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국가평의회 강화, 푸틴의 권력연장으로 가는 제3의 길인가?
(분석)국가평의회 강화, 푸틴의 권력연장으로 가는 제3의 길인가?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1.24 0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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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기관'으로 독립하는 국가평의회, 권한과 구성 등 구체 내용은 아직 모호
푸틴, "대통령위 새 기구 설치 안된다" 확대해석 제동, 중국 덩샤오핑식 겨냥?

푸틴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 개정안이 '속전속결'로 처리되고 있다. 지난 20일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에 넘겨진 개헌안은 사흘만에 하원의 1차 독회를 통과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총리 임명권을 넘겨받는 하원으로서는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실제로 정파를 불문하고 참석 의원 432명 전원이 개헌안에 찬성했다.

크렘린이 공개한 푸틴의 집권 20년 발자취/사진:크렘린.ru

 

개헌안은 내달 11일 2차 독회를 거쳐 3차 독회, 상원 승인이 완료되면 국민투표로 넘어간다. 국민투표는 오는 4월12일께 실시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강력한 대통령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권력구조 개편을 3개월만에 해치우는 셈이니, '초 스피트 개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개헌안에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기존 대통령제의 포기 여부와 새로 헌법기관화하는 '국가평의회' Госсовет 의 향후 역할이다. 개헌안을 제안한 뒤 개헌준비 실무진과 국가유공 퇴역군인, 사회활동가, 대학생 등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나 개헌의 의미를 설명하고 해명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집중되는 질문도 바로 이 두가지다. 

다양한 계층의 국민(위는 대학생 그룹)을 만나 개헌안을 설명하는 푸틴대통령

 

푸틴 대통령은 의원내각제로의 실험은 러시아에서 재앙이 될 수 있다고 거듭 경고했다. 그는 총리 임명권 등 상당한 권한을 의회로 이관하는 개헌안 내용을 설명할 때부터 '의원내각제'로의 이행으로 해석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22일 러시아 서부 리페츠크 지역 사회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가 의원내각제로 이행하는 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종교, 많은 인종과 민족을 거느린 러시아 같은 나라에는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원내각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하려면 탄탄한 정치 구조가 필요하다"며 유럽 국가들과 러시아의 정치 상황을 비교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유럽의 일부 정당들은 몇 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데, 러시아 정당들은 특정 인물과 연관돼 있다. 예컨데 극우민족주의 성향의 '자유민주당'은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가 없으면 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오랫동안 독일에 주재했던 KGB 출신다운 분석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평의회'의 존재다. 지금까지 대통령의 자문기관에 불과했던(?) 국가평의회를 독립시켜 헌법기관화하고, 그 역할을 강화하자는 게 푸틴 대통령의 개헌 의지다. 2024년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푸틴이 국가평의회를 통해 국정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헌법 개정안 초안은 “러시아 국가기구들 사이의 효과적인 협력과 조율, 그리고 국내외 정책과 사회경제적 발전의 핵심 원칙들을 정하기 위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연방 국가평의회 Госсовет를 구성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이나 구조, 구성 방법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게 없다.

2000년에 만들어진 국가평의회는 현재 크렘린의 직제속에 포함되어 있다. 대통령 공식 홈페이지에는 대통령행정실과 국가안보회의 사이에 '조직 설명'이 들어 있다. 지난 2017년 구성원들이 일부 개편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주요 임무는 국가적 중요 문제에 대한 토론과 대통령 결정의 지방 전달, 연방 예산 초안에 대한 논의, 주요 인사 정책 논의 등이다. 국가안보회의가 국가 안보에 관한 주요 문제를 협의하는 자리라면, 국가평의회는 안보 문제를 제외한 국내 주요 문제를 논의하는 기관이라는 것이다.

 

대통령 홈페이지의 조직 설명에는 대통령, 행정실, 국가평의회, 안보회의, 기타 위원회및 평의회 순으로 되어 있다./크렘린.ru 캡처

 

전문가들은 개헌 후 국가평의회 위상과 향후 역할 등을 놓고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 상황이다. 푸틴 대통령의 ‘종신 집권 플랜’ 중 하나라는 분석에서 개헌후에도 '달라질 게 없다'는 의견까지 실로 다양하다. 러시아적인 상황에서는 개헌후 독립적인 헌법기관인 국가평의회를 누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그 위상이 확보되는 게 아닌가 싶다. 

