년대 녹음된 캄보디아 국가의 낡은 음원을 새로 만드는 '국가적인 과업'이다.

사실 류씨는 캄보디아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현실이 벽 앞에 좌절도 많이 했다. 음악을 전공한 학생이 노래를 생계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물론이고, 실컷 창법을 키워 놓으면 밤무대나 웨딩파티에서 5달러를 받고 밤새 노래를 불렀다. 그리곤 수업은 자신들이 필요할 때만 들어오곤했다.

그는 캄보디아 학생들이 생계가 아닌 자긍심과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캄보디아 국가의 재녹음을 고안해 냈다. 경북도와 캄보디아 정부 간 협의로 이뤄진 재녹음은 현재 후반부 작업 중이다. 실제로 이 음원이 캄보디아에서 울려 퍼지기까지는 여러 실무 절차가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에 유학을 한 음악인으로 큰 자부심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외국인이 남의 나라 국가를 새로 녹음하는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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