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대선을 앞둔 벨라루스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8월 대선을 앞둔 벨라루스 정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6.22 0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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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집권 루카센코 대통령, 은행장 출신 유력 야권후보 전격 체포
2005년 야권 성향의 석유재벌 처리한 푸틴 수법과 유사 - 앞날은?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26년간 장기집권중인 (구 소련의) 벨라루스가 오는 8월 9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격동기'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장기 집권에 염증을 느낀 야권 성향의 국민들이 신종 코로나 사태로 초래된 위기 국면을 틈 타 정권교체 의지를 드러내고, 이에 루카센코 집권세력이 강경대응하면서 큰 충돌은 불가피해졌다. 

벨라루스에서 야권지도자 체포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다/얀덱스 캡처

벨라루스 대선정국과 관련, 주목해야 할 관점은 3가지다.
우선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 제거 전략을 연상케하는 벨라루스의 시도가 성공할지 여부.

루카셴코 대통령은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금융 올리가르히' 빅토르 바바리코(56) 전 은행장을 지난 18일 돈세탁과 탈세 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했다. 정적 제거에 들어간 것이다. 바바리코는 푸틴 대통령이 지난 2005년 탈세 혐의 등으로 체포한 '올리가르히'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과 입지가 거의 흡사해 보인다.

은행장 출신의 유력 야권 대선 후보 바바리코/사진출처: 바바리코 페북

바바리코는 벨라루스의 주요 상업은행 '벨가스프롬방크'를 15년 이상 경영해온 '금융 재벌'. 호도르코프스키도 상업은행(메나테프은행)에서 석유 메이저 '유코스'로 옮겨탔었다. 선거에 필요한 자금과 조직, 지지 기반을 갖췄다는 것도 같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바바리코는 대선 후보 등록에 필요한 유권자 지지 서명을 한 달만에 40만 명을 확보했다. 등록전까지 45만명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큰소리친 바바리코는 루카센코 대통령 집권세력을 향해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개헌을 요구할 만큼 대담한 행보를 보였다.

최근 국정신뢰도 하락이 완연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바바리코의 대선 후보 등록을 막기 위해 그를 부패 혐의로 공격하고 있다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바바리코는 앞으로 '벨라루스판 호도르코프스키'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유코스'를 세운 호도르코프스키는 푸틴 대통령에 맞서다 지난 2005년 탈세혐의 등으로 전격 체포됐고, 10년간 옥살이를 한 뒤 풀려나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 사이 '유코스'는 공중분해됐다.

바바리코는 이미 지난 5월 '벨가스프롬방크'에서 손을 뗐다. 그의 신병은 국가안보 문제를 다루는 국가안보위원회(КГБ, KGB)로 넘어갔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혐의를 받으면, 러시아의 호도르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적지 않는 수감생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그가 대선 후보로 나섰다는 점에서는 현재 러시아의 반크렘린 세력을 이끄는 알렉세이 나발니 전 변호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바바리코의 형사적 혐의 조사는 벨라루스 안보위원회(KGB)로 넘어갔다/얀덱스 캡처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바바리코의 체포는 그의 석방을 요구하는 야권세력의 대규모 시위를 불러왔다. 하지만 집권세력은 강경진압으로 나섰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외부 세력의 지원으로 벨라루스의 국가 질서가 무너지는 '마이단'(우크라이나 정권교체 혁명)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시위 중 경찰 당국에 체포된 민스크 시민은 이미 수백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시위대는 발트 3국의 독립항쟁을 상징하는 '인간 사슬' 시위로 루카센코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에 계속 나설 태세다. 대규모 '유혈 사태'로 이어질지 여부를 지켜보는 게 두번째 관점이다.

벨라루스 국영방송국 진행자가 동료 기자들에게 시위 현장 리포트에서 거짓말하지 말자고 촉구했다는 보도(위)와 평화적 시위대에 대한 경찰당국의 폭력적 체포 장면을 폭로한 트윗/얀덱스 트윗 캡처 

마지막으로 벨라루스와 러시아와의 앞날이. 푸틴 대통령과 '국가 연합' 결성 협정까지 맺은 루카셴코 대통령은 최근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나선 모양새다. 러시아가 제공하는 석유 공급가격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국가 연합' 결성에 앞서 벨라루스는 경제적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석유 가격에 특혜를 요구하고 있다. 러시아로서는 '국가 연합' 절차가 어느 정도 진척되기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 번번이 협상은 소득없이 끝났다. 벨라루스는 아예 미국의 석유를 수입하는 등 최근 러시아측과 등을 대는 듯한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바바리코를 잡기 위한 '벨가스프롬방크'에 대한 수사는 러시아아 척을 질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이다. '벨가스프롬뱅크'는 이름에서 짐작 가능하듯이, 러시아의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과 그 금융 부문 자회사 '가스프롬방크'가 49% 이상 투자한 금융기관이다.

벨라루스 수사당국은 '벨가스프롬방크'를 대상으로 돈세탁과 탈세 등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 전·현직은행 직원 약 20명을 체포했다. 당국은 러시아 측이 불법 금융활동에 개입했거나 배후 조종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한다. 

루카센코 대통령, 누구라도 벨라루스를 무너뜨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얀덱스 캡처 

루카셴코 대통령은 바바리코 체포 이튿날인 19일 "벨라루스 상황을 흔들려는 특정 세력의 활동이 강화됐지만, 대규모 혼란 조성 계획을 사전에 무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특정세력은 러시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가 야권 지도자 바바리코와 '마이단'(정권교체 혁명)을 통해 권력을 교체한 뒤 '국가 연합' 결성에 나선다는 의도를 가진 것으로 공격한 셈이다. 

러시아 크렘린측은 "'벨가스프롬방크'의 불법 활동에 러시아 가스프롬이 개입됐을 수 있다는 주장에는 증거가 분명해야 한다"고 반박하면서 "러시아는 자국 기업의 이익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측이 49% 이상 지분을 지닌 '벨가스프로방크'에는 손을 대지 말라는 경고로 들린다.

루카센코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위해 바바리코 전 벨가스프롬방크 은행장을 잡으려다 러시아와 완전 등을 돌릴 가능성도 있다. 지난 1994년부터 벨라루스를 철권 통치해온 루카셴코 대통령(65)이 오는 8월 대선에서 6번째 집권에 성공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무리수가 우크라이나식 '마이단'으로 이어질 여지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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