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가연합' 로드맵, 19일에 결판난다?
러시아와 벨라루스의 '국가연합' 로드맵, 19일에 결판난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11.15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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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통합을 위한 28개 로드맵 각료회의 제시, 거부될 경우 양국정상의 담판
벨라루스의 조세, 농축산, 에너지, 기업에 대한 러시아지원이 관건-가능할까?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시장 통합', 나아가 '국가 연합'을 위한 로드맵을 마련해 오는 19일 서명을 앞두고 있다. 벌써 20년 전 양국이 합의한 '국가연합 조약'에 따른 것이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처럼 여전히 통합을 막고 있는 걸림돌은 적지 않다.

서방 일각에서는 '양국 연합'을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 이어 형제국 벨라루스를 집어삼키려는 의도로 본다. 가장 큰 이유로 3연속 대통령 연임 금지 헌법 규정을 피해가려는 푸틴 대통령의 권력욕을 든다.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푸틴대통령은 이미 연임제한 헌법규정에 따라 2008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에게 대통령직을 넘겼다가, 2012년, 2018년 재집권을 일궈냈다. 2024년에는 재출마할 수 없다. 이번에는 남에게 대통령직을 넘기는 게 아니라, '러시아-벨라루스 통합 대통령'으로 권력을 이어갈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벨라루스와 통합을 추진하는 건 분명히 아니다.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 러시아와 통합프로그램 제시 /얀덱스 캡처

 

구소련 붕괴로 갈라선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그동안 꾸준히 통합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시작은 1999년 체결한 '국가연합조약'이다. 양국은 혈통·언어·종교·문화가 같거나 비슷하다. 굳이 두 나라로 살 이유가 없다. 양국의 이해에 따라 사람과 물자의 자유로운 이동 등 통합을 위한 전제조건은 많이 조성됐다.

문제는 제도적 통합이다. 1994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이 '통합 이론'에는 찬성했지만, 실제 통합에는 발을 빼온 측면도 적지 않다. 루카센코 대통령의 권력욕도 작용해왔다고 봐야 한다. 러시아를 둘러싼 국내외 정세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게 양측의 시각인 듯하다. 국제유가 폭등으로 한동안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벨라루스는 벨라루스대로 굳이 통합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본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무력분쟁과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따른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국제유가 폭락 등으로 러시아는 2014년부터 긴 경제침체기에 빠졌고, 덩달아 벨라루스 경제도 가라앉았다. 시장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얻고 경제 성장의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새롭게 부각된 것이다.

지난 3월 시작된 협상은 6개월여만에 2021년까지 단일 세금 체제와 민법, 대외무역 통합체제를 만들고 통합하자는 '로드맵 합의'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실무적으로 여전히 세금 체제와 농산물 공급, 가스 및 석유 제공 문제가 '로드맵 서명 및 실행'의 발목을 잡고 있다.

러시아 국가두마/바이러 자료사진

 

이 마지막 난관을 돌파하기 위한 정치적 일정이 오는 19일로 잡혀 있다. 벨라루스의 세르게이 루마스 총리는 최근 러시아와 벨로루시 통합을 위한 28개 로드맵이 19일 각료회의에 제시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벨로루시의 이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로드맵에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드맵은 일단 '두 국가-하나의 시장' 원칙으로 전해졌다.

각료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할 경우, 로드맵은 푸틴 - 루카센코 대통령 손으로 바로 넘어간다고 한다. 양국 정상들이 담판하겠다는 뜻이다.

벨라루스가 선뜻 서명하지 못하는 것은 부가가치세 등 세금 체제와 관련된 입법 문제가 걸려 있다. 기존의 러시아 방식으로 조세요율을 결정하면, 벨라루스는 국세 수입이 상당히 줄어든다고 한다. 이때 벨라루스 재정을 지원해줄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벨라루스 정부가 안심할 수 있다. 당장은 가스, 석유 등 에너지 분야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 벨라루스가 러시아와 국가연합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과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

 

또 시장이 통합할 경우, 러시아 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벨로루시 기업들에 대한 다양한 지원 문제도 있다. 벨라루스측은 러시아와의 통합 시장에 관심이 있는 기업들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유예 기간을 로드맵에 포함시키려 한다. 벨라루스는 또 자국의 농축산, 낙농 산업에 대한 보호와 대외교역 문제도 내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라루스로서는 끝까지 양보할 수 없는 것들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러시아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국가연합을 통해 구소련식 연방체제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일까? 최소한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소련붕괴 직후 대안으로 등장한 CIS체제가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무실해진 것을 되돌리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각기 따로 살림을 살아보니, 서로 아쉬운 것도 적지 않은데, 어차피 유럽연합(EU)으로 간 발트 3국은 빼더라도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앞장 서 카프카스권(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그루지야)과 중앙아시아권(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5개국) 국가들과 느슨한 국가연합 체제를 결성하자는 것이다.

기존의 CIS국가 몇개가 가입한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는 다른 행보다. 독일과 프랑스가 앞장서 유럽연합(EU)을 만들어 나간 것과 유사하다. 그 시작은 역시 두 나라간 '시장 통합'이다. EU도 '시장 통합'을 유럽통합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그런 다음 국가 재정정책, 입법및 안보, 국가 공공 정책 등을 통합해야 한다. EAEU체제는 다른 CIS국가를 국가연합 체제로 끌어들이는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벨라루스와 연합에 더 신경을 쓰는 것은 벨라루스의 지정학적 위치다.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흑해, 서쪽으로는 나토회원국인 폴란드와 EU, 북쪽으로는 리투아니아 등 발트3국에 둘러싸여 있다.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국가안보에 중요하다. 

우크라이나가 끊임없이 반러 친서방 노선을 걷고, 결국 반쪽으로 갈라져 동부지역에서 무력 분쟁이 발생한 것도,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기도 하다. 서방과 러시아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팽팽하다 못해 끊어지면서 우크라이나를 반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벨라루스는 '백러시아'라는 국가명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우크라이나와는 다르다. 러시아의 일부라는 인식이 있다.

구릉 지대로 이뤄진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국경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모스크바에서 민스크 방향으로 달리는 대로를 따라 가면 민스크에 도착한다. 육로 국경에서 출입국 관리나 세관 절차가 없다. 심지어 모스크바에서 벨라루스로 가는 항공편이 국제선 청사가 아니라 국내선 청사에 위치하기도 했다.

3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아온 두 국가가 다시 합치려니 현실적으로 많은 문제가 불거진다. 이 문제들을 극복하는 힘은 결국 러시아가 갖고 있다. '러시아-벨라루스 국가연합'의 출범은 러시아의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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