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 통화 녹취록 공개에 떠는 것 푸틴 대통령만이 아닐텐데..
트럼프-젤렌스키 대통령 통화 녹취록 공개에 떠는 것 푸틴 대통령만이 아닐텐데..
  • 이진희 기자
  • 승인 2019.09.3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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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정상들간의 대화는 공개하지 않는 게 국제사회의 묵계다. 외교 문서 또한 일정한 시간이 흘러야 공개된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 법칙이 없다'는 건 자연과학계에만 통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소위 '우크라이나 스캔들' 논란을 촉발시킨 트럼프 미 대통령 -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간의 전화통화 내용이 녹취록까지 공개되는 걸 보면, 이 세상에 완전히 믿을 것은 없다.

문제는 그 후유증이다. 이미 그 불똥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튀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비밀 대화'를 나눈 정상들은 전전긍긍한다고 외신은 전한다.

트럼프 - 젤렌스키 양국 대통령간에 지난 7월에 이뤄진 통화내용이 최근 공개됐다. 정치적 계산에 밝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측의 비공개 요청에도 불구하고 통화 내용을 재구성한 녹취록 방식으로 공개한 것이다.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메르켈 독일정부를 비하한 것으로 독일 언론이 보도/얀덱스, 방송화면 캡처

녹취록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조 바이든 전 미 부통령과 그 아들 헌터 바이든에 대한 수사'를 제기한 트럼프 대통령의 민원(?)을 들어주기로 한 약속이 들어있다. 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대 우크라이나 지원 부족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이 불만을 토로하는 내용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러시아 관계에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약한 입지를 이용해 '갑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갓 취임한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움을 좀 얻어려고 애쓰다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그에게 '외교적 재앙'이 닥쳤다고 로이터 통신은 분석했다. 프랑스와 독일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요구했던 미국의 초당적 지지도 잃을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통화내용 공개로 마음이 급해진 건 러시아다. 자칫하면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지금까지 들여온 공이 통화내용 공개 한 방으로 훅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지난 27일 정기 언론 브리핑 자리에서 통화 녹취록 공개 가능성이 제기되자, "그런 일이 양국 사이에 일어나지 않기를 희망한다, 그렇지 않아도 양국 관계는 많은 문제로 곤란한 상황"이라고 희망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간의 통화 녹취록 공개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재로서는 푸틴 - 트럼프 통화내용이 공개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미국 민주당측은 이미 젤렌스키 통화내용으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 중이고, 통화 내용 자체가 유력한 민주당 대선후보인 바이든 전부통령을 겨냥한 것이어서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게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치 전선을 굳이 푸틴-러시아로 넓혀야 할 현실적 이득도 없다. 지난해 7월 핀란드에서 성사된 트럼프-푸틴 간 첫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놓고 이미 백악관과 힘겨루기를 한 바 있다. 미 백악관도 단단히 방어막을 치고 있다. 

불씨는 의외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로 번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사우디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미국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살만 왕세자가 원인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10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됐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비호를 받았다는 의혹을 지우지 못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살만 왕세자의 전화 통화는 '특급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 녹취록 접근도 몇몇 당사자에게만 허용됐다고 한다. 그만큼 예민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전화 통화는 카슈끄지 피살 사건으로 미 백악관이 곤란을 겪고 있던 때 이뤄졌다고 하니, 사후 대책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 정상간 외교관계에서 때로는 '비밀 협상'이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도 있다. 그 비밀협상이 한 나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 만천하에 공개된다면 그 국가와의 관계는 더욱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미-우크라 정상간 통화내용이, 비록 트럼프 대통령 개인의 재선을 목적으로 한 갑질성 행태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 국가를 배려하지 않는 미국의 정치 논리와 외교적 독선에 실망할 수 밖에 없다. 우리라고 당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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