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러시아 미투운동? 성인지 감수성 의식이 이제사 깨어나나?
다시 불붙는 러시아 미투운동? 성인지 감수성 의식이 이제사 깨어나나?
  • 나타샤 기자
  • buyrussia2@gmail.com
  • 승인 2020.08.07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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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치옴 여론조사 "10명에 한명 꼴로 직장에서 성적 괴롭힘 당해"
현지 언론 평가기준 엇갈려, '러시아어의 새로운 윤리' 기획기사도

#metoo (미투)운동이 미국에서 시작된 지 3년 가까이 지났다.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에게 성적 관계를 강요당한 몇몇 여배우들이 그의 성적 폭력을 폭로한 게 2017년 가을. 이후 한국과 러시아 등 전 세계 많은 여성들이 해시태그 #metoo로, 그간에 겪은 성적 괴롭힘과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을 소셜 미디어(SNS)에 올려 '여성운동'으로 나아갔다.

사진출처:픽사베이.com

러시아에서 공론화된 첫 미투 희생자(?)는 여기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서슴치 않았던 국가두마(하원) 국제관계위원회 레오니트 슬루츠키 위원장이다. 여기자 3명이 2018년 슬루츠키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고 폭로했지만, 유먀무야 넘어갔다. 러시아의 성의식이 미투 운동을 뒷받침하기에 아직 미흡하다는 분석이 나온 이유다.

그로부터 2년. 러시아엔 또다시 '미투'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전 언론 담당 안나 베두타가 한달 전 러시아의 유력 라디오 방송 '에코 모스크바'의 알렉세이 베네딕토프 편집장을 미투 가해자로 고발했다. 그녀는 베네딕토프 편집장이 8년 전 한 파티가 끝난 뒤 자신을 집으로 데려가 무릎 등을 만졌다고 폭로했다. 그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알렉세이 베네딕토프와 안나 베두타/러시아 매체 '리두스'(www.ridus.ru) 캡처

안나 베두타를 시작으로 최근 2주일간 무려 8건의 '미투' 폭로가 쏟아졌다. 신문 방송 예술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활약하는 빅토르 쉔제로비치와 유명 영화감독 겸 프로듀서인 고샤 쿠첸코 등 저명인사들이 '미투' 표적이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러시아 국영여론조사센터인 브치옴(ВЦИОМ)이 '직장에서의 성적 괴롭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3일(여론조사는 7월 29일)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직장인 10명 중 1명이 일터에서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나 성추행, 성희롱, 성적 요구 등 다양한 괴롭힘에 직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기관 브치옴, (응답자의) 9%가 직장에서 (성적)괴로움 당해/얀덱스 캡처
여론조사기관 브치옴의 여론조사 결과 발표/홈페이지 캡처 

브치옴측은 결과를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직장에서의 성폭력과 희롱:당하지 않았지만, 분노한다!' Приставания и харассмент на работе: не сталкивались, но осуждаем! 는 중립적 제목을 달았지만, 현지 언론들은 각기 다른 톤의 기사를 내보냈다. 어떤 언론은 "10명중 1명 꼴(응답자 9%)로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는 요지로, 어떤 언론은 "대다수(응담자의 87%)가 (성폭력을) 경험하지 못한 것"으로 썼다.

거의 10명중 한명꼴로 직장에서 (성적)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현지 언론 캡처

현지 언론의 엇갈린 접근은 소위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기준이 아직 성적 개방도 높은 러시아에서 정립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현지 가정(여성)전문변호사인 빅트리아 다닐첸코도 “직장내 성문제를 지적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봤다.

그녀는 언론 인터뷰에서 "성폭력 문제가 비교적 최근에 제기되었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면서, "직장에서 일하는 젊은 여성들이 (외모) 칭찬과 만남 제의, 강요 등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적은 데다가 아직도 처벌 대상감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공개해봐야 창피하고, 고용주가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는 것도 문제삼지 않는 원인"이라고 했다.

실제로 18세 이상 러시아 전역의 성인남녀 1,6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브치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3%는 상급자의 성적 요구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해고 등의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응답자의 1%는 직장에서 강제로 성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들의 절반 이상(51%)은 포옹이나 원치 않는 손길, 쓰다듬기 등 성추행등에 대해 '불쾌하다'는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했으며, 젊은 여성일수록 그 비율이 높았다. 남성은 22%에 불과했다. 

더욱 다행한 것은 일부 언론의 적극적인 문제 제기다. 현지 인터넷 매체 리두스(https://www.ridus.ru)는 브찌옴의 여론조사 결과에 맞춰 '러시아어의 새로운 윤리 : 성적 괴롭힘에 대한 여성의 시각' Новая этика по-русски: женский взгляд на сексуальные домогательства 이라는 기획기사를 내보냈다.

'러시아어의 새로운 윤리...' 기획기사를 쓴 리두스/캡처

이 기사는 "직장 내 성폭력에 대한 여성들의 최근 폭로는 러시아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리는 시발점"이라며 "아직도 성적 폭력에 대한 법적 개념이 뚜렷하지 않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수년 전 사건에 대한 폭로는 피해자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아무 것도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하니,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도 했다.

현지 성건강센터 안나 코테네바 소장은 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에로틱한 것과 음란한 것의 경계를 찾기가 힘들 듯이, 성추행의 범주를 정하는 것도 아주 어렵다"며 "남녀 양자 사이에 제3자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고, 가해자측이 평가해서는 더욱 안된다"고 주장했다. 코테네바 소장은 그러나 "성인이 된 여성은 '아니오'라고 말할 권리가 있다"며 "여성이 위험한 상대의 저녁 식사 초대를 수락하면, 그것은 상대에게 또다른 행위를 허락하는 신호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자리가 불편해지면, 언제든지 일어나서 떠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성적 괴롭힘에 대한 러시아 젊은 여성들의 시각은 많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교할 과거 여론조사 자료는 없지만, 연령대별로 답변에 차별성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브치옴 여론조사에서 '가해자는 성적 괴롭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절반 이상(55%)으로 나왔지만, 18~24세의 경우는 63%로, 평균보다 8%포인트나 높았다. 

또 전체 응답자 중 12%는 외모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 즉 짧은 치마와 짙은 화장, 깊게 파인 드레스 등에 대한 평가를 들은 경험이 있으며, 4%는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절반 이상이 "불쾌하다"고 답변한 것도 달라진 풍속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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