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지루할 틈이 없다!
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지루할 틈이 없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2.18 0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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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서 바이칼호수 동쪽의 울란우데, 혹은 서쪽의 이르쿠츠크까지 사흘밤을 열차내에서 지내야 한다. 저녁 7시10분에 블라디보스토크역을 떠난 001편 신형 프리미엄 열차는 사흘 밤을 샌 뒤 아침 8시에 울란우데를 거쳐, 오후 3시50분에 이르쿠츠크에 닿는다. 

블라디보스토크서 저녁 9시대에 출발하는 다른 열차(옛날 열차)는 프리미엄 열차보다 달리는 속도가 늦어 해가 완전히 지고난 밤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한다. 20명에 가까운 젊은 한국 학생들이 비싼 001편 열차를 선택한 이유다. 이들은 대부분 이르쿠츠크에서 하루이틀 바이칼 호수를 구경한 뒤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간다. 

겨울철 바이칼 호수는 말 그대로 꽝꽝 얼어붙기 때문에 여름철 여행 성수기와는 분위기와 풍경이 매우 다르다. 오래 머물며 구경할 게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시베리아횡단열차서 찍은 바이칼 호수. 얼어붙은 호수에 눈이 덮혀 있다. 작은 나무들 뒤쪽이 호수다.

울란우데에서 이르쿠츠크로 가는 철도변 호수의 풍경이 여름철에는 최고로 꼽힌다. 관광 성수기에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환바이칼 철도가 붐빈다. 관광열차 때문이다.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을 준비하면서 고민하는 것 중 하나가 지루함을 달랠 거리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츠크까지 간다면 거의 사흘 밤낮을 열차 안에 갇혀 지내야 하는데, 그 긴 시간이 따분하고 지루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당연하다. 실제로 시간을 때울 많은 준비를 했다.
 

열차에서 잠깐 내려 먹을 거리를 사고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러시아 사람들은 주로 열차내에서 먹을 거리를 기회가 되면 구입한다.

하지만 의외로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이틀 밤을 지낸 뒤 "내일 아침이면 벌써 (울란우데) 내리네. 너무 짧은데.." 라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의 경우, (좌석 예약의 실수에 따른) 첫날 밤의 '정신없음'이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루할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꾸뻬 안에서 친구랑, 이층에 탄 러시아 젊은 부부와 이야기 나누고, 식당에 가서 밥먹고 맥주마시며 차창 밖으로 멍때리고, 20~30분 정차하는 역에 내려 바람을 쐬면서 함께 탄 다른 객차의 젊은 한국 여행객들과 노닥거리고 사진찍고, 짧게 정차하는 역에선 인터넷으로 한국의 코로나 감염상황 검색하고, 열차에서 찍은 사진 주고 받고, 정리하고.. 할 게 참 많았다.
 

어스름 저녁녘에 정치한 시베리아횡단열차

젊은 한국 여행객들도 별로 지루하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6인실에서 김치찌게를 함께 끓여먹고, 갖고온 차를 나눠마시며 노닥거리고, 타고 내리는 러시아 사람들과 번역기를 돌리며 대화 나누고, 맥주(와 보드카)를 마시며 한국에서 할 수 없었던 비밀스런 이야기도 해가며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6인실이 젊은 여성들에게 불편할 것이라는 건 편견일뿐, 4인실 꾸뻬보다 더 재미있게 한국, 러시아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행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조심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함께 어울려 사진도 찍고..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의 과제(?)로 받았던 책읽기는 거의 하지 못했다. 소설가 선배님이 준 소설책(상,하권)과, 친구가 처음 쓴 소설의 초안을 만 이틀 동안 거의 들어다보지 못했다. 솔직히 시간이 없었다. 그나마 눈덮힌 산야를 달리는 열차안에서 고전 명화 '닥터 지바고'를 노트북 화면에 띄워놓고 음미하는 '낭만적인 시간'마저도 내지 못할 판이었다.

영화 '닥터 지바고'는 블라디보스톡 게스트하우스에서 다운을 받았다. 그리고 열차 안에서 막상 시청하려니, 또 문제가 생겼다. 다운 받은 파일을 노트북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때는 젊은 친구들에게 부탁하는 게 최고. 옆 '꾸뻬'의 젊은 친구들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형사 콜롬보'처럼 숨어 있는 '닥터 지바고' 파일을 금방 찾아냈다.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다운받을 때, 중간에 이상한 메시지가 몇번 뜬 것 같았는데, 화면이 군데군데 찌그러졌다. '낭만적인 감상'을 즐기기에는 최소한 2%부족했다. 울란우데에 내려 호텔에서 다시 다운받아 보기로 하고, 노트북을 접었다. 와이파이가 빵빵한 서울에서 미리 다운받지 않는 게 또 실책이었다. 이번 여행엔 왜 이렇게 실수하는 게 많지?
 

러시아에 남아 있는 레닌 동상이 몇개 안된다고 들었는데, 여기 '벨로고르스크 역' 앞에도 레닌 동상이 서 있다.

열차 안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일품이다. 특히 향이 진한 베트남 커피가 최고다. 지난해 호치민 여행 후 베트남 커피에 대한 애착이 커졌는데, 블라디보스톡의 큰 야외시장에서 '베트남서 직접 들여온, 수출용이 아닌' 커피를 사는 행운을 누렸다. 그 커피를 이번 여행의 동반자로 갖고 갔는데, 그 커피 향에 열차 여승무원도 "향이 좋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선물로 몇개 안줄 수가 없다.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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