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식 첫 백신 등록을 이해하는 관점 3가지 - 전세계서 요청이 몰렸다
러시아식 첫 백신 등록을 이해하는 관점 3가지 - 전세계서 요청이 몰렸다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13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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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과 다른 원천기술, 현실적인 안전성, 생산 가격이 달랐다

러시아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 '스푸트니크V'에 대한 논쟁은 이미 예상된 것이다. 러시아측은 지난 달부터 백신의 등록및 생산, 접종 계획을 공개했고, 세계보건기구(WHO) 등은 "조급하고 무리한 계획"이라며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딸의 접종 사실을 공개한 것도, WHO 등의 안전성 우려에 대한 일종의 반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신 개발의 초기 역사를 보면, 새로운 백신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개발자가 스스로 먼저 접종하든가, 가장 가까운 이에게 접종한 뒤 예후를 지켜봤던 게 아니었던가?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국립전염병 센터의 연구원및 의료진도 가장 먼저 백신의 임상 시험대에 올랐다. 그리고 공식적인 임상 1상(1단계) 시험에 이어 고위 관료와 재계 인사의 특혜성 접종, 임상 2상, 대통령의 딸 접종 등 백신 접종 소식은 현지에선 수차례나 나왔다. 그 과정에서 취합된 과학적이고 공식적인 임상 결과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

무라슈코 러시아 보건부장관의 기자회견/현지 TV 캡처

미하일 무라슈코 러시아 보건부 장관이 12일 "러시아 백신은 일정한 임상 지식과 자료를 확보한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그는 "(외국에서는) 분명히 일정한 경쟁심에서 러시아 백신의 우수한 경쟁력(에 위협)을 느끼면서, 우리 관점에선 전혀 근거없는 견해들을 제시하려고들 한다" пытаются высказывать какие-то мнения, которые, на наш взгляд, абсолютно безосновательны... 고 반박했다.

여기서 '우리 관점에선' на наш взгляд 이라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식 백신 개발의 관점이자 방식, 방향성이다.

러시아 보건부, 신종 코로나 백신에 대한 비판에 해명/얀덱스 캡처

지난 수십년간의 동서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은 TV를 비롯한 많은 가전제품에서 항공기, 미사일, 인공위성 등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방식과 시스템으로 개발 경쟁을 벌여 왔다. 디자인과 사용의 편의성 등을 제외하면, 원천적인 품질과 성능 측면에서 서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국내 기업은 구소련의 붕괴 직후는 물론 지금도 러시아의 원천기술을 도입, 응용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특히 생필품의 경우, 디자인이나 다양한 편의성 측면에서 러시아(소련)의 경쟁력은 미국 등 서방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그 이유는 체제가 달랐기 때문이다. 서방의 글로벌 기업들은 더 비싸게, 더 많이 팔기 위해 제품을 개선하고, 편리한 기능을 더 첨가했다. 반면, 소련은 가능한 한 제작비를 낮춰 많은 인민들에게 신제품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신종 코로나 개발 경쟁도 이같은 측면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제약회사는 신종 코로나의 백신 개발로 또 한차례 '대박'을 터뜨리려고 한다. 비싼 가격으로도 선주문이 쏟아진다고 한다. 각국이 백신의 물량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보도도 나온다.

러시아 알-팜사, 러시아 백신의 수출 가격을 공개/얀덱스 캡처

그러나 러시아는 개발한 백신을 의료진 등 필요한 분야의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접종할 계획이다. 해외 제공 가격도 파격적으로 낮다. 러시아내 백신 생산업체로 꼽히는 알-팜사의 알렉세이 레픽 대표(CEO)는 12일 현지 TV 채널 '러시아 24'에 나와 "백신의 해외 제공 가격은 (2회 접종분이) 적어도 10달러"라며 "첫 생산 분량은 꽤 비싸지만, 생산량이 늘어나면 저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신종 코로나 진단키트 수출 가격이 5~10달러이니, 러시아 백신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진단키트가 초창기엔 15달러를 호가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백신 임상시험/사진출처:러시아 국방부

