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발행에 앞장서온 비실명 메신저 '텔레그램'이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텔레그램의 암호화폐 '그램'(GRAM)의 발행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최근 공식 채널을 통해 "새로운 정보 확보와 각국 정부 당국의 정책에 맞추기 위해 암호화폐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텔레그램은 지난해 초 암호화폐 발행 계획을 앞세워 무려 17억 달러 상당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텔레그램 메신저 서비스와 연동되는 블록체인 '톤(TON, 텔레그램 오픈 네트워크)'과 암호화폐 '그램' 발행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텔레그램이 정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증권 발행을 금지하는 증권법 제5조를 위반했다며 암호화폐 프로젝트 중단 처분을 내렸다. 텔레그램측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으나 끝내 정부 당국의 규제를 이겨내지 못하고, 프로젝트 진행을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텔레그램에 비하면 뒤늦게 암호화폐 '리브라'(Libra) 발행에 나선 페이스북도 처한 상황은 비슷하다. '리브라'를 주관하는 페이스북 주도의 '리브라 협회'는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비자와 마스터카드, 페이팔 등 주요 금융·결제업체들이 빠진 반쪽 회원들만으로 출범했다. 미 재무부가 "리브라가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국의 자금세탁방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결국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협박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결제 업체는 페이유 한 곳만 남았다고 한다.
미국 온라인 결제 업체 페이팔과 비자, 마스터카드, 스트라이프, 메가르도 파고 등 금융결제업체들은 "페이스북을 포함해 리브라 협회 회원사들은 아직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재무부 측 성명에 리브라 동참을 포기한 것이다. 이베이와 부킹닷컴과 같은 각 분야 대형 온라인 업체도 참여하지 않았다.
한발자국 앞서 암호화폐 발행을 추진해온 텔레그램측은 기업의 파산까지도 걱정해야 할 형편이다. 텔레그램은 암호화폐 투자를 유치하며 오는 10월 31일까지 발행 암호화폐를 투자자들에게 분배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어길 경우, 투자 자금을 되돌려줘야 한다. '대규모 자금난'에 처할 것은 분명하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텔레그램 프로젝트에 제동은 건 것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SEC는 "(텔레그램에 대한) 프로젝트 중단 처분은 불법적으로 판매된 텔레그램 암호화폐가 미국에서 유통되는 것을 막고, 텔레그램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에 텔레그램측은 전문성을 갖춘 공인 투자자에게만 증권을 판매하면 정부의 허가 없이 '폼 D' 신고서 작성만으로 증권을 판매할 수 있다며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든지 일반인에게 재판매가 가능한 구조라는 것이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수많은 블록체인·암호화폐 업체 중에서 페이스북과 텔레그램만이 강력한 정부 규제에 막힌 이유를 '서비스 영향력'에서 찾고 있다. 페이스북과 텔레그램과 같은 업계 1위 인터넷 업체가 암호화폐를 통해 금융업에 뛰어들면 기존 기축통화와 중앙은행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렇다고 암호화폐 발행을 계속 막을 수만은 없다. 러시아와 중국 정부는 암호화폐 형태의 디지털 통화 발행을 고민중이다. 기존의 서방 위주의 국제금융질서나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체제를 바꾸려면 암호화폐 발행외에는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텔레그램이나 러시아 루블화, 중국 위안화가 암호화폐로 미국의 중앙은행 권위, 달러 체제에 맞서는 건 닮은 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