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30년이 지나도 러시아권에서 잊혀지지 않는 '빅토르 초이'
사망 30년이 지나도 러시아권에서 잊혀지지 않는 '빅토르 초이'
  • 송지은 기자
  • buyrussia3@gmail.com
  • 승인 2020.08.18 0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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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빅토르 사망 30주년, 현지선 동상제막 등 각종 기념행사 열려
벨라루스 시위현장에 그의 곡 '뻬레멘!' 등장 - 경찰은 DJ 연행, 가혹행위

소련(러시아) 록 음악의 '전설'로 남은 고려인 '빅토르 초이(최)'가 사망 30주기를 맞아 러시아 권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러시아권 벨라루스의 반정부 시위대는 빅토르와 그의 대표곡을 다시 거리로 불러냈고,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엔 기타를 멘 그의 동상이 제막됐다. 또 그의 갑작스런 사망에 묻혀 있던 미스터리는 이제사 조금씩 벗겨지고 있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벨라루스의 대선 부정선거 규탄및 불복 시위 현장에는 언젠가부터 빅토르의 대표곡 ‘뻬레멘'(Перемен! 변화를 원해)이 울려퍼졌다.

'변화를! 우리의 심장이 요구한다'는 노랫말이 적힌 빅토르 초이 추모벽/빅토르 초이 인스타그램 캡처

"붉은 태양이 전부 타버리고/하루도 그것과 함께 타버린다/타고 있는 도시에 그림자가 드리운다/변화를! 우리의 심장이 요구한다/변화를! 우리의 눈이 요구한다/우리의 웃음과 우리의 눈물 속에/우리의 맥박 속에 변화를!/우리는 변화를 기다린다"

노랫말에서 짐작이 가능하듯, '뻬레멘!'은 1980년대 후반 소련 젊은이들의 변화 욕구를 대변한 노래였다.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개혁과 개방)을 선언한 직후이니 시기적으로 딱 맞아떨어진 것. 벨라루스 시위대가 이 노래를 틀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벨라루스 경찰당국은 지난 12일 민스크 시위 현장에서 '뻬레멘!'이 또 울려퍼지자, 노래를 연주하며 부른 디제이(DJ)들을 즉각 연행해 갔다. 하지만 시위 참가자들은 반주 없이 '뻬레멘!'을 부르고 또 불렀다고 한다. 끌려간 DJ들은 풀려난 뒤 내무부 차관급 인사에게 밀실에서 구타를 당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연행된 DJ가 벨라루스 내무부 차관에게 구타당했다/얀덱스 캡처
민스크에서 '뻬레멘' 노래때문에 연행된 DJ들이 구타당해/노브이 이즈베스티야 캡처

빅토르 초이의 고향이자, 그가 묻혀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보고슬로프스코예 공동묘지에는 지난 15일 사망 30주년을 추모하는 팬 수천명이 몰렸다. 또 이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 네바강을 가로지르는 대형 도개교인 '궁전교'는 추모 행사의 하나로, 그의 노래 2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양쪽으로 들어 올려졌다. 앞서 시내 키로프 지역에선 빅토르 초이의 추모 동상이 제막됐다. 

상트 도개교가 열리는 추모행사. 상판에 빅토르 초이 공연장면이 새겨졌다/인스타그램 캡처
상트에 지난 14일 제막된 빅토르 동상/인스타그램 캡처 

언론의 빅토르 초이 추모 특집도 잇따랐다. 일부 언론은 빅토르가 사망한지 3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러시아인 가슴에 살아남은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다. 러시아 TV채널 NTV는 30년 전 그의 교통사고를 직접 목격한 라트비아(당시 소련, 현재는 발트3국 중 하나) 여성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 상황을 상세히 재현하기도 했다. 

교통사고의 첫 신고자로 알려진 그녀는 NTV 인터뷰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빅토르가 음주 상태였다고 들었는데, 왠일인지 사고 보고서에는 그 사실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빅토르 초이 사고 목격자, 교통사고(비극)의 새로운 내용들을 증언/현지 언론 캡처

그녀는 "사고가 난 곳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살았다"며 "자동차가 엄청난 속도로 우리 집을 지나간 뒤 맞은편 차선으로 넘어가 버스와 충돌했다"고 말했다. 즉각 경찰에 (사고를) 신고하고, 빅토르의 시신을 끌어내는 일도 도왔다고 했다.

그녀는 사고 이튿날, 빅토르의 혈액에서 (음주운전으로 추정되는) 일정 농도(1.2ppm)의 알코올이 검출됐다는 이야기를 경찰로부터 들었는데, 사고 조사 서류에서는 그 사실이 삭제됐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당시 공식 발표는 빅토르가 소형 승용차 '모스크비치' 운전 중 졸다가 맞은편 차선에서 오는 버스와 충돌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62년 고려인 2세였던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초이는 록그룹 '키노'(KINO)를 결성해 리더로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장인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단독 콘서트(관객 6만2천여 명)를 열 정도로 전성기를 누리던 1990년 8월, 그는 라트비야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빅토르 초이의 공연 모습/인스타그램 캡처

당시 그는 한국과 일본 공연 일정이 확정되면서 난생 처음으로 증조부모의 나라를 방문한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대표곡은 '뻬레멘!' 외에 '혈액형', '마지막 영웅' 등이 꼽힌다. 

빅토르 초이란 이름은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도 소환됐다.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쇼트트랙 금메달 3관왕에 오르자, 푸틴 대통령이 “빅토르 초이의 혼을 안고 달린 빅토르 안이 승리를 거뒀다”고 축전을 보낸 것. 최와 안씨 성의 빅토르가 러시아에선 최고 인기였다. 

또 2018년에는 빅토르 초이의 삶과 음악을 담은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가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됐고, 국내에서도 개봉되면서 그의 노래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났다. 

그 탓인지, 한러 수교 30년 기념사업준비위원회가 '한러수교 30주년'과 '빅토르 최 30주기'를 기념하는 양국 록가수들의 합동 공연을 기획했으나, 신종 코로나(COVID 19)사태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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