백신의 안전성 평가에 대한 시각도 러시아와 서방측은 다르다. 무라슈크 보건장관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된 플랫폼에서 개발됐다"고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섞지 않고, '인간 아데노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한 백터 성분 2가지를 이미 검증된 에볼라·메르스 백신 플랫폼을 통해 개발했다는 것. 백신의 원천기술이 서방측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식은 어떨까? 러시아 보건당국은 앞으로 2천명을 대상으로 임상 3상(3차 임상)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방에선 통상 수천~수만 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1~3상 시험에서 효능과 안전성을 확보한 뒤에 백신 등록과 생산, 접종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임상 1~3상을 제대로 거치려면 1~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상 3상의 단계중 '위약 시험'이 있는데, 백신 접종 1만명과 위약 접종 1만명이 서로 효과를 비교하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야 임상시험이 충분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수개월만에 전세계에서 수천만명이 감염되고, 또 감염되는 상황에서 이같은 임상 과정을 다 거치는 것은 비현실적일 수도 있다. 팬데믹(세계적 유행) 현상에서 제대로 된 임상 시험의 기준은 일시적으로나마 모호할 수 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 치료제의 승인도 지금까지 나라 별로 제각각이었다.

러시아의 현실적인 선택은 급한 대로 임상 3상과 일반인 접종을 동시에 진행하는 '투트랙 전략'이다. 무라슈코 장관은 자신도 이달중에 예방 접종을 맞을 예정이라며 "접종자들의 예후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앱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이 앱을 통해 모든 접종 대상자들의 자료가 수집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센터'의 알렉산드르 긴쯔부르그 대표는 "임상 3상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보험 가입을 제공하고, 충분한 비용을 지급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첫 백신이 '맹물'과 다를 바 없다는 악평도 나온다. 현재로서는 어떤 글로벌 제약회사가 백신을 내놓든지, 초기에는 약효에 대한 의문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여론조사기관 갤럽이 미국민을 상대로 한 백신 접종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갤럽이 지난달 20일부터 지난 2일까지 18세 이상 미국인 7,63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백신을 무료 접종한다고 해도 맞지 않겠다는 응답자가 35%에 달했다. 3명중 1명꼴이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마찬가지다. 앤서니 파우치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 소장은 지난 달 미국 브라운대 온라인 세미나에서 "(글로벌 제약회사가 개발 중인) 코로나 백신의 효능이 아직 50%가 될지, 60%가 될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질병관리본부 격인 독일의 로베르트코흐연구소도 최근 "올 가을부터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해서 신종 코로나 팬데믹을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위험하다"며 "바이러스의 돌연 변이로 백신 효과가 제한적이고, 면역 기간도 짧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는 지금도 각국에서 계속되고 있다. 1년, 2년 후에는 또 어떤 센(?)놈이 나올지 모른다. 신종 코로나도 호흡기 증상(독감) 바이러스의 일종이라는 전제하에, 그해 그해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에 따라 백신이 달라지듯이, 신종 코로나 백신도 앞으로 다양해질 게 분명하다. 

러시아 첫 신종코로나 백신을 생산할 빈노팜 홈페이지/캡처

러시아의 첫 백신, '스푸트니크V'는 무증상 확진자가 많은 러시아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 유형에 맞춰 개발된 것이라고 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많은 변종에 모두 작용하는 백신이 아닐 수 있다. 또 백신의 면역력이 2년간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2년을 지나지 않으면 확인이 불가능하다. 

무라슈코 보건장관은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백신은 우선적으로 내부 수요에 충당될 것"이라고 했다.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센터'의 긴쯔부르크 대표는 12일 "오는 12월이나 내년 1월까지 매월 500만 회 분량의 백신을 생산하는 능력을 갖춰, 1년 동안 전 국민의 수요를 감당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의 첫 백신은 러시아의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팬데믹을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니다. 러시아 국부펀드인 '직접투자펀드'(RDIF)는 백신 기술 수출과 백신 자체 수출을 나눠 남미와 중동, 아시아권 국가들과 협상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3대 확산국인 브라질은 생산 기술에, 필리핀 등은 백신 자체 수입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계 20개국으로부터 10억 회 분량의 백신 사전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뒤늦게 신종 코로나 확산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많은 빈곤 국가에 값싼 가격으로 백신을 제공하는 것, 러시아의 첫 백신 단축 개발을 이해하는 또다른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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