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사투 러시아 의료진, 단단히 뿔났다 - 푸틴 대통령도 격노
신종 코로나 사투 러시아 의료진, 단단히 뿔났다 - 푸틴 대통령도 격노
  • 이진희 기자
  • 승인 2020.05.20 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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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하고 위험한 의료 환경에 특별 보너스까지 제대로 지급안돼 불만
현지 언론 잇따라 르포 기획기사 - 연방 수사위 '형사 사건' 취급키로

대구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 19)가 확산되던 지난 3월~4월, 파견근무를 갔던 의료진들이 제 때 급여(수당 여비 등 통칭)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곤 했다. 지자체 해명도 뒤를 이었다. 코로나 난리통에 빚어진 조그만(?) 소동의 하나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비슷한 소동이 러시아에선 형사문제화할 모양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대범죄를 다루는 연방수사위원회가 19일 남부 크라스노다르 지역에서 터져나온 신종 코로나 담당 의료진에 대한 급여 미지불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연방수사위원회가 나섰다는 것은 우리와 같은 소동의 차원이 아니라, 지방의 토착 비리, 부패로 다루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연방수사위원회, 의료진 보너스 미지급에 대해 처음으로 형사문제 제기/얀덱스 캡처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에서 인간적인 존경과 물질적 보상을 받아야 할 대상은 역시 '감염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들을 치료한 의료진이다. 열악한 의료 시설에서 환자를 돌본 러시아 의료진의 고생은 말할 필요가 없다. 푸틴 대통령은 4월 초 신종 코로나로 고생하는 의료진에게 특별 보너스 지급을 약속하기도 했다.

환자를 살리느라고 사투를 벌일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두어달이 지나면서 하나씩 불거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감염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기(고점 정체기)에 접어들면서, 의료진이 스스로를 돌아보니 기막힌 일들이 주변 여기저기서 발견됐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생명을 건 행위에 대한 처우 문제다. 푸틴 대통령은 일찌감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실제로는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 그렇다면 연방정부에서 특별 보너스로 내려보낸 예산(돈)은 어디로 사라졌까? 수사위원회가 밝혀내야 할 일이다.

푸틴 대통령이 코로나와 사투를 벌인 의사들에게 지급하라는 요구를 지역들은 왜 이행을 안하고 있나?/얀데스 캡처 

우선 정산 과정이 지체되었을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4월 초 신종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8만 루블, 간호사 5만 루블, 일반 의료진은 2만5천 루블 등의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예산의 남용을 피하기 위해 진짜 일한 의료진에게만 지급하라고 했다.

이 약속 한마디로, 그 넓은 땅 곳곳에서 신종 코로나 환자를 돌본 의사들에게 특별 보너스가 제때 제대로 지급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행정체계상 무리다. '대구 교훈'을 되돌아보면 이해가 빠르다. 주는 측은 고생한 의료진만을 정확히 가려낸 뒤 제대로 정산하기를 원하고, 받는 사람은 하루라도 빨리, 또 가능하면 많이 받기를 바란다. 근본적으로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

또 보너스 책정및 지급 기준을 두고 이해당사자들끼리 다툼이 벌어지기도 한다. 현지 언론을 보면 어떤 지역은 환자를 돌본 시간만큼, 어떤 지역을 근무 일수를 따져 금액을 책정했다. 지역별로 편차가 있으니 어느 한곳에선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급기야 연방정부가 최근 보너스 지급 매뉴얼을 만들어 내려보내기도 했다.

정부, 의료진 특별 보너스 책정 지침 설명/얀덱스 캡처 
푸틴, 의료진 보너스 지급 상황에 화났다/얀덱스 캡처

그러는 사이, 일부 지역에서는 의료진들이 집단 항의에 나서는 등 의료파업 사태를 예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대노했다. 그는 최근 TV 연설을 통해 "5월 의료진 특별 보너스 자금으로 224억 루블(3천600억원)을 책정했다"며 "제때 제대로 지급하지 않으면 책임자를 문책하겠다"고 공개적으로 경고장을 날렸다. 예산담당 부서인 재무부는 주말인 지난 16, 17일에도 각 지역에 보너스 지불을 채근했다.

