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이라는 비아냥에도 러시아가 코로나 백신 생산을 시작한 이유
'맹물'이라는 비아냥에도 러시아가 코로나 백신 생산을 시작한 이유
  • 이진희 기자
  • jhnews@naver.com
  • 승인 2020.08.16 0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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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의사 가이드' 앱 여론조사, 3천여명중 25%만이 "예방접종 하겠다" 답변
미 독감 백신 효능 19~60%에 불과, 매년 접종해야 - 현실적 접근이 최선?

신종 코로나(COVID 19) 백신이 15일 러시아에서 세계 처음으로 생산됐다. 러시아 보건부는 이날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 센터가 개발한 백신 '스푸트니크 V'의 1차분이 세상에 나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 수량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보건부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2개의 포장 박스에 'Гам-КОВИД-Вак'로 적혀 있다. '가말레야- 코로나- 백신'이라는 뜻이다. 0.5ml 앰플 2개(하나는 면역 보강제)로 이뤄진 백신은 근육 투여용이다. 

세상에 처음 나온 신종 코로나 백신/사진출처:러시아 보건부

생산이 시작된 러시아 백신 '스푸트니크V'에 대한 서방측의 비판은 거의 조롱 수준이다. "맹물과 다를 바 없다", "원숭이에게도 접종하지 않겠다"는 식이다. 서방측이 요구하는 임상 3상(임상시험 3번째 단계)을 거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러시아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은 진짜 턱없이 떨어지는 것일까? 서방측이 '경쟁심에서 러시아의 관점에서는 근건없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는 러시아 보건장관의 반박을 어느 정도 믿어야 할까? 러시아 전문가들은 어느 쪽 주장을 더 믿고 있을까?

의료정보 모바일 앱 '의사 가이드'/구글 캡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의료정보 모바일 앱 '의사 가이드' Справочник врача 가 12, 13일 이 앱에 등록된 의료인(42만명 추정)들을 대상으로 신종 코로나 백신의 접종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결과는 일단 충격적이다. 조사에 응한 3,040명 중 24.5%만이 백신을 맞겠다고 응답한 것. 절반 이상(52%)이 접종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접종 거부 이유(중복 답변 허용)로는 66%가 '효과에 대한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를, 48%는 '너무 짧은 시간에 개발됐다'는 점을 들었다. '스스로 맞겠다'고 한 비율보다 약간 낮은 20%의 응답자만이 환자, 동료 또는 지인에게 예방 접종을 권할 것이라고 답했다.

신종 코로나 백신에 대한 설문조사는 의사들의 불신을 보여줬다/얀덱스 캡처
긴쯔부르그 대표, 의사들의 불신을 비판/얀덱스 캡처

백신을 개발한 '가말레야 센터'의 알렉산드르 긴쯔부르그 대표는 의료인들의 반응에 아주 현실적으로 대응했다. 긴쯔부르그크 대표는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의사들을 만나고 싶다"며 "(감염 고위험군) 의사들에게는 감염을 막기 위해 예방접종을 맞든가, 아니면 심하게 아프든가 선택은 둘 중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또 "자칫하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점을 의사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라고 덧붙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반 협박성'이다. 하긴, 감염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무겁고 갑갑한 방역 보호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의료진들에게, 백신 접종으로 간단한 방역조치 하나를 더 보강하라는 충고일 수도 있다. 그동안 보호장비 부족으로 의료진의 희생이 의외로 많았던 러시아에서는 아주 현실적으로 들린다.

물론, 긴쯔부르크 대표는 "백신에 대한 추가 정보가 곧 공개 과학 저널에 나올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 백신을 화급하게 개발하는 것은, 조속히 공동체내 집단면역을 형성하기 위해서다. 예방 접종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키운 사람들이 많아지면, 공동체내 바이러스 전파가 막혀 2차, 3차 감염될 위험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백신의 효능이 적어도 70~75%는 돼야 하는 이유다.

신종 코로나 백신 '스푸트니크 V'/사진출처:러시아 보건부

백신의 효능은 임상 3상을 통해 결과가 도출된다. 백신과 위약(플라시보 효과 겨냥)을 각각 접종한 수천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감염을 피해갈 수 있는지 비교, 관찰하는 시험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는 백신은 실질적인 효능에 대해 논할 가치가 없다.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다. 

백신의 효능에 관해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은 또 있다. 대표적인 계절성 호흡기 질병인 독감(신종 코로나 증상도 독감과 구별하기 힘들었다)의 백신이다. 예방 주사를 맞았는데도 독감에 걸렸다는 사람이 주변에 적지 않다. 그럼에도 매년 예방주사를 맞는다. 바이러스의 변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백신의 효과가 짧고 제한적이라는 뜻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보고에 따르면, 2009~2016년 미국내에서 독감백신의 효능은 19~60%로 불규칙했다고 한다. 또 초가을에 독감 백신을 맞았으나, 이듬해 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효과가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 이유가 세계적인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14일자)에 실렸다. 미국 에모리대 미생물·면역학과, 에모리대 의대 감염병교실, 에모리백신센터, 에모리-조지아대 독감감시연구센터(CEIRS), 스탠포드대 의대 병리학과, 셀 시그널링 테크놀로지사 공동연구팀은 연구 결과, 현재의 독감 백신은 골수 속 핵심세포를 자극해 면역계를 활성화시키는 능력이 다른 백신에 비해 현저히 짧기 때문이라고 결론냈다. 

독감 백신이 나온지 언제인데, 이제사 이런 연구결과가 나올까? 이게 백신 개발 현장의 현실이다.

사진출처:픽사베이.com

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신종 코로나 접종은 내년 1월부터 본격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전략적으로 선택된 계층에만 공급된다. 감염 고위험군인 의사를 비롯해, 학생들과 매일 접촉해야 하는 일선 학교 선생님,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영업직 셀러리맨들이다.

또 감염확산 위험이 높은 지역에 최우선적으로 제공된다고 한다. 그 기간에 첫 백신의 안전성과 효능은 끊임없이 분석되고 기록될 것이다. 이를 위한 '모바일 앱'도 개발중이다. 

러시아의 백신 등록및 생산, 접종은 아주 현실적으로 미리 계산된 것으로 추측된다. 안전성과 효능을 깊게 논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러시아든 미국이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많은 사람이 독감에 걸리고, 또 죽는다. 다가올 2차 파동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각국이 처한 여건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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