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울란우데에서 내린 까닭?
뉴-시베리아횡단열차 : 울란우데에서 내린 까닭?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2.25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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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첫 기착지로 울란우데를 선택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저녁 열차를 타고 사흘 밤을 지낸 뒤였다. 울란우데의 아침 공기는 차고 매서웠다. 현지 기온 영하 29도. 

마스크 위로 새어나온 입김은, 안경을 뿌엏게 가로막는 수준을 넘어 곧장 안경 알에 얼어붙는 듯했다. 얇게 낀 얼음과도 같은 성에가 눈 앞을 가렸다. 마스크를 벗는 게 답이었다.

울란우데는 블라디보스토크보다 작은 도시다. 도시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레닌광장'(큰 레닌 두상이 있는)에서 개선문을 거쳐 조금만 걸어가면, 아르바트 거리에 닿고 더 내려가면 상업지구다. 주변이 온통 눈밭으로 바뀌어 있어 도시의 전체 풍광을 가늠하기는 힘들었다.
 

레닌 두상과 그 앞의 광장. 아래는 레닌 두상쪽에서 찍은 사진

시 외곽으로는 아직 트람바이(구소련 시절의 전철) 다니고 있었다. 겉모습이 깨끗한 게 블라디보스톡 일부 지역에서 운행되는 낡고 노후한 차량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전히 주요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우리가 울란우데에 내린 이유는 두 가지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탄 한국 여행객들이 주로 내리는 이르쿠츠크는 이미 오래 전에 방문한 적이 있다. 바이칼 호수의 알혼섬에서 며칠을 보내며 섬 트레킹 등 소위 '여행 코스'는 섭렵했다. 

울란우데는 분위기가 다른 바이칼 호수 도시다. 바이칼 호수는 서쪽엔 평원, 동쪽엔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동쪽 산악지대, 정확히 말하면 국립자연공원으로 향하는 관문이 울란우데다. 

러시아 사람들은 여름 휴가철에 SUB 자동차를 몰고 울란우데를 출발해 바이칼 호수를 따라 길게 펼쳐진 국립자연공원 산악지대을 트레킹하는 것을 최고의 여행으로 생각한다.
 

러시아 사람들은 바이칼 산악 트레킹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가끔 만나는 온천휴양지(사진 위)는 최고의 힐링장소다./ 러시아 블로그 자료사진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울란우데에서 바이칼 호수를 따라 산악지대로 올라가면서 소위 '필'이 꽂힌 곳이 온천 휴양지로 들어가는 입구의 작은 마을이었다. 탁자 몇개 놓은 '김치찌게 집'을 내고 싶은 마음에 일찌감치 점찍은 곳이다. 

그리고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한국 관광객들을 울란우데역에서 픽업해 '김치 찌게에 소주 한잔' 권하면서 산악 트레킹과 온천 휴양을 즐기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 그 꿈의 시작 도시가 바로 울란우데였다. 아마도 몇년 후에는 시베리아 대륙을 자동차로 횡단하는 '한국 드라이버족'이 '러시아 트레킹족' 처럼 용감하게 이 곳을 탐험(?)할지도 모르겠다. 

그 꿈을 되새기기에는 2월의 울란우데가 너무 추웠다. 하얀 눈밭 위의 '젊음의 거리' 아르바트도 한산하기 짝이 없었다. 역시 러시아 시베리아 여행은 5~9월이구나 싶다.
 

눈 속에 갇힌 아르바트 거리. 정식 거리명은 레닌거리다.

그래도 한국의 용감한 젊은이들은 '울란우데의 겨울'을 돌아보고 있었다. 특별한(?) 사연을 지니지도 않았을 그들은 왜 울란우데에 내렸을까? "언제 왔느냐?"고 물어보니, "어제 왔다"고 했다.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다가 내린 듯했다. 그들도 우리처럼 1박2일 울란우데를 돌아본 뒤 다시 열차에 오를 것이다.
 

울란우데 오페라 발레극장

'레닌 광장' 맞은 편에는 울란우데 오페라(발레) 극장이 우뚝 서 있다. 반가운 마음에 '오늘 레퍼터리'를 챙겨보니, 아쉽게도 공연이 비어 있다. 휴일(일요일) 저녁에 공연이 없다니...

울란우데 시내를 걷다보면 닿는 곳.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는 2차대전 승전 기념비다. 굳이 알 이유도 없는 공원의 입구엔 멋진 기마상이 서 있고, 그 뒷편으로 거대한 승전 기념벽이 눈길을 잡는다.
 

승전기념벽이 있는 공원 입구의 기마상
승전기념비와 꺼지지 않는 불꽃

러시아, 정확히 말하면 소련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기마상도, 승전기념벽도 다 거기서 거기다. 러시아를 처음 대하는 여행객들과는 다르다. 러시아CIS 어느 도시를 가든, 소비예트 기념비는 다를 게 별로 없다. 감흥이 쉬 일어나지 않는다. 기념비의 차이를 세세하게 연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볼 때마다 흥미가 반감될 뿐이다. '얼치기 러시아 전문가'의 한계다. 재미있는(?) 러시아 여행기를 쓸 자격이 없는 지도 모른다.

저녁 야경을 보러 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비교하면 '레닌광장의 얼음조각 작품들' 정도나 카메라를 잡아끈다.
 

레닌 광장에 설치된 얼음 조각품들이 영롱하게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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