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전쟁'을 마무리한 러시아, '문서화'에 절실함이 묻어난다
'석유 전쟁'을 마무리한 러시아, '문서화'에 절실함이 묻어난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4.12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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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 10달러대-루블화 89루블' 최악 시나리오를 검토한 러, 유가 회복에 목매다

러시아는 지난 9일 OPEC+ 석유 감산 협상에서 하루 250만 배럴을 감축하는데 동의했다. 미국에 이어 생산량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감산 규모다. 협상 전에 제시했던 160만 배럴보다 무려 90만 배럴이나 늘어난 양이다. 러시아 일부 기자들은 "너무 많이 줄이는 게 아니냐?"며 '손해본 협상'이라는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멕시코, 미국 지원하에 석유감산에 동의/얀덱스 캡처

그러나 크렘린은 일관되게 이번 협상과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10일, 11일 연속 "OPEC+ 23개국 중 22개국이 감산에 합의한 것은 성공을 거두었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하루빨리 문서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최근의 유가 폭락은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석유 전쟁'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를 이유로 추가 감산을 제의한 사우디아라비아를 퇴짜났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사우디가 그동안 배를 불려온 미국의 셰일가스 업체를 겨냥한 '공동 작전'이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겉으로는 러시아와 사우디 간의 '전쟁'이었다.

OPEC+ 화상회의 러시아측 장면/현지 TV 캡처

그 전쟁을 주도한 러시아-사우디는 이번 OPEC+ 협상에서 공평하게 250만 배럴씩 줄이기로 하고, 다른 산유국들의 참여를 압박했다. 그리고 멕시코를 제외한 22개국이 자국 할당량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총 1천만 배럴이다. 멕시코를 제외하더라도 하루 960만 배럴 감축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러시아는 이번 협상에서 국제 원유시장을 움직이는 주요한 한 축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는데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문서화 요구는 하루 90만 배럴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석유 전쟁'의 종식을 이끈 당사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말로만 감산하기로 하고, 실제로는 어긴 일부 산유국들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 퇴치를 위해 무식할 정도로 과감한 선택, 즉 한달간 '휴무및 자가 격리' 상태에 들어간 러시아는 현재 '유가 회복'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저유가와 신종 코로나는 향후 러시아의 경기 회복에 결정적인 변수가 될 터. 국제유가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려놔야 한다는 절실함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스스로 당초의 감산 양을 대폭 늘리면서까지 산유국들의 동참을 이끈 이유이기도 하다.

유가 10달러대, 루블화 달러당 89루블 시나리오 대비/현지매체 LENTA.ru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담당 부서는 최근 '국제유가 배럴당 10달러대, 루블화 달러당 89루블'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 유럽의 경제회복이 일러야 올해 4사분기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전제 아래, 신종 코로나 사태가 3사분기로 넘어갈 경우, 그같은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는 것이다.

대책은 두가지다. 국제유가의 회복을 앞당기고, 신종 코로나 사태를 하루빨리 종식시키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OPEC+ 합의 도출 및 문서화로 유가 회복을, 보다 엄격한 '자가 격리' 조치로 신종 코로나 확산을 막는 게 최선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이 연일 '협상 성공'을 입에 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OPEC+ 화상회의에 이어 열린 주요 20개국(G20) 에너지 장관회의는 '감산의 완전 합의'에 실패했다는 평이다. 유럽의 주요 국가들이 감산 규모가 기대에 못미쳤다는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간신히 '석유 전쟁'을 마무리한 러시아 업적과 그 효과도 사라질 판이다. 23개국 중 22개국이 합의한 OPEC+ 협상 결과가 없던 일이 되기 전에 하루 빨리 기정사실화하려는 러시아의 의도가 '문서화 요구'에 담겨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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