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법인장으로 러시아에 머문 시인 송종찬,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펴내다
대기업 법인장으로 러시아에 머문 시인 송종찬,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펴내다
  • 김진영 기자
  • buyrussia1@gmail.com
  • 승인 2020.02.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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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의 러시아 주재원이 정식으로 등단한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그 시인이 포스코 모스크바법인장 출신이라는 사실도, 러시아 문학을 전공했다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뒤 러시아에 오래 머무른 시인이 보고 느끼는 러시아는 어떨까? 더 넓고 깊은 감성이 스며든 민낯이나 속살을 보여주지 않을까? 그 궁금증은 송종찬 사인이 최근 펴낸 산문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송종찬 지음 / 삼인 펴냄 / 1만7000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시간만에 유럽을 느낄 수 있다'는 얄팍한 테마로 한국 여행객이 몰리는 블라디보스토크나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 뒤늦게 각광받는 시베리아횡단열차 등 러시아 여행에 관한 글은 최근 넘쳐나고 있다. 이국적이거나 불편하거나, 아니면 저렴한 가격으로 즐기는 맛집이나 쇼핑, 사진 촬영지 등이 주요 소재다. 그리고 "별 거 없네"로 끝나는 러시아의 진짜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송종찬 시인은 이렇게 답한다.
“러시아는 장편의 나라다. 긴 겨울과 대륙의 빈 공간을 시로 채우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많은 시인이 절명한 이유는 광활한 시간과 공간을 시로 다 채울 수 없어 좌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견딘다는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308쪽)
러시아 문학도가 무려 4년간 러시아에 체류하면서 내린 결론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시인 송종찬은 3권의 시집을 낸 중견시인이다. 2005년 바이칼 호수를 만난 뒤 6년을 벼려 회사가 추진한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에 자원해 러시아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4년을 머물며 동경하던 그 곳의 많은 생각을 산문집에 담았다. 여행객의 눈으로 본 러시아가 아니라, 생활인의 시각으로 러시아의 삶과 문화, 예술 등을 두루 짚었다. 

시인의 감각적인 문체가 읽는 맛을 더해준다. 문장 마디마디에 운율이 깃들고, 함축적인 시적 묘사는 여느 산문집보다 감칠 맛이 우러난다는 평가다. 시인 특유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시베리아횡단열차에 올라 있고, 바이칼 호수를 함께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남도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고려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그는 1993년 '시문학'에 '내가 사랑한 겨울나무'외 9편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시집으로 '그리운 막차',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등이 있고, 러시아어로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ТРАНССИБИРСКИЕ НОЧИ)'이라는 시집도 냈다. 의외다. 그의 러시아어 실력이 시를 쓸만큼 능숙한 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놀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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