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 백신으로 신종 코로나 예방" - 러 백신 연구소의 화끈한 임상 시험
"소아마비 백신으로 신종 코로나 예방" - 러 백신 연구소의 화끈한 임상 시험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6.30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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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보건당국의 임상 시험 거부 '폴리오 백신', 러시아에선 강행하는 까닭?
60년전 소아마비 백신 개발시 미국 포기, 러시아 백신전문가 '미친 시험'

전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COVID 19)의 '2차 파동' 가능성이 유력해지면서 백신 개발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많은 백신이 험난한 임상 시험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럴 경우, 코로나바이러스에 면역 효과가 비교적 높은, 기존의 다른 백신을 찾아내는 것도 단기적으로는 응급 처방이 될 수 있다. 기존 백신의 새로운 면역 약효 찾기다. 

전세계 의학·제약계는 현재 신종 코로나 치료제를 개발하면서, ‘약물 재창출 연구’를 통해 기존의 검증된 약물을 찾아내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약물 재창출 연구'란 임상 시험을 통해 기존 약품의 새로운 약리효능을 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백신 역시, '백신 재창출 연구'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효능'을 시험 중인 대표적인 백신이 '소아마비 백신'으로 알려진 '폴리오 백신'(러시아 브랜드는 비박 폴리오 БиВак полио)이다. 이 백신은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살아있는 상태에서 만든 것이다.

소아마비 백신 '비박 폴리오'(위)와 추마코바 연구소가 '폴리오 백신'의 임상 시험에 들어간다는 러시아 매체 기사/ 출처:노브이 이즈베스티야 캡처 

외신에 따르면 '폴리오 백신'은 원래 미국에서 소아마비에 대한 백신 기제를 확인했으나, 백신 개발및 임상 시험은 소련에서 이뤄졌다. 소련의 저명한 백신 전문학자 미하일 추마코프 - 마리나 보로실로바 박사 부부가 지금부터 60년전에 '살아 있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섞은 각설탕을 자녀들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첫 임상 시험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칫 자녀들이 소아마비에 걸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미친(?) 시험'이었다.

결과는 대성공. 부부는 '폴리오 백신'의 또다른 효과도 확인했다. '폴리오 백신'이 인체내에서 특정 면역 체계를 자극해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최소한 한달 가량 면역력을 갖게 한다는 점을 알아낸 것이다. 부부는 그후 매년 가을에는 독감 예방을 위해 자녀들에게 '폴리오 백신'을 먹였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폴리오 백신' 임상 시험에 나서기로 한 곳은 역시 미국과 러시아다. 

미 식품의약국(FDA) 산하 ‘생물학적 제제 평가연구센터(CBER)’ 측 연구팀은 지난 12일 학술지 ’사이언스‘ 기고 논문을 통해 '폴리오 백신'으로 인체의 자연 면역 체계를 자극하면, 신종 코로나 감염을 일시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임상 시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구팀에는 (소련 추마코프 박사의) 막내 아들이자 미국 FDA 백신연구평가국 부국장 콘스탄틴 추마코프 박사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임상 시험은 미 보건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해 무산됐다.

러시아에서는 미국보다 앞선 지난 5월 모스크바에서 900Km 떨어진 키로프 주에서 '폴리오 백신' 시험 계획이 발표됐다. 키로프주와 키로프 국립의과대학이 (추마코프 박사의 이름을 딴) 추마코프 바이러스및 백신 연구소와 손잡고 '폴리오 백신' 임상 시험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임상 시험에 필요한 예산도 970만 루블을 확보, 18~65세의 건강한 자원자를 찾고 있다. 이미 이고르 바실리에프 키로프 주지사를 비롯해 현지 의료진과 구급 요원, 사회 복지사 등이 자원자로 나섰다. 

소아마비 백신 '비박 폴리오'의 임상시험에 키로프 주지사가 참여하기로 했다는 현지 언론 기사/출처: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 캡처

임상 시험은 추마코프 바이러스및 백신 연구소와 키로프 주정부 산하의 생명공학 센터 바이오폴리스(Биополис)가 직접 담당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임상 시험을 포기한 것은 '폴리오 백신'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미 전세계 수십억명이 복용한 '폴리오 백신'은 약효와 안전성을 인정받았으나, 270만명 중 1명 꼴로 ’사이토카인 스톰‘(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항하기 위해 인체 내에서 면역물질 사이토 카인이 과다 분비되면서 정상 세포까지 공격하는 현상으로, 치사율을 높인다) 현상을 초래하는 게 문제다.

또 '폴리오 백신'이 신종 코로나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백신은 아닌 만큼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왜 임상 시험을 밀어붙이고 있을까? '완벽한 코로나 백신이 나올 때까지, 팬데믹(세계적 유행) 현상에 대처할 수 있는 단기 처방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감에서다. 미국 메릴랜드 의과대학 인간바이러스학연구소 로버트 갤로 소장이 "백신의 용도 변경은 면역학에서 가장 핫한 영역 중 하나"라며 '폴리오 백신' 시험을 적극 지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국은 포기하고 러시아가 시험에 나서는 건, 60년전 '폴리오 백신'에 대한 첫 임상 시험 때와 닮았다. 당시에도 미국은 추바코프 박사 부부의 임상 시험을 오랫동안 지켜본 뒤 백신의 약효와 안전성이 확보되자 뒤늦게 도입한 바 있다. 

러시아는 신종 코로나 치료제 도입에도 과감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학교병원이 지난 25일 미 국립보건원(NIH)과 함께 신종 코로나 치료제 '렘데시비르'와 항염증제 '바리스티닙'을 함께 투여하는 임상 시험 사실을 발표했는데, 러시아 보건당국은 이미 '바리스티납'을 치료제 권고 약물로 지정한 상태다.

  '바리스티닙' 약물의 류마티스 치료제 '올루미안트'
러시아 보건부가 발간한 신종 코로나 대처 매뉴얼 표지/캡처
러시아 보건부 매뉴얼에 올라와 있는 '바리시티닙'(맨 아래 약물)/캡처

러시아 보건부가 발표한 신종 코로나 대처 매뉴얼 최신판에는 '바리시티닙' 등 13개 약물이 권고 치료제로 등재되어 있다. 원래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로 개발된 '바리시티닙'(러시아 브랜드는 올루미안트 은 면역세포를 조절해 염증을 억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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