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과의 첫 담판서 밀리지 않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푸틴 대통령과의 첫 담판서 밀리지 않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19.12.11 0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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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노르망디 4국 회담서 '포로교환, 군대철수, 지뢰제거' 등 가시적 성과
푸틴 대통령. 우크라이나 통과 석유가스관 재가동 카드도 꺼내놔...이유는?

파리 '노르망디 4개국 회담'에 참석한 블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얻은 성과가 의외로 '쏠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중재자들(독일과 프랑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9일 파리에서 열린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첫 협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의 대선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첫 단추를 제대로 꿴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젤렌스키-푸틴 대통령은 이날 파리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의 분쟁 종식을 위해 전면적이고, 포괄적인 휴전 절차 이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분쟁 지역에서 붙잡힌 양측의 모든 포로들을 올해 말까지 교환하고, 내년 3월까지 우크라이나 동부의 3개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하며, 인도적 지원 루트를 확보하기 위해 지뢰 제거에 나선다는 것 등이다.

4개국 공동성명 발표및 기자회견/사진출처:크렘린.ru

 

4개국 정상들은 회담이 끝난 뒤 이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합의 내용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대선 유세과정에서 "러시아와 협상을 통해서라도 동부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고, 붙잡힌 군인들을 모두 집으로 돌아오게 하겠다"는 공약을 이행한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의 진행 과정 역시 쉽지는 않겠지만, 정치적으로는 일단 협상을 통해 대 국민 약속을 지킨 셈이다.

이번 협상에서는 지난 2015년 2월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4개국 정상이 합의한 우크라이나 분쟁 해결 방안, 즉 '민스크 협정'의 실질적 이행 문제가 주로 논의됐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측은 '민스크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크고 작은 교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사실상 3년만에 '민스크 합의'가 다시 협상 테이블에 오른 것인데, '제2의 민스크 합의'로 불릴 만큼 일정한 성과를 내긴 했지만, 그 과정은 아슬아슬했다고 한다. 

아르센 아바코프 우크라이나 내무부장관은 파리 회담이 끝난 뒤 한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 측이 군대 철수 대목에서는 화가 나서 서류를 집어던지는 등 과격한 행동을 서슴치 않았다"고 공개했다. 크렘린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즉각 부인했지만, 우크라이나측이 대놓고 협상 뒷이야기를 털어놓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우크라이나측이 얻은 게 많았다는 생각이다.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정상회담에서 수르코프(러시아 대통령 보좌관)가 '머리가 돌 정도였다'는 아바코프(우크라이나 내무부장관)의 발언을 부정했다./ 얀덱스 캡처 

 

협상과정에서 불거진 양측의 공방은 합의 이행 과정에서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이 군사행동의 중단에 방점을 찍은 만큼, 동부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은 멈춰 서겠지만, 향후 돈바스 지역의 지위를 놓고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하다. 러시아는 '민스크협정'에 규정된 대로 돈바스 지역에 자치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는 3만5,000여명의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의 국경 통제권을 먼저 되돌려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서로 양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번 회담을 중재한 마크롱 대통령도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지방 선거 일정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4개월 안으로 새로운 회담을 열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이견 해소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돈바스 지역'이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간스크 주를 함께 일컫는 용어다. 러시아계 인구가 40%가까이 되는 곳이어서 1991년 독립이후 줄곧 친러시아 색채가 강했다.

무력 분쟁도 지난 2014년 4월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세력이 '반정부 대규모 시위'를 통해 친러 세력(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고 정권을 차지(포로셴코 대통령)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러시아계는 이를 '쿠데타'로 규정했고, 러시아계 주민이 많은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에서 분리 독립 요구가 터져 나왔다.

러시아 정부는 우선 러시아계 인구가 약 60%에 달하는 크림반도에는 군대를 파견, 주민투표를 통해 크림반도를 러시아로 병합시켰다. 그리고 돈바스 지역에는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러시아계 주민들의 독립 욕구를 부추겼다. 두 지역은 이후 '루간스크인민공화국'와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한 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독립 전쟁(?)' 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정부군과 반군의 충돌로 1만3천 명 이상이 숨지고, 100만명가량이 피난한 것으로 파악된다. 

왼쪽부터 푸틴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 메르켈 총리, 젤렌스키 대통령

 

전문가들은 앞으로 협상이 러시아에 유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돈바스 지역 분쟁 문제를 규탄하면서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해왔던 유럽 국가들이 최근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대한 압력도 최근 느슨해진 게 사실이다.

또 트럼프 미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탄핵 위기에까지 몰려 있다. 적극적으로 이 문제에 개입하기 힘든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도 "당신(젤렌스키)과 푸틴(대통령)이 만나서 잘 해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도 했다.

젤렌스키와 푸틴 대통령이 이 문제를 놓고 1대1 담판을 벌인다면, 결과는 뻔하다. 강대국이 이길 수 밖에 없는 게 국제사회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동부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며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강조했는데, 강대국 러시아를 상대로 너무 순진한 태도가 아니냐며 일부 외신이 우려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분쟁 종식 과정을 통해 유럽의 대러 경제제재 해제를 기대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첫 만남에서 군 관련 실무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선뜻 양보한 것도 노리는 더 큰 다음 수가 있기 때문아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 석유 가스의 유럽 공급 방안을 푸틴 대통령이 다시 꺼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럽의 경제제재가 해제되면 그 다음 수순으로 러시아는 축출된 G7+1(서방선진 7개국과 러시아) 체제인 G8 복귀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이전으로 사실상 돌아가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크림반도 병합에 대한 보복 조치로 러시아를 G8에서 축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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