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금지에 맞선.. 작지만 의미있고 다양한 러시아 개헌 반대 시위들
집회 금지에 맞선.. 작지만 의미있고 다양한 러시아 개헌 반대 시위들
  • 송지은 기자
  • buyrussia3@gmail.com
  • 승인 2020.07.02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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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광장의 시체 플래시몹, 장난감 과일 야채의 '미니 시위대', 온라인 시위
신종 코로나로 가두시위 불가능 - 개헌 반대를 외친 야권의 시위 아이디어들

러시아의 개헌 국민투표는 처음부터 하나마나 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지만, 푸틴 대통령에게는 재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개헌안 부칙에 따라 푸틴 대통령은 현 임기가 끝나고 72세가 되는 2024년부터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12년 동안,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 같으면 야권의 개헌 반대 시위가 모스크바 시내를 뒤덮었을 터인데, 이번에는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로 장외 집회 자체가 불가능했다. 예상치 않았던 신종 코로나 확산이 아이러니하게도 푸틴 대통령에게 재집권의 길을 여는데 크게 공헌한 것. 당초 4월 22일로 예정된 국민투표를 7월 1일로 연기한 것도 결과적으로 '신의 한수'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푸틴의 '장기 집권'에 반대하는 반 크렘린 세력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투표가 실시된 1일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는 '2036년까지 집권 가능한 푸틴 대통령 임기를 조롱하는' 플래시몹(퍼포먼스)가 펼쳐졌다.

붉은 광장에서 (액션 2036) 활동가들 체포/얀덱스 캡처
붉은 광장에서 몸으로 '2036'을 새긴 활동가들 체포됐다/노브 이즈베스티야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개헌 반대' 에 앞장선 활동가 8명이 이날 붉은 광장에서 시체처럼 누워 숫자 2036을 만드는 '액션 2036'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체처럼) 죽은 2036년'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데, '2036년에 (임기가) 끝나는 푸틴 대통령은 죽었다'는 확대 해석이 가능하다.

붉은 광장의 '액션 2036'은 아나톨리 오스몰로프스키가 1980년대 결성한 예술단체E.T.I(Э.Т.И)가 지난 1991년 4월 붉은 광장 레닌묘 앞에서 몸으로 벌인 '저항 운동'을 본 딴 것이다. 당시 E.T.I는 공공 장소에서 '성기 욕설' 사용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15일 구류형에 처한다는 '공중도덕에 관한 법률' 도입에 반대하기 위해 몸으로 글자를 새겼다. 

러시아 방송 '도쥐'가 트윗에 올린 '액션 2036' 퍼포먼스 영상(위)와 1991년 E.T.I 퍼포먼스 장면/사진은 '도쥐' 인터넷 사이트에 실린 MK 자료 캡처

러시아 경찰당국이 '붉은 광장' 몸 예술가들을 긴급 체포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의 고향이자, 제2의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장난감 캐릭터와 과일, 야채 등을 동원한 '개헌 반대 시위'가 벌어졌다. 

러시아 시민단체 '봄의 민주주의 운동'은 지난달 22일 소셜 미디어(SNS)을 통해 펼친 '미니시위 소설미디어 캠페인'에서 '포켓몬스터'와 ‘트롤’ ‘마이 리틀 포니’ 등 유명 캐릭터 인형들을 내세워 "이번 국민투표는 우리보다 더 장난감스럽다"고 개헌 작업을 희화화했다. 이 단체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인 에르미타주 박물관을 비롯해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회,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쉬킨 동상 등에 개헌 반대 메시지를 꽂은 장난감과 과일, 야채 등을 세워놓은 뒤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이번 국민투표는 우리(장난감)보다 더 장난감스럽다'고 쓴 플래카드를 앞세운 미니 시위대의 캐릭터들. 
'반대'라고 쓴 피켓을 든 작은 인형
에르미타쥐 박물관 앞에서 '노(No)'라고 쓴 피켓을 앞세운 과일 야채 시위대/사진출처:'미니 시위대' SNS 사진 캡처 

사진을 보면, 바나나가 "(헌법) 개정에 반대한다"고 주장하고, 감자도 "헌법 개정을 그만둬라"고 호통을 친다. 유명 만화 캐릭터들도 "우리를 장난감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당신들의 장난감이 아니다” “고치려면 의료 체계를 고쳐라” “국민투표는 우리보다 더 가짜스럽다” 등의 구호를 들고 있다. 현지 경찰당국은 '장난감 시위'를 기획한 ‘봄의 민주주의 운동’을 수사중이라고 한다.

러시아 네티즌들의 온라인 반대 시위는 일찌감치 포탈 사이트 얀덱스(yandex.ru)의 지도 위에 반대 메모를 수없이 붙이는 방식으로 여론을 형성해 왔는데, 이제는 유튜브 생중계로 진화했다. 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반대 시위 연설'을 하듯이 유튜브 창에서 네티즌들을 향해 '반대 주장'을 펴는 것이다.

포탈사이트 얀덱스 지도위에 펼치진 가상시위(위)와 No캠페인 유튜브 채널 캡처 - 래퍼 Noize MC의 공연 장면 

유튜브 'No! 캠페인' 계정은 지난 4월 '삶을 위한 온라인 미팅'을 주제로 개헌과 전국민 '자가 격리' 조치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현지 유력 경제지 코메르산트에 따르면 온라인 집회에는 정치인과 예술인, 인권 운동가 등이 3시간에 걸쳐 반대 캠페인을 벌이자, 동시 접속자가 최대 3천여명에 달했다. 이 동영상에 대한 클릭수는 현재 7만을 넘었는데, 퍼나르기 등을 통해 최소 1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가자들은 가두집회에 마찬가지로 집권세력에 보내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헌법 개정 중단 △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자가 격리' 조치 해제 △ 신종 코로나 확산에 대한 명확하고도 조속한 대책 마련 △ 저소득층 및 실업자 구제 등을 요구했다. 

온라인 집회에도 가두 시위와 마찬가지로 래퍼 Noize MC가 중간 중간에 나와 '반대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열기를 돋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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