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식당 차는 역시 비싸다
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식당 차는 역시 비싸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2.18 0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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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예약을 잘 못한 탓으로 가슴 졸이던 첫날이 지나고 정상적인 하루가 시작했다. 꾸뻬(4인실 방) 2층 침대를 덩치 큰 러시아 젊은 부부가 차지하면서 꾸뻬는 진짜 좁아 보였다. 그나마 신형 열차여서 아래 좌석의 벽쪽 등받이를 올리면 쇼파, 내리면 침대로 변해 다행이다.

꾸뻬 내부 모습. 낮에는 1층 좌석을 쇼파처럼 쓰다가(위), 밤에는 등받이를 내려 침대로 만든다. 푸른색 좌석위로 흰색 등받이가 내려와 있다.

 

좌석 등받이 위쪽에는 물품 보관함이 숨겨져 있다. 등받이 아래쪽은 밤에 침대로 쓰기 위해 밑으로 내린다.

'꾸뻬'가 좁다고 하지만, 6인실 '쁠라쯔까르뜨'는 보기만 해도 답답하고 민망하다. 말은 '개방 공간'인데, '비 개방' 꾸뻬보다 여건은 훨씬 열약하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남녀가 좁은 공간에서 거의 엉켜있는 듯하다. 러시아인들의 덩치가 크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 지도 모른다. 다리가 침대밖으로 삐져나올 정도이니까.

식당 칸으로 가려면 6인실 객차 2칸을 거쳐야 하는데, 지나다니는 좁은 통로 양옆으로 담요 하나 달랑 덮은 젊은 여자가 누워있으니, 눈을 둘 곳이 마땅찮다. 이럴 때는 빠른 걸음이 최고다. 흔들리는 열차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짚어가며 앞만 보고 가야 한다. 당연히 사진이 없다.

6인실 모습(러시아 블로그 사진). 왼쪽 창문쪽으로 2층 침대가 하나, 오른쪽에 2층 침대 2개가 서로 마주보며 놓여있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6인실 침대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횡단열차에서 잘 생긴 러시아 군인을 만난 이야기를 올린 한 젊은 유튜버가 한때 인기였는데, '저렇게 앉아 영상을 찍었겠구나' 싶다. 러시아 젊은 군인들은 우수리스크 역에서 타 하바로프스크역에서 내렸었다.

하바로프스크역에서 내린 러시아 군인들. 역사로 가는 길에 찍은 사진

신형 열차 6인실 공간은 독립된 1인실처럼 커텐을 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열차는 아니다. 프리미엄 신형열차 등장에 대한 기대가 또 무너지는 순간이다. 담요를 2층 침대 위에서 늘어뜨려 커텐을 대신하는 생활의 지혜는 여기저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꾸뻬로 배달해준 식단. 샐러드에 수프도 있다.

식당 차에서 점심을 가져왔다. 아침을 식당에서 먹었으니, 점심은 우리가 미리 준비한 라면이나 햇반 등으로 때우고, 저녁엔 식당에서 '맥주 파티'를 할 요량이었는데, 또 뭔가 착오가 있었다. 당초 PC로 시베리아횡단열차 티켓 예약을 할 때(스마트폰으로는 안나왔다), 레스토랑 예약 페이지가 나오길래 식당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한번씩만이라도 먹어보자고 예약을 했다. 아침 점심 저녁 코너에 체크하는 방식이어서 예약도 간단했다.

알고 보니, 일단 아침 점심 저녁 코너에 체크를 하면, 열차 탑승기간 내내 식당에서 먹도록 되어 있었다. 꾸뻬로 배달된 점심을 "지금 안 먹고 저녁에 먹겠다"고 했더니,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음식 값은 이미 지불된 상태니,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것도 젊은 여성이 빠른 러시아어로 쏟아내니, 알아듣기도 힘들고, 상대하기도 피곤하고.. 그냥 말없이 먹기로 했다.

 

식당 차에서 제공한 음식들. 아침 점심 저녁 메뉴가 다른데, 조촐했다.

저녁에 식당에 가서야 저간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었다. 티켓 구매시 식당 예약을 하면 타서 내릴 때까지 먹도록 된 것이다. 아침은 377루블, 점심은 509루블, 저녁은 876루블, 총 1,762루블이다. 그렇다면 한끼에 250루블꼴? 열차 식당은 비싸다고 했는데, 그게 아닌가? 

식당에서 꾸뻬로 돌아온 뒤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시간에(정차 역 주변에서만 네트워크가 연결된다) 스마트폰에 남아 있는 자료를 다시 찾아봤다. 현실은 또 한번 나의 기대와 어긋났다. 377, 509, 876 루블은 매끼 가격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그때 지불했던가? 싶은데, 지불한 게 사실이었다.

사진에서 보듯이 그만한 돈을 지불하고 먹은 메뉴로는 너무 조촐했다. 거기다 매번 똑같은 빵은 가끔 손도 대지 않았으니, 가성비만 따지면 완전 망한(?) 예약이라고 할 수 있다. 

프리미엄 신형 열차에 대한 막연한 기대로 '지불하는 돈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너무 안일했던 것 같았다. 결론적으로 시베리아횡단열차의 식당은 비싸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할 수 있는 돈으로 흔들리는 열차 안에서 부실한 메뉴를 받아야 하니, 가성비가 나쁘다.

 

식당 차에서 맥주 안주로 선택한 350루블짜리 감자-버섯 볶음 요리(위)와 메뉴판

저녁에 한번쯤 가서 맥주 파티(맥주도 비싸다. 맥주 한병당 200~300루블)를 하는 건 좋지만, 티켓 구매시 식당 예약은 가능한 한 피하고, 식당에서 단품으로 주문할 것을 권한다. 아니면 아침 점심 저녁 중 점심만 예약을 하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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