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을 뛰어넘은 압도적인 푸틴의 '셀프 개헌' 지지 - 어떻게 봐야 할까?
예상을 뛰어넘은 압도적인 푸틴의 '셀프 개헌' 지지 - 어떻게 봐야 할까?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7.03 06: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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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가리지 않은 집권세력의 노력이 일정한 성과 도출 평가
러시아의 지역 특성상 모스크바 개표 결과가 '참 민심' 아닐까?

푸틴 대통령에게 '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준 러시아 개헌 국민투표는 투표율 67.97%에 찬성 77.92% 라는 '예상외 결과'를 낳았다. 수도 모스크바는 53%의 투표율에 65%의 지지율을 보였지만, 이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수치다. 신종 코로나(COVID 19) 사태에 경제난이 겹치면서 푸틴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최근 급격히 하락했음에도 이같은 결과가 나왔으니 의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일 국민투표 개표 결과 발표를 통해 "전체 투표자의 77.92%가 개헌에 찬성하고 21.27%가 반대했다"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 개헌 국민투표 지지자들에게 감사/얀덱스 캡처
모스크바의 해양박물관(아쿠아리움)인 '모스크바리움'에 간 푸틴 대통령/사진출처:크렘린.ru

이같은 결과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러시아 국민의 압도적인 재신임이라고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의 지난 6월 초 조사 때만 해도, 국민투표에 참여할 것이라는 응답자는 실제 투표 참여 결과와 비슷한 67%였으나 개헌 찬성률은 61%에 불과했다. 한달도 채 안되는 시간에 개헌 찬성이 12%P나 올라간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은 집권세력의 필사적인 노력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역대 대선 득표율과 비교하면 국민투표 결과는 돋보인다.
그는 지난 2018년 치러진 3.18 대선에서 67.4%의 투표율에 76,6%의 지지를 얻었다. 집권 4기의 지난 2년간 러시아를 괴롭힌 경제사회적 위기 상황은 푸틴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지만, 전례없는 신종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유행)에서는 '대안이 없다'며 이전과 다름없는 지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푸틴 대통령은 대권에 첫 도전했던 2000년 대선에서 득표율이 52.94%에 그쳤으나, 2004년 대선에서 71.31%의 지지를 얻어 '존재감'을 과시했다. 총리로 한 차례 쉬고 재출마했던 2012년 대선에선 다시 63.6% 지지로 떨어졌으나, 지난 대선에선 76% 득표율로 다시 올라섰다.

이 추세로 보면 이번 개헌 국민투표에서는 간신히 체면을 유지하고, 차기 대선에서 고득표율을 기록해야 하는데, 추세 흐름이 끊어졌다. 차기 대선에서도 70%이상의 득표를 이어갈지 궁금하다.

푸틴 대통령은 현 임기가 끝나는 2024년에 다시 대권 도전에 나서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12년 동안,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맡을 수 있다. 개헌안에 푸틴 대통령의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부칙(특별조항)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이 '독재로 가는 길'이라고 비판받는 이유였다. 

러시아 야권은, 당연하지만 이번 개헌에 대해 국민 여론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가짜 국민 투표'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푸틴의 '정적'으로 통하는 대표적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는 투표 결과에 대해 여론을 반영하지 않는 "거대한 거짓말"이라고 비판했다.

러시아 야권은 신종 코로나 사태로 개헌에 반대다운 반대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한 게 사실이다. 2달간의 '자가 격리' 조치로 개헌 반대 대규모 시위는 꿈도 꾸지 못했고, 소셜 미디어(SNS) 통해 '개헌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데 만족해야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주요 도시 곳곳에서 소수 혹은 '1인 시위'를 벌였지만, 큰 흐름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포탈 사이트 얀덱스에 올라온 '개헌 반대 시위' 사진들 /얀덱스 캡처

독립적 선거감시기구인 '골로스'는 사업주들이 직원들에게 투표 참가를 압박하거나, 한 사람이 여러 차례 대리 투표하는 등 편법·불법 투표 신고가 수백건이나 접수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엘라 팜필로바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투표 종료 후 "투표 과정에서 소수의 위반 사례가 있었지만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심각한 위반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우리의 눈높이로 보면 러시아 투표 과정은 기대 이하다. 신종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기존에 없었던 사전투표를 1주일 전부터 시작한 것에서부터 각 지자체가 나서서 투표 독려용 '경품 행사'를 진행하는 것까지 편법·불법·엉터리 선거라고 할 만하다.

하자만, 극동 지역과 서부 지역사이에는 무려 11시간이나 차이가 나고, 인구 1천만의 대도시에서 수백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 수도 없이 뒤엉켜 있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에 모두 똑같은 기준을 갖다댈 수는 없다. 모스크바의 국민투표 결과, 즉, 투표율 53%에 65% 찬성이 '푸틴에게 보여준' 진짜 민심이 아닐까 싶다. 그래도 푸틴 대통령의 '셀프 개헌'은 가뿐하게 통과됐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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