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20여년전 옐친 대통령 심장병 돌연사 가능성에 외교안보 대책 마련
영국, 20여년전 옐친 대통령 심장병 돌연사 가능성에 외교안보 대책 마련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1.01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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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된 외교문서에 돌연사 대비 준비 드러나, 조문단 구성에 나토 준회원국 부여 방안도 검토

보리스 옐친 전대통령은 1995년 10월 말 심장병으로 모스크바 중앙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모스크바에 주재하고 있던 전세계 언론은 옐친 대통령의 사망 가능성을 높게 보고, 크렘린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필자도 모스크바 부임 첫날부터 옐친 대통령의 건강에 관한 기사를 송고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파란만장한 모스크바 특파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했다. 벌써 24년전의 이야기다. 

얀덱스 캡처

 

영국 국가기록원이 지난 31일 비밀해제한 외교전문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당시 옐친 대통령의 돌연사 가능성에 대비해 정치외교적 대책을 다각도로 강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옐친 대통령은 4년 뒤인 1999년 12월 31일 전격적으로 사임을 발표한 뒤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무려 7년을 더 산 뒤 2007년 4월 23일 사망했다.

옐친 대통령이 심장에 이상을 느껴 병원에 입원한 것은 미 뉴욕에서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사흘만인 1995년 10월 23일. 당시 주 모스크바 앤드루 우드 영국대사는 외교부로 보낸 전문에서 "옐친 대통령은 뉴욕 하이드파크서 열린 정상회담 만찬에서 와인과 맥주를 들이부으면서도 코냑이 없어서 아쉬워했다"며 "그가 너무 마셨다고 판단한 보좌관 하나가 샴페인 잔을 치울 정도였고, 그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취기로 신이 난 상태였다"고 밝혔다.

우드 대사는 10월 27일자 전문에서는 "옐친이 갑작스럽게 사망한다면, 우리는 유례없는 정치적 혼란 시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으며, 영국 외무부도 옐친 대통령의 재입원 한달 후 총리실에 보낸 메모 형식 보고에서 "첫 심장마비 후에 음주량을 줄이려는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으며, 이번에도 더 나으리라고 볼 만한 이유는 거의 없다"며 "옐친 대통령의 임기 중 사망할 가능성에 대비한 계획을 작성했다"고 설명했다.

영국 정부는 옐친이 돌연사할 경우, 조문단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느 수준의 애도 성명을 발표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보분야에서 상황의 긴박감을 인식한 맬컴 리프킨드 당시 영국 국방장관은 러시아 정부의 불안을 진정시키는 방안으로 러시아를 나토의 준회원으로 가입시키는 구상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같은 준회원국 구상은 영국 총리 별장에서 열린 내각 외교 세미나에서 진지하게 논의됐다. 

리프킨드 국방장관은 세미나에 앞서 존 메이저 당시 총리에게 자신의 구상을 미리 보고하면서 "나토에 준회원 자격을 새로 만드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준회원국 지위를 만들면, 회원국에 대한 침략을 동맹 전체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는 조항과 거부권 조항 등 나토의 핵심에는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러시아를 나토의 편으로 묶을 수 있다고 리프킨드 장관은 설명했다. 

옐친 대통령의 재임 당시, 러시아는 소련의 붕괴로 영토가 축소되고, 서방과의 새로운 외교관계 구축이 숨가쁘게 진행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총리실은 나토의 의사 결정구조에 미칠 영향 등을 거론하며 국방부의 준회원국 부여 방안에 부정적인 의견을 개진했으며, 켄 클라크 당시 재무장관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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