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구소련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푸틴 대통령 - 사우디 국빈방문이 화룡점정
중동에서 구소련의 영향력을 회복하는 푸틴 대통령 - 사우디 국빈방문이 화룡점정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10.16 0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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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군철수 발표 직후 푸틴-살만국왕 정상회담 / 깊이 있는 현안 논의
기존의 미-사우디-이스라엘 동맹을 러시아가 뒤흔들면서, 중동의 기존 판도가 바뀌는 중

중동지역의 거대한 정치외교판이 20여년만에 바뀌는 건 분명해 보인다. 구소련 붕괴이후 영향력을 급속히 넓혀왔던 미국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엉뚱한 결단(?)으로 쇠퇴하고, 러시아가 그 자리를 조금씩 차지할 전망이다. 과거 소련의 영향력을 되찾아간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시리아 북동부에서 미군을 철수하고 있다"고 한 14일, 푸틴 러시아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를 방문했다. 사우디는 미국의 오랜 맹방. 푸틴 대통령이 사우디를 방문한 건 2007년 이후 12년 만이다. 물론, 양국은 국제유가 문제로 자주 만났고, 살만 국왕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기도 했다.

푸틴대통령과 살만 사우디 국왕의 정상회담 

 

주목할 것은 방문의 타이밍이다. 사우디 정부는 살만 국왕과 빈 살만 왕세자가 이날 푸틴 대통령을 만나 시리아 내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립, 예멘 내전 등 중동의 다양한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고 공식 발표했다. 주로 미국과 의견을 나눠왔던 역내 주요 문제를 러시아측과도 '깊이 있게' 대화했다는 발표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사우디는 푸틴 대통령의 승용차가 공항에서 리야드 시내에 들어서자, 도로를 모두 비우고 기마대가 호위하는 최고 수준 의전을 제공했다. 

사진출처:크렘린.ru

 

살만 국왕은 이날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중동에서 활발한 역할을 하는 점을 높이 산다"며 "푸틴 대통령과 테러리즘 대처뿐 아니라 중동의 안보, 평화, 경제 성장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사우디를 좋은 우방이라고 여긴다"며 "사우디가 관여하지 않으면 중동의 현안 어느 것도 진전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화답했다. 

양국은 또 정상회담을 계기로 인공지능(AI)·에너지·석유화학 등을 중심으로 20건의 경제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모두 100억달러(약 11조8000억원) 규모로 양국 합작 기업 30개를 설립하기로 했다. 러시아가 눈독을 들여온 방공 미사일 S-400의 사우디 수출 방안도 논의됐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중동의 맹주로 꼽히는 이란과 사우디와 '깊숙한 대화채널'을 만드는 결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에서 발을 빼는 틈을 타, 입지를 확연히 넓힌 셈이다. 러시아는 이미 미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나토 회원국인 터키 측에 자국의 방공미사일 S-400을 수출했고, 시리아에는 이슬람공화국(IS) 반군 격퇴를 명분으로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이스라엘과 러시아는 서로 비자를 면제할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다. 중동 지역의 판을 움직이는 주요 국가들과 '접촉 면'을 그동안 크게 늘린 셈이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군의 시리아 철수로 미국에 적대적인 이란과 시리아, 러시아, IS세력 중에서 러시아의 이득이 가장 크다"고 분석했다. 모든 국가와 대화할 수 있는 나라가 러시아이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미군 철군에 따른 최고 승자가 푸틴"이라고 했다. 

특히 미군의 철수 직후, 터키 군의 공격을 받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은 러시아가 후원하는 시리아 정부와 손을 잡기로 했다.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족은 내전 기간 미국의 지원 아래 이 지역에서 IS 격퇴전을 주도하면서 알아사드 대통령의 시리아 정부군에 맞섰는데, 미국으로부터 뒤통수를 세게 맞은 셈이다. 그 배신감은 러시아와 손을 잡는 '현실적 타협'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엉뚱한 '한 수'로 중동은 기존의 동맹와 적대관계 판이 급속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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