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반도체 부품·소재 수출 규제 조치 이후,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와 중국, 대만 등에서 일본산을 대체할 수 있는 부품·소재를 찾아왔다. 일본 정부가 사실상 수출규제로 묶은 것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등 3개. 소위 3대 핵심소재다.
그나마 고순도 불화수소는 대체 가능성이 높은 소재로 전해졌다. 러시아측이 즉각 외교경로를 통해 고순도 불화수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을 표명한 탓도 컸다.
그로부터 3개월 가까이 지났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대체하더라도, 실제로 반도체 생산공정에 투입하려면 5~6개월의 검증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지적이었던 만큼, 이제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을 터. 러시아산 고순도 불화수소는 실제 공정에 투입되고 있을까?
궁금하던 차에,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한러대화 경제통상분과 양국 전문가 세미나'에서 일본산 대체 소재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러시아 관련 비즈니스 및 경협 컨설팅 전문가인 박종호 한러비즈니스협의회 대표가 세미나에서 "국내 기업들은 러시아산 고순도 불화수소 사용을 포기했다"고 전했다. 불화수소의 순도가 낮아 반도체 공정에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이더라는 것.
기대 섞인 정보(?)도 공개했다. 박대표는 "TV와 스마트폰용 OLED 디스플레이 제조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러시아에서 수입하기 위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화학 전문 기업 가운데 '에스트로콤'(Estrokom)이라는 업체가 있는데, 폴리이미드 제품을 러시아 연방우주청에 공급하는 등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에스트로콤은 삼성이 일본의 스미모토화학으로부터 제공받는 것으로 알려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에 필요한 원천기술을 가진 것으로 주장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러시아 포탈 얀덱스(yandex.ru)에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생산업체를 찾아봤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러시아어로 'фторированный полиимид' (프따리로반느이 뽈리이미드)로 쓴다. 한일 반도체 분쟁 당시, 러시아 관련 언론들이 쓴 단어다.
화학 분야에 특히 무식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단어로 검색한 결과,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전문 생산업체는 찾을 수가 없었다. 박 대표가 소개한 '에스트로콤' 홈페이지에서 생산품을 챙겨봐도 역시 'фторированный полиимид' 로 딱 떨어지는 관련 제품은 없었다.
에스트로콤은 Полиимидно-фторопластовые пленки 를 주력 제품의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비슷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фторопластовые는 불소수지를 뜻한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와는 다른 제품이라는 느낌이 왔다. 고순도 불화수소를 생산하는 러시아 업체를 2~3달전 얀덱스에서 검색할 때와는 너무 달라 조금 놀랐다.
박 대표는 세미나에서 "에스트로콤이 생산량은 적으나, 폴리이미드 제품 생산 기술력은 한국업체보다 우수하다"고 말했다. 폴리이미드 관련 제품은 국내업체들도 생산하고 있지만, 삼성전자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일본에서 수입하는 까닭은 역시 품질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박 대표의 발언에는 에스트로콤이 비록 주력 제품은 아니지만, 폴리이미드 제품군에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도 들어있을 것이다.
얀덱스에서 폴리이미드를 검색하면 생산하는 러시아 연구소나 민간 업체가 적지 않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니즈니노보고로드, 우랄지역 등에 관련 생산업체, 연구소가 있다. 이들 연구소 기업 역시 에스트로콤이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가 진짜 필요로 하는 고 품질의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생산하는 연구소나 기업을 러시아에서 찾아낼 수 있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