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대통령이 '저 유가 폭탄'을 던졌다?
푸틴 대통령이 '저 유가 폭탄'을 던졌다?
  • 송지은 기자
  • buyrussia3@gmail.com
  • 승인 2020.03.10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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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대상으로 한 '유가 전쟁' 촉발 이유는?
'노르트스트림2' 사업 제재에 대한 보복? 셰일업체 도산 겨냥?

국제유가의 폭락에 대한 가장 큰 의문은 역시 '러시아가 왜 감산에 반대했을까?' 이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가뜩이나 불안한 중국의 경제상황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더욱 추락하고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이어질 게 뻔한 상황에서, 국제 유가의 흐름에 사실상 '핵심 키'를 잡고 있는 러시아가 추가 감산에 반대한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동안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국가들과 감산에 앞장서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지난 2016년 이후 러시아와 OPEC 회원국(OPEC+)들은 원유 생산량을 긴밀히 협의하며 유가를 배럴당 50~60달러 선을 유지해왔는데, 이 틀을 깬 것이다. 왜? 

사우디, 러시아와의 '석유전쟁' 비난에 대응 자제/얀덱스 캡처

가장 유력한 분석은 OPEC+ 미가입국인 미국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경계감 때문이라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다. 2010년대 ‘셰일 혁명’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이 된 미국만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이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지도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유가가 폭락하면 배럴당 생산 원가가 높은 미국 셰일업체들은 가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고,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문을 닫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추가감산 합의에 실패한 직후,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치킨 게임'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궁극적으로는 ‘빅3’ 산유국인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가 '석유 패권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미 지난 2014~16년 미국 셰일업체들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유가격의 하락을 부추긴 바 있다. 당시 많은 셰일업체들이 생산 원가에 못미치는 국제유가에 문을 닫았지만, 살아남은 업체들은 기술개발을 통해 생산원가를 낮춘 것으로 전해졌다.

사우디, 석유전쟁 시작

4년 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러시아가 총대를 맨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치킨 게임'을 벌이듯 증산을 선언하면서, 유가는 20~30%이상 폭락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중 누가 더 유리한 고지에서 '치킨 게임'을 끌어갈 것인지 모르지만, 러시아가 방아쇠를 당긴 '타이밍'은 적절했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 셰일 업계가 올해부터 오는 2024년까지 상환해야 할 부채 규모가 860억달러(약 104조원)에 달하기(신용평가기관 무디스 분석) 때문이다.

미슈스틴 총리, 국제유가 폭락에 따른 경제회의 소집/현지 TV 캡처

본격적인 '저유가 전쟁'이 시작되면, 갚아야 할 빚이 많은 셰일업체들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 떨어지는 유가를 떠받히기 위해 미국(셰일업체들)이 하루 생산량을 수백만배럴씩 줄여, 전체 생산량을 조절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의 공격적 전략에 직접 영향을 미친 것은 역시, 독일로 직접 천연가스를 수송하는 ‘노르트스트림2’ 가스관 구축 사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와 도발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해 말 '노르트스트림2' 사업이 러시아 가스에 대한 유럽의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노르트스트림2'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이 포함된 2020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했다.

이 조치로 유럽 일부 국가와 대기업은 이 사업에서 발을 빼려고 했고,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러시아 지도부는 '미국의 내정간섭'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당초 완공시한마저 넘긴 이 사업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독일 등과 '정상외교'를 더욱 강화해야만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표밭인 텍사스주 셰일업체를 지원하는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러시아의 격분을 산 것이다. 러시아 국책 싱크탱크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의 알렉산드르 딘킨 소장은 블룸버그 통신과 인터뷰에서 "크렘린은 미국 셰일업체를 저지하고,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방해해 온 미국 정부를 응징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측은 노르트스트림2 사업을 올해 말까지 완공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으나, 관건은 역시 일부 국가의 적극적인 호응 여부에 달려 있다. 러시아가 미국을 향해 '저유가 폭탄'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달들어 이미 '한판 승부'를 벌일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그는 지난 1일 자국 대형 석유·가스회사 대표들과 만나 "국제 원유시장 상황이 지난 2008년 위기 이후 최악"이라며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준비를 주문했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결심에는 국가 재정 운영의 자신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최근 몇년간 원유 수출로 쌓아놓은 국부펀드 자금이 있기 때문이다.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9일 총리 주재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국부펀드 덕분에 배럴당 25~30달러의 유가에서도 향후 수년간 정부가 예산을 집행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자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저유가 전쟁에 따른 경제적 후유증이다. 루블화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은 곧바로 일반 국민의 피부로 닥쳤다. 소비심리 위축은 현재의 경제난을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더욱이 장중 31달러까지 떨어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이 20달러선 초반으로까지 밀릴 수 있다는 경고도 일각에서 나온다. 지난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원유 선물 가격이 20달러선으로 떨어지면, 세계 경제에 메가톤급 충격이 올 수 있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먼저 러시아 경제가 그 충격에 휘청거릴지도 모른다.

이에 앞서 러시아는 지난 6일 OPEC+ 회의에서 사우디의 일일 150만배럴 감산 제안에 퇴짜를 놓았다. 회의에서는 이달 말에 끝나는 기존 감산(하루 210만 배럴) 연장에도 합의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증산 선언'으로 이어졌다. 사우디는 합의가 끝나는 내달부터 증산을 하겠다고 나섰고, 러시아도 “내달 1일부터 어떤 국가도 감산 요구를 받지 않는다”며 맞섰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9일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5월물 선물 가격은 한때 배럴당 31.02달러(-31.5%)까지 급락했다. 이 같은 장중 낙폭 규모는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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