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실과 바늘'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갈라섰다? - 향후 정치적 운명은
[심층분석] '실과 바늘'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갈라섰다? - 향후 정치적 운명은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1.19 0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년 가까이 '실과 바늘'처럼 모든 영욕을 함께했던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데프 총리가 이젠 헤어질 모양이다.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푸틴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내각 총사퇴를 선언하고 물러난 메드베데프 전총리에게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이라는 직책이 주어졌지만, 일단 권력 일선에서는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를 대신할 총리에는 정치색이 없는 '기술 관료' 출신의 미하일 미슈스틴 국세청장이 선임됐고, 지명 이튿날 국가두마(하원)의 동의를 받았다. 

메드베데프 총리가 사퇴한 마지막 국무회의 모습. 오른쪽이 푸틴대통령/사진:크렘린.ru

 

메드베데프 총리는 푸틴 대통령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 총리'였다. 헌법에 규정된 '3선 연임 불가' 규정을 피하기 위해 푸틴 대신 대통령직에 오른 정치적 인물이었다. 그리고 군말없이 푸틴에게 대통령직을 돌려준 최측근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푸틴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계기로 정부의 핵심 보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푸틴의 향후 권력구조 개편 과정에 적극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 현지의 한 매체는 '메드베데프는 왜 지금 물러났나?' Почему Медведева уволили именно сейчас 는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2가지다. '푸틴식 개헌'에 반대하면서 스스로 물러났다는 해석과 향후 진행될 개헌과정에 개입시키지 않고 개헌후 다시 중용하기 위한 '푸틴의 포석'이라는 분석으로 갈린다. 

메드베데프를 하필 왜 지금 물러나게 했을까?/현지 매체 로스발트 캡처

 

크렘린 '이너서클'(핵심그룹)은 푸틴 대통령이 2024년 어떤 형식으로든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예상해 그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고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로비키'(전 KGB 군부그룹)와 테크노크랫(전문 관료), 제3의 그룹이 당사자들이다. 메드베데프 총리가 실로비키 출신은 아닌 만큼, 후계자 자리를 이어갈 차기 총리는 실로비키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실로비키 출신 후계자로는 이고르 세친 로스네프트 회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부 장관, 세르게이 이바노프 전 행정실장 등의 이름이 꾸준히 나돌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세친 회장은 푸틴의 KGB 시절 동료이자 핵심 측근이다. 쇼이구 국방장관은 현재까지 가장 가까이서 푸틴 대통령을 보좌하는 인물. 지난해 10월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시베리아 타이가 초원지대로 '나홀로 여행'을 떠났을 때, 유일하게 동행했다. 이바노프는 KGB출신으로 국방장관과 제1부총리를 지낸 고향 친구. 대통령실 행정실장(비서실장)으로 푸틴의 대통령 컴백 이후 '권력' 조정역할을 맡았다. 호시탐탐 권력 복귀를 노리는 친구다.

전문 관료로는 알렉세이 쿠드린과 안톤 실루아노프 전현직 재무장관 등 경제전문가가 유력했다. 경제난 극복과 삶의 질 개선, 경제적 대외 영향력 회복 등 그 이유는 분명하다.

미슈스틴 신임 총리

 

푸틴의 선택은 제3의 인물이었다. 디지털과 세무행정 전문가인 미하일 미슈스틴 국세청장. 제4차 산업혁명을 이끌 적임자라는 평가도 있고, 무명의 '용병 총리' 역할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어떤 경우든, 그가 푸틴 대통령의 '이너서클'이나 '가신'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성과를 거둘 것이다. 

메드베데프 전 총리에게는 현 국면이 최대의 위기다. 한번 대통령직을 수행했기 때문에, 앞으로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 낙점을 받는다고 해도, 헌법이 개정(대통령직 3번 금지)될 경우, 대통령직을 한번만 하고 내려와야 한다. 그의 정치력에 대한 평가도 좋지 않다. 부정부패 연루 혐의 등으로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의 이번 총리 사임을 두고 일부 외신이 '치욕스러운 최후'라고 부른 이유다. 

푸틴 대통령과 묘한 표정의 메드베데프 /사진:크렘린.ru

 

하지만, 그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하는 건 섣부르다. 틴 대통령과의 신뢰관계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두 사람은 1990년 푸틴 대통령이 KGB를 그만두고 상트페테르부르크시로 옮겨갈 때부터 지금까지 '바늘과 실'의 관계를 이어왔다. 푸틴은 모스크바의 중앙 정치무대에 진입할 때 메드베데프를 데려와 곁에 두었고, 1999년 말 옐친 대통령의 사임으로 권한대행이 되자 그를 크렘린에 입성시켰다. 2000~2008년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 때문에 총리로 물러나면서 그를 대통령에 앉히기도 했다.

현지 일부 전문가들이 메드베데프의 이번 총리직 사임을 향후 또 중용(대통령)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야심이 큰 실로비키 중에서 후계자를 택할 경우, 푸틴 대통령의 퇴임후 입지가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전총리는 절대로 푸틴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메드베데프의 정치적 추락은 야권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가 2017년 그의 부정축재를 고발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푸틴 대통령 대신 야권의 타킷이 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메드베데프가 12억달러(약 1조4천억원)를 횡령하고,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감추기 위해 지인을 동원했다는 등의 의혹은 '차기'를 노리는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우크라이나 사태이후 서방의 대러 경제제재와 국제 유가하락 등으로 초래된 경제위기도 내정을 맡고 있는 '총리의 책임'으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그는 최근까지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30%대의 낮은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그가 앞으로 새로 맡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으로서 어느 정도 국정에 간여할지는 불투명하다. 국가안보회의 의장인 푸틴 대통령에 의중에 달려 있는데, '숨어 있는 용'이 될지, 수명을 다한 '이무기'로 끝날지 지켜볼 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