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루스 시위 정국, 흐름이 완전히 바꿨다 - '루카셴코 대통령 도피설'도 나와
벨라루스 시위 정국, 흐름이 완전히 바꿨다 - '루카셴코 대통령 도피설'도 나와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15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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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루스의 부정선거 규탄및 대선 불복 시위 엿새째를 맞은 14일, 수도 민스크의 표정은 완전히 달라진 것으로 전해졌다.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전날 폭력 진압의 진상 조사및 대책 강구를 지시하는 등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린데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심의 대폭발'이 정국 흐름을 바꾼 것으로 분석된다.  

민스크 정부청사(독립광장)으로 몰려간 수천명의 시위대/얀덱스 캡처
시위대가 독립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러시아 NTV 영상 캡처

시위 현장을 취재중인 러시아 언론들에 따르면 그동안 폭력적으로 시위 참여자 체포에 나섰던 벨라루스 진압 경찰들은 14일 방패를 완전히 내리고 시 중심가를 행진하는 대규모 시위대를 지켜보기만 했다. 행진을 막거나 방해할 의사를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민스크 소재 학교의 교사들과 민스크자동차 공장 근로자 등의 합류로 규모가 더욱 커진 시위대는 플래카드를 앞세워 거대한 물결처럼 정부 청사가 있는 독립광장을 향해 행진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시민들은 준비한 물과 음식물 등을 건네고 환호했다. 인근 건물에서도 "정부는 답하라", "대화에 나서라"는 외침 소리가 터져나왔다.

시위에 참가한 일부 여성들은 주요 건물 경비에 나선 진압복 경찰관들을 향해 달려가 포옹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진압경찰관과 포옹하는 벨라루시 여성들. 러시아 매체 rbc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민스크 분위기는 달라졌다고 제목을 달았다/rbc관련 기사 캡처
루카셴코 대통령, 자신의 해외 도피 소문을 부인했다/얀덱스 캡처

벨라루스 내무부는 병력을 동원해 정부 청사 주위 경비에 들어가는 한편, 시위 과정에서 연행한 시위 가담자들을 단계적으로 석방하기 시작했다. 이날에만 2천명 이상이 석방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먹통이었던 '모바일 인터넷 접속'도 다시 이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전날과 완전히 달라진 당국의 대처에, 현지에서는 강경진압을 지시한 루카셴코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졌고, 급기야 대통령이 "나는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유력 인터넷 매체 rbc는 "독립광장에 집결한 사람들은 거의 축제 분위기에 젖어 있었다"며 "전날까지만 해도 계엄령 속의 도시와 다를 바 없었는데, 오늘은 거리에서 진압 경찰을 거의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평화롭게 시위가 진행됐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누구도 뭔가를 부수거나 불 태우지 않았고, 시민들은 모두 승리를 믿고 환한 얼굴이었다"고도 했다.

그동안 주요 시위지역이었던 '푸쉬킨스카야 메트로' 지역에서 독립공원쪽으로 몰려간 시위대는 루카센코 대통령의 사임과 재선거를 요구하며 세를 과시한 뒤 해산했다. 언론은 "시위 참가자들이 조용히 광장을 떠났으며, 남은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내일 또 많은 시민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전했다.

2010년 '반 루카셴코' 시위 당시 정부청사 주변을 막아선 경찰병력(위)와 현재의 독립광장/사진출처:위키피디아

독립광장은 주변에 대통령 행정실과 의회, 중앙선관위, 정부부처 등이 몰려 있어 반정부 시위 핵심 장소다. 10년 전인 2010년에도 루카셴코 대통령의 당선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고, 2017년에는 '실업세 신설'에 반대하는 집회가 잇따라 개최됐다. 

벨라루스 당국의 태도 변화는 전날인 13일 여성들을 중심으로 '인간 사슬' 시위가 시작되면서 감지되기 시작했다고 러시아 언론은 전했다. 폭력을 두려워하던 여자들이 시내로 나왔고, 모두 단결해 거대한 '인간띠 잇기'에 동참했다는 것이다.

한 젊은이는 러시아 언론과 인터뷰에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세대가 성장했다"며 "우리 부모님, 우리 할아버지는 그(루카셴코 대통령)를 뽑고 그의 이야기를 믿었지만, 우리는 새롭고, 자유로운 국가를 원한다"고 말했다. 

벨라루스 야권, 권력이양 협의체 구성. 얼굴 사진은 티하노프스카야 후보/얀덱스 캡처 

정국의 변화 흐름에 야권은 루카셴코 정권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강제로 리투아니아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진 여성 대선 후보 스베틀라야 티하노프스카야는 14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자신의 대선 승리를 주장하면서 "법치 회복을 위한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권력 이양을 위한 협의체' Координационный совет для обеспечения трансфера власти 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해 현 정권과도 대화할 준비가 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선 후보 등록이 거부됐던 금융 올리가르히 '빅토르 바바리코' 측은 "선관위를 새로 구성하고, 국제참관단과 CCTV의 감시하에 내달 15일 이전에 재선거를 실시하자"고 주장했다.

그동안 루카셴코 정권의 의도적인 야권 분열 정책에 의해 뿔뿔이 흩어진 야권 세력이 '정권 교체'를 위해 단일세력으로 뭉치느냐 여부가 벨라루스 정국의 향방을 가름할 주요 변수가 될 게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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