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의 경고에도 러시아가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당기는 까닭?
서방의 경고에도 러시아가 신종 코로나 백신 접종을 앞당기는 까닭?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05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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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신종 코로나(COVID19) 백신 생산및 접종 계획이 암초를 만났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서방 측이 러시아의 성급한 백신 상용화를 경고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러시아 보건당국은 현재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 센터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 백신을 9월부터 제약업체 3곳에서 생산을 시작해 일반인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접종에 나설 계획이다. '가말레야 백신'은 7월 중순 임상 1상을 마무리했고, 임상 2상, 3상 시험에 대해서는 아직 모호하다. 임상 결과에 대한 공식 발표도 분명하게 나온 것은 아직 없다고 봐야 한다.

현지 언론이 임상시험을 진행한 모스크바 세체노바 의대와 국방부 산하 병원 책임자들의 입을 통해 '항체 형성이 확인됐고, 심각한 부작용은 없다'고 알린 게 거의 전부다. 크리스티안 린트마이어 WHO 대변인이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어떤 백신이든 다양한 임상 시험과 검사를 거쳐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다. 린트마이어 대변인은 나아가 러시아측에 "백신에 대한 효과및 안전성 지침을 준수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일부 러시아 언론은 "WHO가 신속한 백신 개발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가말레야 백신의 10월 접종은 데니스 만투로프 러시아 산업통산부 장관의 3일 발표로 확실해졌다. 만투로프 장관은 회견에서 "국내 제약업체 3곳이 가말레야 백신을 9월부터 생산한다"며 "매달 수백만명의 복용분 공급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 러시아 코로나 백신 생산에 반응/얀덱스 캡처
백신 생산업체로 지목된 게네리움사 홈피. '우리의 이상과 목표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는 것'이라고 적었다/캡처

가말레야 백신을 생산할 제약업체는 게네리움(Generium), 알팜(R-Pharm), 비노팜(Binnopharm) 등 3개 업체라고 한다.

가말레야 연구센터를 지원하는 러시아 국부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백신의 공식 등록이 열흘 내로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공식 등록된 첫 번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백신 등록을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로 서방 측은 크렘린의 압력을 든다. 연구 개발진이 크렘린(정부)의 압박에 밀려 필수적인 안전 점검 절차를 생략하고 백신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집권 연장을 위해 무리하게 개헌안을 밀어붙인 푸틴 집권세력의 최근 행보를 보면, 뜸금없는 주장은 아니다.

가말레야 백신의 임상 시험/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동영상
러시아가 백신 접종을 앞당기는 이유? /사진출처:픽사베이.com

그러나 더욱 공감이 가는 주장은 러시아가 현실적인 급박함 때문에 백신 접종을 앞당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넓디 넓은 대륙에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계절적인 겨울 독감과 함께 신종 코로나 2차 파동이 밀려올 것으로 현지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백신의 접종 시기는 그 전이어야 하고, 해를 넘기면 예방 접종의 의미가 반감될 게 분명하다.

지난 몇 달간에 걸친 러시아의 신종 코로나 상황을 되돌아 보면, 무증상 확진자가 의외로 많고, 의료진 희생이 다른 나라들보다 훨씬 컸다는 사실이다.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확진자와 접촉에서는 비교적 면역 효과가 떨어지는 백신을 접종하더라도 감염 위험도를 현저히 줄여줄 수 있다.

또 중·경증 확진자를 돌봐야 하는 의료진들에게는 백신 접종이 방호복 하나 더 입히는 효과라도 기대할 수 있다. 러시아 보건부가 백신의 최우선 접종 대상으로 의료진을 선정한 이유다.

다른 하나는 백신 개발에 대한 자신감이다. 러시아 측은 "다른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이미 만들어진 백신을 변형한 버전이기 때문에 빠른 개발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키릴 드미트리예프 대표는 "가말레야 백신은 인체 내에서 복제되지 않도록 기능하는 '아데노바이러스' 벡터를 기반으로, 이미 검증된 에볼라·메르스 백신 플랫폼에서 개발됐다"며 "보조 주사를 추가로 맞아야 한다"고도 했다. 

러시아는 구소련시절부터 서방과는 다른 백신의 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 지금부터 60년 전, 소아마비용 '폴리오 백신' 도 미국 등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련에서 먼저 상용화했다. 당시 소련의 저명한 백신 전문학자 미하일 추마코프 - 마리나 보로실로바 박사 부부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섞은 각설탕을 자녀들에게 먹이는 방식으로 첫 임상 시험을 시작해 소아마비용 '폴리오 백신' 개발 성공을 이끌었다.

미국은 오랫동안 소련의 '폴리오 백신' 상용화 과정을 지켜본 뒤, 뒤늦게 도입했다. 구소련의 도전적인 백신 개발 욕심이 미국에 앞서는 성과를 일궈낸 셈이다.  

러시아 측은 '가말레야 백신'에 대해서도 '임상 시험 계속및 보완작업'과 '일반인 접종'에 함께 나서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것인데,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할 뿐이다. 

러시아는 또 '가말레야 백신'으로 '제3세계 공략'을 겨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국적 제약회사의 신종 코로나 치료제및 백신은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엄청 비싸고 물량 확보가 쉽지 않다. 러시아측으로서는 그나마 "이거라도 쓰고 싶다면 주겠다"는 뜻으로 인도 브라질 아프리카 국가들과 백신 협력을 추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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