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국민투표에 참여하면 '재난 극복'용 쿠폰을 제공한다?
개헌안 국민투표에 참여하면 '재난 극복'용 쿠폰을 제공한다?
  • 송지은 기자
  • buyrussia3@gmail.com
  • 승인 2020.06.14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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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개헌안 국민투표 투표율및 찬성률 추락 전망에 모스크바의 깜짝쇼
'행동하는 시민' 사이트 통해 투표 참여자에게 쿠폰 200만장 나눠줄 계획

러시아 정부가 7월 1일 실시되는 개헌안 국민투표을 앞두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총력전을 펴는 느낌이다. 신종 코로나(COVID 19) 감염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푸틴 대통령의 대 국민 지지도가 떨어지면서 개헌안 지지율이 추락할 위기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번 개헌안은 대통령과 행정부, 의회, 사법부간에 권력을 일부 분점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에게 재출마의 길을 열어주면서 '장기 집권'을 위한 개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반 크렘린 야권 진영은 일찌감치 '1인 종신 집권을 위한' 개헌안 반대 입장을 표명했고,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지닌 제1 야당 러시아 공산당도 반대하기로 방침을 정했다고 한다.

2020년 7월 1일 국민투표 로고(위)와 166번 투표소 안내 표지/사진출처:SNS 

여론도 비교적 싸늘한 편이다. 
현지 여론조사 기관 레바다-첸트르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4월말 기준으로 59%를 기록,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도 33%에 이르렀다. 국제유가 하락과 신종 코로나 사태로 불과 2개월 사이에 10% 포인트나 하락한 것이다. 

또 전러시아여론연구센터(브치옴 VTsIOM ВЦИОМ)의 이달 초 여론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국민의 67%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에도 불구하고 개헌안 국민투표에 참여할 것이며, 이중 61%가 개헌안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소한 75% 이상의 투표율에 70% 안팎의 지지율을 기록해야 '개헌의 명분이 서는' 푸틴에게 이같은 조사는 실망스럽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치러진 3.18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67.4%의 투표율에 76,6%의 지지를 얻었다. 첫 출마했던 2000년 대선에서 52.94% 득표율로 당선됐던 그는 2004년 대선에서 71.31%, 총리로 한 차례 쉬고 재출마했던 2012년 대선에선 63.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상대 후보가 있는 대선 득표율과 비교하더라도, 푸틴 대통령이 '국가의 미래'를 담보할 개헌안이라고 주장하려면 2004년의 대선 득표율 정도는 얻어야 명분이 선다. 여론조사로 나타나는 투표율과 지지율을 10% 포인트 더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다.

애를 쓰는 푸틴 대통령의 노력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연기된 승전기념일 군사퍼레이드(24일) 1주일 후에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한 타이밍부터 그렇다. 군사퍼레이드와 전국민이 참여하는 '(순국열사와의) 불멸의 연대' 걷기 대회를 통해 고양된 애국심을 그 다음날(25일)부터 시작되는 국민투표 사전투표로 끌어들인다는 심사다.

붉은 광장 승전기념 군사퍼레이드 장면/사진출처:모스크바 시 

그러나 신종 코로나 감염을 두려워하는 노년층의 투표 참여가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자 서둘러 코로나에 대한 방역 제한 조치의 해제에 나섰다. 모스크바가 당초 예정을 1주일이나 앞당겨 지난 9일 '자가 격리및 통행 제한' 조치를 해제한 게 대표적이다.

현지 온라인 매체 '옷트리티예 메디아'(열린 미디어)는 "세르게이 소뱌닌 모스크바 시장이 확진자 증가를 우려해 '자가 격리' 등 신종 코로나로 인한 '제한 조치'의 해제를 원치 않았지만, 크렘린(대통령 행정실)의 요청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해제조치를 발표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모스크바의 '자가 격리'조치 해제는 '신종 코로나는 이제 끝났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모스크바에는 '백야 축제'로 상징되는 '6월의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기 시작했다. 

모스크바와 경제계, 100억 루블의 쿠폰을 주민들에게 제공/얀덱스 캡처
국민투표의 날에 '밀리언 프라이스'가 모스크바 시민을 기다린다/얀덱스 캡처

모스크바시는 마지막 남은 '신의 한수'도 공개했다. 돈을 푸는 '선심 정책'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는 11일 헌법 개정안 투표에 참여하면 '할인 쿠폰'(상품권)을 제공하는 '밀리언 프라이즈' (Миллион призов) 시행 방안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주저앉은 소비 진작 방안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 곳곳에서 시행되는 '재난 극복' 캠페인의 일환이다. 주머니가 얇은 소비자들에게 상품권이라도 쥐어줘 돈을 쓰도록 하고, 궁극적으로는 경기를 회복시키는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다.

문제는 제공 기준이다. 전국민에게 제공하는 '재난 소득'도, 저소득층에게만 지원하는 '재난 지원금'도 아니고, 개헌안 국민투표에 참여해야 받을 확률이 높아지는 '로또성 쿠폰'이다. 모스크바 시민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인터넷 사이트 '행동하는 시민' (Активный гражданин)을 통해 진행하는데, 말 그대로 행동(국민투표 참여)해야만 포인트를 많이 쌓고, 추첨에서 최대 4천 루블(6만8천원)짜리 쿠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체 규모는 쿠폰 200만 장에 총 100억 루블(1천700억원)에 이른다. 참여 업체는 모스크바에서 3천 곳이 넘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대형 마트를 포함해 카페와 레스토랑, 꽃집, 약국, 식료품점 등 다양하다. 올해 연말까지 사용가능하다.

'우리의 국가, 우리의 헌법, 우리의 선택'이라고 써 있는 국민투표 홍보게시판/vK 캡처

이 캠페인은 사전 투표가 시작되는 오는 25일부터 시작된다. 당초 아이디어는 모스크바상공회의소 소속 20여개 업체가 '바닥 경기 살리기' 차원에서 나왔으나, 머리 좋은 사람들은 이를 국민투표와 연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에게도 나쁠 게 없는 '경제 살리기'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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