때마침 푸틴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발언이 나왔다. 22일 남부 휴양도시 소치의 한 교육센터에서 러시아 대학생들과 만났을 때 직설적인 질문이 나왔다. 한 여학생이 "(2024년 퇴임후) 권력 교체기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소련에서 러시아로 권력이 넘어간) 1990년대에는 길거리에 나가기도 무서웠다고 들었다"며 "싱가포르나 카자흐스탄 같은 나라에선 사회 안정을 위해 권력 교체기에 특별기관들을 만들었다. 이와 유사한 것을 러시아에 만들면 어떤가"라고 대놓고 물었다.

푸틴, 러시아에서 이중권력은 안된다고 발언/얀덱스 캡처

 

그의 답변은 단순 명료했다. 그는 "내가 (국부와 같은) '인물'이 되길 바라느냐?"고 반문하면서 "당신이 제안하는 것(특별기관)은 대통령제를 훼손할 것이고, 러시아 같은 나라에는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대통령 위에 어떤 기구가 생긴다면, 이중권력이 되는 것'이라며 "그것은 러시아 같은 나라에선 파멸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리콴유는 훌륭한 사람이며 거의 30년을 권력에 있었다. 사실상 싱가포르를 만들었다. 싱가포르는 또 의원내각제 국가로 러시아의 정치 상황은 크게 다르다"고 지적했다. 

발언의 진실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리콴유식 권력 이양은 러시아 상황에 맞지 않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식은 어떨까?

나자르바예프 전 카자흐스탄 대통령/얀덱스 캡처

 

푸틴 대통령의 답변이 싱가포르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면, 여지는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30년 가까이 집권한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대통령직에서 자진 사퇴했으나, 나중에 ‘엘바시(민족지도자)’라는 호칭를 부여받고, 여전히 국가안보회의 의장과 집권여당 대표, 국가 헌법위원회 의원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최고권력자라고 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의 예를 따른다면 그가 국가평의회 의장과 집권 여당인 '통합 러시아당'의 총재 등을 맡아 크렘린과 의회를 움직이고, 총리 임명 등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의외로 러시아 일부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리콴유나 나자르바예프보다는 중국의 덩샤오핑에 더 관심을 갖고 있을 것이고 지적한다. 나라의 덩치나 권력 구조, 공식 직함을 갖지 않았던 덩샤오핑의 전략 등을 볼때 2024년 퇴임후 푸틴이 선택할 길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땅덩어리가 크고, 민족이 다양하다. 1당 독재 국가다. 그러나 최고 권력은 덩샤오핑 이후 10년 주기로 바뀌고 있다. 권력 내부의 세력 균형 때문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종신 권력'을 도모하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내 세력 분포로 볼때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러시아도 개헌을 통해 대통령의 3선이 금지되면, 12년 주기로 최고 권력이 바뀐다. 대통령의 권력도 상당부분 의회로 넘어간다. 권력의 세력 균형이 과거 '소비예트 체제'처럼 이뤄질 수도 있다.

푸틴 대통령과 전현 총리, 위는 미슈스틴 총리, 아래는 메드베데프 전총리/크렘린.ru

 

그럴 경우, 푸틴 대통령은 덩샤오핑처럼 퇴임후 공식 직함을 갖지 않고서도 국정 운영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중국은 여전히 공산당 1당독재 체제이고, 러시아는 그렇지 않다는 것. 과거 '소비예트 체제'처럼 당을 통한 절대권력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게 최대 약점이다. 

그렇다고 해도, 푸틴 대통령이 자신에게 권력을 넘겨준 옐친 전대통령을 끝까지 예우했듯이, 퇴임후 후계자들로부터 최소한의 예우를 받을 수 있다. '집권 연장'을 꾀한다기 보다는 퇴임후 안전을 보장받는 시나리오를 만들어간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물론 최선의 시나리오는 덩샤오핑식 영향력 행사다. 그것도 앞으로 4년 동안 나자르바예프식 방식도 일부 접목하는 등 권력 집행 기반을 잘 닦아 놓으면 가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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