대구의 경우를 보면, 러시아의 이같은 보너스 소동은 처음부터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일부 지역의 의사와 간호사, 응급차량 담당자들이 정부가 지급하기로 한 특별보너스를 받지 못했다며 집단 반발하는 사태를 잇따라 보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그동안 신종 코로나로 고생한 댓가는커녕, 오히려 급여가 줄었다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물론 언론 보도에 대해 지역 책임자는 "사실이 아니다"고 발뺌하는 게 대부분. 하지만 푸틴 대통령이 경고장을 보낸 뒤, 지역 책임자들은 의료진의 불만을 해소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시를 둘러싸고 있는 모스크바주(우리의 경기도)는 의료진의 처우 불만을 접수해 처리하는 특별위원회를 만들고, 일부 지역 수장은 문제가 된 병원의 병원장을 해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번 소동이 지역 토착비리와 관련됐을 경우, 연방수사위의 조사가 러시아 의료계 전반에 폭풍을 몰고올 가능성도 있다. 기득권을 지닌 지역 의료계 인사들이 담당책임자들과 짜고, 특별 보너스 지급을 미루면서 사익을 챙겼을 수도 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의료진의 불만은 처우에만 그치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의 폭발적 증가로 전문병원으로 새로 지정되거나 급하게 지어진 임시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은 개인 보호 장비의 부족 등 열악한 근무 환경을 이유로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모스크바 병원 의료진/사진출처:모스크바 시
방호복 차림으로 모스크바 외곽 카무나르카 의료센터를 돌아보는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 겨

푸틴 대통령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 치료 시설을 돌아본 모스크바 외곽의 '코무나르카 의료센터'가 지난 4월 말 간호사들의 집단 사직 스캔들에 휩쓸렸으니, 다른 병원의 환경은 짐작가능하다. 코무나르카 간호사들은 "휴식도 없이 48시간 내내 일하면서 음식, 보너스, 무료 숙소마저 제공받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한다. 간호사 한 명당 환자를 최대 90명까지 돌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렇게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러시아 의료진은 예상보다 많은 희생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올라선 러시아는 여전히 확진자 대비 사망률은 아주 낮지만, 의료진 사망률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높다(16배)는 언론 분석도 나왔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에선 18일 현재 의사와 간호사, 구급대원 등 180여명의 의료진이 숨졌다. 희생된 의료진을 추모하는 사이트에는 240여명의 명단이 올라와 있지만, 현지 매체 '메디아조나(미디어 존)'이 분석한 결과 신종 코로나로 희생된 의료진은 186명으로 추정됐다.

지역별로는 신종 코로나가 집중 발병한 모스크바와 모스크바주, 상트페테르부르크, 남부 다게스탄 공화국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간호사와 응급처치 요원들이 가장 많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 국영TV는 연일 의료진의 영웅담을 내보내지만, 정작 의료진은 신종 코로나 최전선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꼬집은 서방 언론 보도가 와닿는 분석이다. 

'매디아조나(미디어존)', 신종 코로나로 인한 의료진 사망은 다른 나라에 비해 16배나 높다고 보도/얀덱스 캡처

의료진이기에 본인이 감염되더라도 환자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맞딱뜨리기도 했다. 러시아 중서부 우파의 한 병원은 신종 코로나 감염으로 코호트 격리(감염자가 발생한 의료기관을 통째로 봉쇄하는 조치) 조치됐지만, 의심 증상을 보인 의료진들도 어쩔 수 없이 환자를 계속 돌봐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절망적인(?) 상황은 의료진의 투신 사건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 남쪽 바로네쉬의 한 병원의 응급차량 의사 알렉산드르 슐례포프는 지난 2일 병원 2층 창문에서 추락해 중태에 빠졌다. 그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지난달 22일부터 소속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고가 나기 전에 "계속 근무하라는 강요를 당했다”는 온라인 폭로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시베리아의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는 지역 병원의 수석급 의사 엘레나 네폼나사야가 병원에서 투신해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그녀는 방호및 방역 장비 부족 등을 이유로 신종 코로나 전문 병원으로의 전환에 반대하다가 항의 표시로 5층 창문에서 뛰어 내렸다고 한다.

또 모스크바의 우주도시 '스타시티'의 우주 비행 훈련 센터에서 응급 의료를 책임지는 나탈리야 레베제바도 병원 건물에서 추락해 숨졌다. 그녀는 센터 내 신종 코로나 환자가 급증한데 대한 책임 추궁을 당하다가 본인도 확진판정을 받자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됐다. 

창문으로 투신한 알렉산드르 슐레포프 관련 기사/현지 언론 캡처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희생자가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처우와 장비를 갖춰준 뒤 최전선에 내보는 게 기본 상식이다. 처음에는 이같은 불만마저도 혹시 불이익을 받을까 우려해 자제했던 러시아 의료진들이 봇물이 터지듯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 또한 슬기롭게 극복해나가는 게 지도자의 리더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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